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뉴스 속의 한국사

[책문 (策問)]

드무2 2023. 11. 9.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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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 (策問)]

 

 

 

 2016년 10월 16일 오전 서울 경희궁에서 열린 23회 조선시대 과거제 재현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과거 시험을 치르고 있어요. / 김지호 기자

 

 

 

"인재를 어떻게 구해야 하나"··· 임금이 직접 '논술' 출제

 

 

 

"정벌이야, 화친이냐" 등 정책 질문

'섣달그믐밤이 서글픈 이우' 묻기도

답변 모아 책으로 만들기도 했대요

 

 

 

최근 정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능)에서 '킬러 문항' 을 없애겠다고 밝혔어요. '킬러 문항' 이란 수능 시험에서 공부를 잘하는 수험생을 가려내기 위해 출제 기관이 의도적으로 출제하는 초고난도 문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보통 '킬러 문항' 은 정답률이 전체 수험생의 10%도 되지 않아요. 10명 중 9명은 틀린다는 뜻이지요. 또 어려운 내용을 출제하다 보니 공교육 과정을 벗어난 경우가 많아요.

수능 문제는 객관식 오지선다형이고, 수학의 경우 단답형 문제를 일부 포함해요. 오지선다형은 한 문제에 대해 다섯 개 보기 중 정답 하나를 고르게 하는 문제 형식이에요. 수험생은 모든 문항을 정해진 시간 안에 풀고 답안지에 표기까지 해야 하죠. 출제진은 푸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항을 출제하거나 대학생 혹은 전공자도 풀기 어려운 문제를 출제해요. 중 · 고등학교 중간 · 기말고사에도 이런 방식이 거의 비슷하게 운영되고 있지요.

학생들은 언제까지 이런 시험을 봐야 할까요? 우리 선조들은 이런 방식의 시험 대신 개인의 능력을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논술형 시험을 치렀어요. 조선 시대에 나라를 위해 일할 관리를 뽑는 과거 시험에는 '책문 (策問)'이라는 시험이 있었어요. 책문에 대해 알아봐요.

 

 

임금이 출제하는 논술형 시험, 책문

과거를 준비하는 학생이 시험을 보려면 보통 20년 이상을 공부해야 했어요. 유학에서 공부의 과정은 격물치지 (格物致知), 성의정심 (誠意正心)으로 표현해요. 이 말의 뜻은 '사물의 이치를 쉬지 않고 연구하고 파고들어 마침내 지혜에 이르고, 뜻을 성실히 해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 입니다. 격물치지와 성의정심의 과정 없이 관료가 되면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과거 시험에 응시하는 학생은 먼저 서울 혹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시험을 봤어요. 이 시험을 소과 (小科)라고 했는데, 인구 비례에 따라 지역별로 선발 인원이 정해져 있었어요. 소과 1차 합격자는 전국적으로 1400명, 2차 합격자는 200명 정도였어요. 소과 2차에 합격한 학생은 성균관에 입학해 1년 정도 공부하면 대과 (大科)에 응시할 수 있었어요. 대과에서는 2 ~ 3번 정도 시험을 보고 최종 33명을 선발했어요.

최종 33명은 마지막으로 임금 앞에서 시험을 치러 등수를 가렸는데, 이 시험을 전시 (殿試)라고 불렀어요. 책문은 대과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이었어요. 책문은 임금이 국가의 여러 가지 현안이나 인문적 소양을 응시생에게 묻는 문제를 말해요. 임금의 질문을 책문, 응시자의 답변을 대책 (對策)이라고 했어요.

 

 

대표적인 책문

임금은 응시자에게 어떤 책문, 즉 어떤 문제를 출제했을까요? 조선 시대 여러 임금이 출제했던 책문 중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잘하는 정치란 어떤 것인가?" "인재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정벌을 할 것인가, 화친을 할 것인가?" "6부의 관리들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가?" "섣달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 "교육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술의 폐해를 논하라." "나라를 망치지 않으려면 왕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외교관은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가?" "당면한 국가 현안에 대한 국가 정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책문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 정책을 많이 질문하고 있지만, 술이나 인생의 서글픔 등도 질문하고 있어요. 책문에서 학문의 깊이나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만 물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죠.

 

 

책문에 대한 예비 관료의 답 '대책'

대표적인 책문과 대책의 사례는 중종과 광해군 시기에 있었어요. 1507년 중종의 책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하는 정치란 어떤 것인가" 였어요. 이에 대해 문신 권벌 (權橃)은 "군주는 마음이 싹트기 전에 간직하고 기르며, 싹텄을 때 반성하고 살펴, 사물과 몸에 예속되지 말아야 합니다. 쉬울 때 어려움을 생각하고 작은 일에서 큰일을 이뤄야 합니다. 시작할 때는 마칠 때를 생각하고, 시작하면 마무리를 잘해야 합니다" 라는 대책을 제시했어요. 권벌이 제시한 대책의 핵심은 '개혁을 마음먹고 하려면 확실하고 끝까지 해야 한다' 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어요.

광해군 때는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이 무엇인가" 라는 책문이 출제됐어요. 이에 대해 문신 임숙영은 "조상이 물려준 자리를 잘 지키지 못하고, 조상이 물려준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하시니, 전하께서는 애초에 그 자리에 임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라는 대책을 제시했어요. 예비 관료 임숙영의 답변은 광해군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했겠지요.

책문을 작성하는 응시자는 모두 예비 관료라고 할 수 있어요. 예비 관료가 책문에 답한 대책의 글에는 중요한 특징이 있어요. 글이 간결하고 논리적인 일관성을 가지고 있었어요. 글쓴이의 감정을 과장해 표현하거나 사물을 너무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았어요. 객관적인 사실과 자기의 입장을 진솔하게 서술하고, 화려한 문장이나 논제를 벗어난 글은 금기시했어요. 예비 관료들이 작성한 대책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발행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대표적인 책으로는 '동국장원책 (東國壯元策)' '전책정수 (殿策精粹)' '책문준적 (策文準的)' 등이 있어요. 이 책을 보면 당시 예비 관료들이 어떻게 글쓰기를 하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살펴볼 수 있어요.

 

 

 

 조선 초기 장원급제자의 책문을 모은 '동국장원책' 표지. / 국립중앙도서관

 

 

 

객관식 시험은 장점이 많아요. 채점이 쉽고, 논술형보다 공정하다고 볼 수도 있어요. 우리나라 수능은 객관식 시험 체제 중 세계에서 가장 발전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학생들은 개념이나 원리를 공부하기보다는 기계적으로 문제를 정확하고 빨리 풀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학생들은 점점 '문제 풀이 기계' 가 된다는 비판도 있지요. 수능 시험 개혁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수능 시험 제도를 바꿀 때, 우리 전통적인 시험 제도였던 책문을 참고해도 좋겠습니다.

 

 

 

 '동국장원책' 과 비슷한 일종의 과거 시험 기출 문제집.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시대 문신 성삼문 등의 답변이 수록된 '동국장원책문 을집 (東國壯元策文乙集)'. / 국립중앙박물관

 

 

이환병 관악고 교감

 

기획 · 구성 = 김윤주 기자 (yunj@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7월 20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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