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25전쟁 60년

[6·25 전쟁 60년] 중공군 개입한 첫 전투 한국전쟁서 국제전으로

드무2 2021. 5. 28. 13:03
728x90

[6·25 전쟁 60년] 중공군 개입한 첫 전투 한국전쟁서 국제전으로

 

 

 

중앙일보가 연재하는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을 보면 1950년 10월 말에 벌어진 운산전투는 ‘동아시아 국제전쟁’의 서막이었다. 당시 중공군 포로가 처음 잡힘으로써 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국군 1사단을 이끌고 평안북도 운산에 진출한 백선엽 사단장은 일선에 나가 있던 15연대에서 붙잡은 중공군 포로를 통해 중국의 개입을 확인했다.



김대일씨 참전한 운산전투

 

 

중국어를 할 줄 알았던 백 사단장은 포로를 직접 심문한 뒤 1사단을 지휘하고 있던 미 1군단의 프랭크 밀번 군단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한다. 밀번 군단장도 현장에 도착해 중공군 포로를 심문했다. 밀번은 이 사실을 바로 도쿄(東京)에 있던 유엔군 총사령부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게 즉시 알렸다. 그러나 도쿄의 유엔군 사령부는 이를 과소평가한 것으로 전후의 각종 문서들은 증언하고 있다.



맥아더 장군은 운산전투에서 중공군의 개입으로 미 1기병사단의 8연대 병력이 크게 손상되는 것을 보고서도 11월 이른바 ‘크리스마스 공세’를 밀어붙였다. 운산 남쪽의 평안남도 개천군 군우리에서 미 2사단이 대패했고, 그 동쪽에 있던 국군 2군단의 7사단과 8사단도 큰 타격을 입었다.



동부전선에 진출했던 미 1해병사단 등도 후퇴를 거듭했다. 처음부터 한반도에 진주한 중공군의 병력 규모와 화력(火力) 등을 얕잡아 봤기 때문이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한국전쟁은 50년 10월 말 이후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국군과 미군을 포함한 연합군이 북한의 인민군과 중공군에 맞서 싸우는 본격적인 동아시아 국제전의 모습으로 양상이 바뀌었다. 중공군 첫 포로가 어떤 상황에서 잡혔는지에 대한 증언은 그래서 중요하다.



유광종 기자

 


[출처: 중앙일보] [6·25 전쟁 60년] 중공군 개입한 첫 전투 한국전쟁서 국제전으로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