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바로크 예술 빛낸 이탈리아 거장 베르니니]
베르니니가 만든 '4대강 분수'
베르니니는 로마 도처에 멋있는 분수를 만들었다. 1651년 나보나 광장에 설치한 피우미 분수도 그중 하나다. 이 분수는 세계 4대 강 (나일강, 갠지스강, 라플라타강, 다뉴브강)을 상징하는 신들과 동물들 (유럽의 말, 아프리카의 사자, 남아메리카의 아르마딜로, 아시아의 용)로 장식돼 있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세계 4대강' 분수, 황홀한 테레사··· 로마를 화려하게 조각하다
조각은 靜的이라는 관념 깨고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작품 빚어내
절규 표현 제대로 구현하려 거울 앞에서 자신의 팔까지 불태워
'테레사의 황홀'선 생생한 표정 묘사로 보는 이에게 신비감 선사
세기의 명작 쏟아내며 로마를 '거대한 연극 무대'로 재탄생시켜
탁월한 예술가 한 명이 한 도시를 얼마나 위대하게 만드는가! 잔 로렌초 베르나니 (Gian Lorenzo Bernini, 1598 ~1680)는 오늘날 로마의 모습을 거의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처에 장대한 교회와 회화, 조각과 분수가 있는 로마는 도시 공간 전체가 극적이어서, 여행자 자신이 로마라는 거대한 연극에 동참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 분위기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 중 한 명이 베르니니다. "로마는 당신을 위해 있고 당신은 로마를 위해 있다"고 한 교황 우르바노 8세의 말 그대로이다.
베르니니는 타고난 천재성과 끊임없는 노력, 게다가 지독할 정도의 열정으로 작품들을 창조했다. 자화상인 '저주받은 영혼' (1619)을 만들 때 절규하는 표정을 생생하게 포착하기 위해 자기 팔을 불태우면서 거울로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았을 정도다. 일찍이 그의 능력을 알아본 유력인사들이 많은 작품을 의뢰했다. 시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보르게세 미술관이 된 자신의 빌라 (궁전)를 장식할 작품을 주문하자 20대 초반의 베르니니는 '페르세포네의 납치', '아폴론과 다프네', '다비드' 같은 걸작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길 이 명품들로 인해 그는 이른 나이에 이미 대가의 반열에 들었다.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이 조각들을 보면 인간의 손으로 저런 작품을 만들어내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종교개혁에 비틀대던 가톨릭에 숨결
그의 '다비드' (1624) 상과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작품 (1504)을 비교해 보자. 미켈란젤로는 골리앗과 싸움을 하기 직전 팽팽한 긴장의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투석기와 돌을 어깨 너머로 멘 채 평평한 눈으로 적을 노려보는 모습이다. 미켈란젤로가 이처럼 정적 (靜的)인 모습을 표현한 데 비해 베르니니는 몸을 틀어 골리앗을 향해 투석기로 돌을 던지는 역동적 장면을 표현했다. 입술을 깨물고 있는 다비드의 표정은 목숨 걸고 싸우는 전사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실 이 작품은 일종의 자화상으로서,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며 만들었다고 한다. 조각이 멈추어 있는 상태를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작가 자신의 내적 에너지를 담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다.
베르니니는 바로크 예술의 선두에 서 있었다. 바로크 예술은 이 시대 가톨릭 종교개혁의 강렬한 에너지를 표출한다. 16세기에 시작된 종교개혁으로 인해 유럽의 기독교는 신교 (프로테스탄트)와 구교 (가톨릭)로 양분되었다. 가톨릭으로서는 신교의 충격으로 한 세기 정도 휘청거렸다가, 그에 대한 대응으로 자체의 개혁 (예전에는 '반동 종교개혁' 이라고 불렀으나 이제는 '가톨릭 종교개혁' 이라는 용어를 주로 쓴다)을 추진하여 교리와 조직을 재정비 · 재확인했다. 그 결과 17세기 들어서서 자신감을 회복한 가톨릭계의 열망이 바로크 예술로 나타낫다. 신교라는 '이단'이 패배하고 가톨릭 신앙이 승리했다고 스스로 선언하고, 이를 화려하고도 장엄하게 확인하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이 시대에 새로정비한 로마의 성당들이 조각이나 회화, 장식 예술을 총동원하여 놀라운 정도로 장대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게 그런 이유다. 그 가운데 최정상의 활약을 선보인 예술가 중 한 명이 베르니니다.
자화상 '저주받은 영혼'
베르니니의 자화상 '저주받은 영혼'은 그의 지독한 열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손색없다.그는 절규하는 표정을 포착하기 위해 자기 팔을 불태우고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바라다보며 이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많은 작품이 로마를 빛내고 있다. 특히 로마 각지에 멋진 분수를 설치하여 물의 고귀함이 시내에 넘치게 하는 동시에 찌는 듯 더운 날씨에 고생하는 시민들에게 청량감을 안겨준다. 1651년 나보나 광장에 설치한 피우미 분수가 대표적이다. 이 멋진 조형물은 세계의 4대 강 (나일강, 갠지스강, 라플라타강, 다뉴브강)을 상징하는 신들과 동물들 (유럽의 말, 아프리카의 사자, 남아메리카의 아르마딜로, 아시아의 용)로 구성되었다. 유명한 작품에는 흔히 루머가 생겨나곤 한다. 라플라타강을 상징하는 신이 고개를 돌리고 있는 이유가, 분수 앞에 그의 라이벌 보로미니가 건축한 성 아그네스 성당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성당보다 분수가 몇 년 앞서 건설되었다는 사실로 보건대 일종의 도시 괴담 수준에 불과하다.
종교적 열정을 형상화한 가장 멋지고 극적인 작품으로 산타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의 '테레사 성녀의 황홀' (1652)을 들 수 있다. 에스파냐의 성녀 아빌라의 테레사가 신비주의 황홀경에 빠진 순간을 묘사한 이 제단 장식은 베르니니의 최고 걸작 중 하나다. 이 작품은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라 조각, 프레스코, 스투코 (건축물 벽면에 바르는 미장 재료)와 조명이 함께 어우러져 이 극적인 사건 현장에 관객이 참여하는 듯한 착시 현상을 창조해낸 종합 예술이다. 성녀 테레사 (1515 ~ 1582)는 영적으로 신과 하나가 되는 신비 경험을 자주 했다. 특징적인 것은 그 신비 경험, 소위 '심장의 꿰뚫림림 (transverbration)' 현상을 글로 남겼다는 점이다.
종교적 열정 형상화한 '테레사 성녀의 황홀'
산타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의 '테레사 성녀의 황홀'은 베르니니의 종교적 열정을 형상화한 가장 극적인 작품이다. 이 제단 장식은 에스파냐의 성녀 아빌라의 테레사가 신비주의적인 황홀경에 빠진 순간을 그려내고 있다.
"천사가 들고 있는 황금 창의 끝에는 불이 붙어 있는 듯합니다. 창이 내 심장을 뚫고 내장까지 뚫었는데···. 화살을 뽑을 때 내장이 온통 빨려나가는 듯했으며, 나는 신에 대한 위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랐습니다. 고통이 너무 심해 신음 소리가 나왔지만, 동시에 큰 고통이 가져다주는 달콤함이 너무 커서 이 상태가 멈추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이 서술은 에로틱한 느낌을 주기에 논란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베르니니가 표현한 성녀의 모습은 더욱 그런 느낌을 준다. 성녀의 머리는 뒤로 젖혀져 잇고 눈은 반쯤 감겨 있으며 입은 벌어져 있다. 옷의 구김은 몸부림을 연상시키고, 화살을 든 천사의 표정은 유혹적이다. 베르니니는 정말로 강렬한 신의 사랑을 오르가슴에 비유한 것일까?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사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성 (聖)과 성 (性)을 연관시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몸과 마음이 함께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원래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육체와 영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건만, 타락 이후 낙원에서 쫓겨난 다음 현재 우리는 육체와 영혼이 싸우는 고통스러운 상태가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라이벌 예술가 보로미니에겐 냉랭
베르니니는 이 장면을 그야말로 연극적으로 표현했다. 성녀가 환희에 빠진 이 순간을 양쪽 박스에 위치한 코르나로 가문 사람들 (이 작품의 주문자들)이 지켜보면서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들뿐 아니라 이 작품을 지켜보는 관객들 역시 성녀의 엑스터시 순간에 직접 참여하면서 신비의 경험을 공유한다. 이 작품을 만든 후 베르니니는 힘든 일이 잇으면 테레사 성녀상 앞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베르니니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보로미니다. 베르니니보다 한 살 어린 프란체스코 카스텔리, 일명 보로미니 역시 일찍이 탁월한 작품으로 주목 받은 천재 예술가로서 보석같이 아름다운 명품 건축물들을 남겼다. 그렇지만 베드로 성당 정비 작업을 할 때 총감독을 맡은 베르니니가 보로미니를 부하처럼 다루고 그의 지대한 공헌을 이용하면서도 보수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 부당한 취급을 했다. 이 정비 작업에 큰 하자가 생겼을 때 보로미니가 자세한 도면까지 곁들여 베르니니를 비난하는 보고서를 제출한 후 두 사람의 관계는 회복 불가능하게 악화했다. 이후 베르니니는 여든 넘은 나이까지 왕성하게 세기의 명작들을 생산하며 최고의 예술가라는 명성을 누렸으나, 보로미니는 우울증으로 고생하다가 급기야 칼로 가슴을 찔러 자살했다. 하필 두 천재가 동시에 등장하여 서로 경쟁하는 통에 한 명의 탁월한 예술가가 더 크게 빛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퀴리날레와 산 카를로 성당
베르니니와 보로미니
당대 라이벌의 건축품
이젠 이웃처럼 마주봐
로마에서 꼭 한번 들러보기를 권하고 싶은 성당 둘이 서로 가까운 곳에 있다. 하나는 베르니니가 건축한 산탄드레아 알 퀴리날레 성당이다. 협소하고 길쭉한 땅에 성당을 지어야 하는 제약 조건에도 불구하고 베르니니는 원과 타원 모양을 이용한 단순한 구조로 멋진 건축물을 만들었고, 색도 온화한 톤을 사용하여 최대한 단순미를 살렸다. 이 작은 성당은 지극한 아름다움 속에 평안함을 주는 분위기여서 베르니니 자신도 노년에 이곳에 자주 들러 고요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보로미니가 건축한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이 있다. 상당히 복잡한 기하학적 구조를 사용하여 독특한 면모를 보이면서 동시에 형언하기 어려운 우아함을 간직한 이 건축물은 시대를 앞서간 명품으로 간주된다. 로마를 위대하게 만든 두 라이벌 건축가 · 조각가의 위대한 작품이 이제는 친근한 이웃처럼 마주하고 있다.
[출처 : 조선일보 2023년 4월 4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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