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뱀]
▲ 바다뱀은 뭍이 아닌 바다에서 살 수 있게 진화했어요. 보통 한 번 숨을 쉰 다음 물속에서 머무는 시간이 30분을 넘지 않아요. / 영국 자연사박물관
납작한 꼬리가 지느러미 역할··· 24시간 잠수하는 종류도 있대요
얼마 전 영국 BBC 방송 다큐멘터리에 들이 소개됐어요. 보호 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바닷가에서 뱀을 잡아 대대손손 전해져 오는 비법으로 국을 끓인다는 내용이었죠. 할머니들이 물속에서 잡아 건져 올린 뱀은 바다뱀이랍니다.
뱀이라 하면 주로 숲속이나 바위틈을 스르르 다니거나 똬리를 튼 모습이 떠오르죠. 뱀 중에서 뭍이 아닌 바다에서 살 수 있게 진화한 해양 파충류가 바다뱀이랍니다. 같은 해양 파충류인 바다거북은 7종밖에 없는데, 바다뱀은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무려 74종이래요. 태평양과 인도양의 수온이 따뜻한 바다에 폭넓게 분포하는데 최근에는 우리나라 바다에서도 발견되는 횟수가 많아졌어요.
바다뱀은 물속 생활에 알맞게 적응해 생김새가 육지 뱀과 꽤 달라요. 가장 눈에 띄는 건 꼬리예요. 작고 볼품없는 육지 뱀 꼬리와 달리 바다뱀 꼬리는 끝이 뭉툭하고 세로로 납작해요. 물고기의 지느러미 또는 배의 노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는데 실제로 지느러미 · 노의 역할을 한답니다.
대부분 뱀의 콧구멍이 앞쪽을 향해 나있는 것과 달리 바다뱀은 위쪽을 향해 있어요. 물속에 있다가 주기적으로 숨을 쉬러 수면으로 올라와야 하는데, 이때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죠. 바다뱀은 한 번 숨을 쉰 다음 물속에서 머무는 시간이 30분을 넘지 않아요. 하지만 어떤 바다뱀은 24시간 가까이 물속에서 버티기도 한대요. 보통 살아가는 곳의 수심은 30 ~ 100m인데, 250m까지 내려갈 수도 있죠.
이렇게 수면과 바닷속을 오가면서 살아가려면 심폐 기능이 뛰어나야 해요. 실제로 바다뱀은 육지 뱀에 비해 허파가 아주 크답니다. 또 피부에도 호흡 기능이 있어 산소를 빨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수 있어요. 바다뱀은 육지 뱀보다 자주 허물을 벗는 편이에요. 허물 벗는 주기가 짧을수록 피부가 깨끗하게 유지돼 산소를 흡수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과학자들은 말해요.
바다뱀이나 바다거북처럼 일생 대부분을 바닷속에서 보내는 파충류는 몸속에 과도하게 쌓이는 소금기를 주기적으로 뱉어내게 해주는 '염류샘' 이라는 기관이 있어요. 바다뱀은 아래턱의 혀 밑에 염류샘이 있고, 바다거북은 눈 밑에 있어요. 바다뱀의 주된 먹잇감은 물고기인데, 입을 크게 벌려 물고기를 삼키는 모습은 여느 뱀과 비슷해요. 물고기 알을 먹는 바다뱀도 있어요.
대부분의 바다뱀은 몸속에서 알을 부화시킨 뒤 새끼 형태로 몸 밖으로 내보내는 '난태생(卵胎生)' 이에요. 일부 바다뱀은 뭍으로 올라와서 바위 밑이나 나무 틈 같은 곳에 알을 낳아요. 바다뱀은 독사로 악명 높은 코브라와 아주 가까운 친척뻘이에요. 그래서 바다뱀의 독은 뱀독 중에서도 아주 강력해요. 먼저 사람을 물 정도로 공격성이 강하지는 않지만, 자칫 물렸다가는 곧바로 죽음에 이를 수 있을 정도래요.
정지섭 기자
도움말 =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생태보전실 김일훈 전임연구원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6월 7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