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제]
▲ 바티칸 교황청을 수호하는 스위스 근위대. / 브리태니커
함무라비 법전 <기원전 18세기>에 용병 기록··· 중세엔 '화이트 컴퍼니' 악명
스위스 근위대, 500년간 교황청 수호
1977년 제네바 협약 추가 의정서 따라
당사국이 용병 모집 · 훈련하면 처벌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지난달 23일(현지 시각) 갑작스러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숨졌습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지만, 지난 6월 반란을 시도했다가 하루 만에 진압됐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의 배후가 누구인지, 그가 이끌던 바그너그룹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바그너그룹은 중동, 아프리카 등 각지의 분쟁에 참전하며 러시아가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러시아 주요 전력이었지요.
용병은 금전적 보수를 대가로 고용된 전문 군인이에요. 원래 정치적 이권과 무관하지만, 특정 정치 세력을 돕는 과정에서 정치적 문제에 휘말리기도 한답니다. 오늘은 역사에 남은 특별한 용병들의 이야기를 살펴볼게요.
고대 시대부터 있었던 용병
용병이라는 직업은 언제부터 있었을까요? 용병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예요. 고대 함무라비 법전에서도 용병에 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어요. 기원전 18세기 제정된 것으로 추정하는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법전에는 '용병이 받아야 할 대가를 받지 못할 때 고용자를 처벌한다'는 내용이 있어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자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크세노폰도 용병 출신이랍니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기원전 559 ~ 기원전 330) 때 키루스는 자신의 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를 왕위에서 몰아내려고 그리스 용병을 모집했어요. 그리스 용병대는 '일만 용사(Ten Thousand)'라 불렸는데, 크세노폰도 용병으로 페르시아 내전에 참전했습니다. 용병 다수는 펠로폰네소스전쟁 (기원전 431 ~ 기원전 404) 참전 경험이 있는 숙련된 전사였지요. 그런데 전투 중 키루스가 전사하자 일만 용사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군대에 쫓기는 신세가 됐어요. 살아남은 용병들은 크세노폰의 지휘 아래 9개월간 험난한 여정을 거쳐 그리스로 귀환했어요. 매복군의 끊임없는 공격, 혹독한 날씨와 굶주림에도 그들은 병력의 4분의 3 가까이를 끝까지 유지했다고 해요. 크세노폰은 이때 경험을 담아 '아나바시스'를 저술했고, 이 책은 고대 용병들의 영웅담으로 남았답니다.
▲ ‘일만 용사 (Ten Thousand)’ 후퇴 장면을 그린 그림. / 위키피디아
중세 이탈리아 용병 '화이트 컴퍼니'
14세기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했던 용병 집단은 '화이트 컴퍼니 (White Company)'입니다. 이름의 유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주로 흰색 외투를 입은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어요. 이 부대는 백년전쟁 (1337 ~ 1453)에 참전한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은 영국인 존 호크우드 경의 지휘를 받으면서 1360년대 두각을 나타냈어요. 영국, 독일, 브르타뉴, 헝가리 등 다양한 국적의 군인과 모험가들이 모여들었어요. 특히 장궁술과 창술이 뛰어나기로 유명했으며, 신출귀몰한 기습 공격과 악천후에도 전투를 벌이려는 강한 의지력으로 적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들은 일거리가 없을 때는 인근 마을을 습격하고 약탈해 악명이 높았어요. 용병 부대에는 고용주와의 관계에서 법적인 분쟁을 관리하는 총무, 공증인 등 행정 직원도 있었다고 해요.
스위스 용병, 16세기부터 교황청 지켜
스위스 근위대는 16세기부터 지금까지 바티칸 교황청을 수호하고 있어요. 15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100만명 넘는 스위스 모험가가 유럽의 다양한 전투에서 용병으로 활약했어요. 창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으로 유명했지요. 교황 율리오 2세가 교황청 근위대를 창설하기 위해 스위스에 용병을 요청하면서 스위스 근위대가 창설됐습니다. 1506년 스위스 용병 약 200명이 로마에 도착했어요. 교황은 그들에게 '교회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내렸습니다. 스위스가 시민들의 용병 활동을 금지한 후에도 이 부대는 바티칸 근위대 역할을 계속 맡았어요.
스위스 근위대가 겪은 가장 치열한 전투는 1527년 5월 6일 있었어요. 신성로마제국이 로마를 침공했을 때 스위스 근위대 5분의 4가량이 교황 클레멘스 7세를 경호하던 중 사망했어요.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교황의 권고에도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워 충성심의 상징이 됐지요. 오늘날에도 매년 5월 6일이 되면 바티칸에서는 신참 스위스 용병들이 충성 서약을 한답니다.
▲ 미국 ‘플라잉 타이거스 (Flying Tigers)’는 상어 얼굴이 그려진 전투기가 특징이에요. / 위키피디아
'플라잉 타이거스'는 2차 대전 때 활약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주권을 가진 근대적인 국가가 출현했어요.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국민군이 탄생하면서 기존 용병제는 점점 사라지는 추세였지요. 용병이 다시 등장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부터입니다.
특히 2차 대전 중 미국 '플라잉 타이거스 (Flying Tigers)'가 유명합니다. 1941년 조직됐어요. 그들은 일본이 중국을 점령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자 창설됐는데,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이들의 활동을 허가해 줬어요. 위험한 만큼 급여도 높았어요. 보통 공군 조종사 월급의 두 배 이상을 받았다고 해요. 적군보다 전투기 기동성이 떨어졌지만, 플라잉 타이거스는 일본 항공기 296대를 격추하는 등 크게 활약했어요. 부대는 1942년 7월 공식 해체됐지만, 일부 용병은 제대하지 않고 남은 2차 대전 기간에 복무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여러 식민지가 독립하고 새 정권을 세우는 과정에서 내전과 쿠데타가 빈번히 일어났어요. 돈을 주고 전문적인 군사력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용병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죠. 정세가 불안정한 곳에는 용병 단체가 등장했어요. 지금도 기업화된 용병 단체 민간 군사 기업 (Private Military Company · PMC) 수백 개가 활동하고 있어요. 바그너그룹도 유명한 PMC 중 하나죠.
오늘날 용병은 합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현재 용병에 대한 국제적 정의는 보통 1977년 제네바 협약에 추가된 의정서를 따릅니다. 협약의 당사국이 용병을 모집하거나 훈련하는 등 행위를 할 경우 범죄 행위로 분류돼 처벌받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지요. 또 용병은 합법적인 전투원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포로로 잡힐 경우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에 마련된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임시 추모 공간. / EPA 연합뉴스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 · 구성 = 김윤주 기자 (yunj@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9월 6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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