['부모와 자녀 사랑' 작품들]
<작품 1> 렘브란트 판레인, '돌아온 탕아', 1668. / 러시아 예르미타시 미술관
'돌아온 탕아' <렘브란트 作>, 방황하던 아들 품어주는 아버지 그렸죠
감옥에 갇힌 아버지에게 젖 물린 딸
아버지 죽인 호랑이와 맞서는 아들
일흔 넘은 아들 재롱 피우는 모습도
5월 8일은 어버이날입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히 여기자는 의미에서 만든 날이지요. 부모 품속의 아기는 어느덧 어린이가 되고, 또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자라납니다. 이런 성장 과정에서 혼자 해결해야 할 어렵고 고단한 일이 점차 늘어나요. 스스로 약하고 보잘것없다고 느낄 때마다 부모님이 나를 얼마나 아끼는지 떠올려 보세요. 내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사람임을 다시금 확인하고, 강해질 수 있을 겁니다. 어릴 적 부모님한테 받은 사람은 마음속 자양분이 돼 평생 우리를 지켜주지요.
하지만 부모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없는 사람도 있고, 일찍 부모를 여윈 이도 있어요. 그들에게 어버이날은 그저 슬프기만 한 날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을 돌봐주고 따스한 마음을 나눠 준 고마운 이웃이 있을 거예요. 그런 이웃이 곧 넓은 의미의 '어버이'랍니다. 어버이라는 말이 단지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와 아버지만은 아니라는 뜻이지요.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 자식 간 사랑을 주제로 한 그림을 살펴볼까요?
렘브란트와 루벤스가 그린 부모와 자식
<작품 1>은 네덜란드 바로크 미술의 거장 렘브란트 (1606 ~ 1669)가 그린 '돌아온 탕아'예요. 기독교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그림이죠. 부모님이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은 조건을 따지지 않고, 보답도 바라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그림 속 아버지는 더할 나위 없이 온화한 표정으로 아들을 안아 주고 있어요. 제멋대로 집을 나가 돈을 다 써버리고 거지가 돼 돌아온 아들이지만 아버지는 꾸짖지 않습니다. 아들이 그동안 뭘 했는지 따져 묻지도 않고, 말없이 등을 두드려 주고 있어요.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한결같이 기다렸으니까요. 그리운 아버지 품에 안긴 아들 눈에서는 잘못을 뉘우치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작품 2> 페테르 파울 루벤스, '시몬과 페로 : 로마인의 자비', 1630년쯤.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작품 2>는 렘브란트와 쌍벽을 이루는 바로크 거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 (1577 ~ 1640)가 그린 '시몬과 페로 : 로마인의 자비'라는 그림이에요. 루벤스는 고대 로마인들이 행한 기억할 만한 영웅담 중 하나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그렸어요. 감옥 안에서 젊은 여인이 눈치를 보며 굶주린 노인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입니다. 이야기에 따르면 시몬이라는 노인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혀 굶어 죽는 벌을 받았어요. 아무도 시몬에게 먹을 것을 갖다 줄 수 없었습니다. 시몬에게는 페로라는 지혜로운 딸이 있었는데, 아버지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를 살릴 궁리도 했어요. 마침 출산한 지 오래되지 않아 젖이 나온 페로는 감옥에 면회가서 간수들 몰래 아버지에게 젖을 물렸어요. 덕분에 아버지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고, 나중에 무고함이 입증돼 마침내 석방됐다고 합니다.
효도하는 마음을 담은 동양화
페로와 같은 효성스러운 자식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몸과 마음을 다해 부모님을 받드는 일이야말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덕목이라고 믿었어요.
특히 유학의 가르침으로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강조한 조선 시대 들어서는 효의 도리가 옛이야기나 그림책으로 널리 전해졌어요. 누구나 배우기 쉬운 글자인 한글을 백성에게 선물한 세종대왕은 글자뿐 아니라 참됨을 가르칠 목적으로 '삼강행실도' (1434)라는 그림책을 만들어 널리 읽게 했어요. 정조 때에는 삼강행실도를 정리하고 내용을 덧붙인 '오륜행실도' (1797)가 나왔습니다. 이 두 책에는 효자 이야기도 나오지요.
<작품 3> '오륜행실도' 중 '누백포호', 1797. / 호암미술관
오륜행실도 한 쪽을 열어볼까요? 고려 시대의 용감한 효자, 누백 이야기가 <작품 3>으로 소개돼 있군요. 험한 바위 절벽이 보이고 그 뒤로 폭포가 있는 것을 보니 첩첩산중입니다. 절벽 아래 호랑이가 납죽 엎드려 있고, 붉은 옷을 입은 소년 누백이 도끼를 들고 호랑이 머리를 막 내리치려 하고 있습니다. 누백의 아버지는 사냥을 나갔다가 호랑이에게 당하고 말았어요. 누백은 곧바로 도끼를 메고 호랑이 발자국을 찾아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호랑이를 만나자 그는 소리쳤어요. "네놈이 아버지를 먹었으니, 이제 내가 너를 먹을 차례다!" 누백은 호랑이를 찍어 죽인 후 배를 갈라 그 안에 있던 아버지 뼈를 꺼내 묘를 만들어 드렸습니다.
누백과 같은 효자 이야기는 현대인 관점에서는 다소 어이없게 들릴 수 잇을 겁니다. 그대로 따라 하라는 뜻은 아닐 거예요. 무서운 호랑이한테 맞설 만큼 누백이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가르침을 주려는 것이겠지요. 옛사람들은 부모를 정성껏 모시면 그 복이 후손에게 돌아간다고 믿었답니다. 부모 사랑이 곧 자식 사랑인 셈이지요.
<작품 4> 작자 미상, '효자도 (노래반의)', 제작 연도 미상. / 삼성미술관 리움
<작품 4>는 삼강행실도에 나오는 효자 관련 삽화 하나를 그림으로 따로 만든 것이에요. 집 안에 노부부가 웃는 얼굴로 앉아 있습니다. 마당에 있는 아이를 보고 즐거워하는 듯해요. 아이 옆에 있는 물동이가 넘어져 물이 쏟아지고 있고, 흔들 목마도 보여요. 이 아이는 옛 중국의 학자인 노래자라고 해요. 아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흔이 넘은 나이였고, 부모님은 100세에 가까웠지요. 노래자는 물동이를 들고 뒤뚱거리며 걷다가 물을 쏟고, 바닥에 미끄러지기도 했어요. 색동옷을 입고 흔들 목마를 타기도 했지요. 나이 들었지만 아이처럼 재롱을 피우는 아들을 보고 부모님은 잠시나마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세월을 잊지 않았을까요.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 · 구성 = 김윤주 기자 (yunj@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5월 8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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