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 (土偶)]
▲ 여러 가지 춤을 추는 사람 토우 (경북 경주 황남동유적에서 출토, 5세기). / 국립중앙박물관
춤추고, 노래하는 '흙 인형'··· 신라인의 삶과 죽음 담았죠
10㎝ 안팎으로 만들어 제기에 붙여
오리 · 개 · 소 등 동물 모양 47종 확인
개구리 입에 문 뱀은 '다산' 나타내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오는 10월 9일까지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특별전이 열려요. 상형 토기(象形 土器)와 토우장식 토기를 통해 고대인의 생활 모습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는 전시예요. 국보 · 보물 15점을 비롯해 총 332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 어떤 재미난 토기들이 있는지 알아볼까요.
영원한 삶을 바라는 토기
신라와 가야의 무덤에서는 사람과 동물, 사물 모습을 본떠 만든 상형토기가 종종 발견돼요. 무덤에서 출토되는 상형 토기는 죽은 이의 다음 생을 위한 상징적 의미가 담긴 제사용 그릇이에요. 죽은 이의 영혼을 하늘로 안내하고, 혼자 먼 길을 떠나는 이의 동행자가 돼 주었죠. 동물 모양 토기 중에는 새와 말, 사슴, 거북이처럼 실재하는 동물도 있지만, 용처럼 상상의 동물도 있어요. 새 모양 토기가 가장 많이 발견되는데 대부분 오리를 본떠 만들었어요. 오리 모양 토기는 겉은 새처럼 보이지만 속이 비어 있고, 물을 넣고 따를 수 있는 구멍이 둘 있어서 제사를 지낼 때 주전자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돼요.
오리 모양 토기는 3세기 중엽 경북 경주와 울산 지역 덧널무덤에서 껴묻거리(무덤 속에 시체와 함께 묻는 물건)로 무덤에 부장(副葬)하기 시작해 점차 낙동강 하구 부산과 김해 지역까지 확산했어요. 낙동강 유역에서는 머리에 큰 볏이 달리고 부리가 넓은 오리 모양 토기가 널리 유행했는데, 무덤에 넣기 전에 일부러 깨뜨려 머리나 몸통, 다리를 따로 부장한 경우도 있어요. 중국 역사서 삼국지에는 '변한과 진한에서는 큰 새의 깃털을 이용해 장례를 지내는데, 이는 죽은 사람이 새처럼 날아다니라는 뜻이다' 라는 기록이 있어요. 당시 사람들은 새를 죽은 영혼을 하늘로 안내하는 전달자 같은 것으로 여겼나 봐요. 새 모양 토기는 새를 숭배하던 고대인의 생각이 반영된 거죠.
▲ 말 탄 사람 뿔잔 (경남 김해 덕산에서 전해짐, 5세기 가야). / 국립중앙박물관
말이나 배, 수레처럼 이동 수단을 본떠 만든 상형 토기도 자주 발견돼요. 말 모양 토기는 5세기 들어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사람이 말을 타고 있는 것과 말만 따로 제작한 것으로 구분돼요.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말 탄 사람 모양 토기 1쌍은 속이 비고 물을 따르는 주둥이가 달려 있어 주전자처럼 사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어요. 김해 덕산 출토품으로 알려진 말 탄 사람 뿔잔 [角杯]은 굽다리 위에 사각판이 있고, 그 위로 갑옷을 입은 말과 무사가 있어요. 말에 탄 무사는 머리에 투구를 쓰고 방패와 창을 들고 있는데 말 엉덩이에 'U' 자형 뿔잔이 붙어 있어요. 몸체에 액체를 담을 수 있는 말 모양 토기와 달리 뿔잔 부분에 액체를 담도록 한 거예요.
뿔잔은 소나 사슴 등 짐승 뿔을 잘라 음료를 따라 마시던 습관에서 유래한 그릇이에요. 삼국유사에는 뿔잔과 관련한 재미난 이야기가 남아 있어요. 어느 날 탈해가 백의라는 자에게 물을 떠오라고 시켰는데, 백의가 돌아오는 길에 먼저 물을 맛보려 하자 뿔잔이 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예요. 뿔잔이 잘못된 행동을 알려주는 신비한 물건으로 묘사돼 있고, 신라에서 일찍부터 뿔잔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죠.
이 밖에도 등잔이나 수레바퀴, 신발, 배, 집 모양 토기 등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상형토기가 더 있어요. 다양한 상형 토기는 죽은 영혼을 다음 세상으로 안전하게 인도해 줄 거라는 믿음과 함께 고대인들의 일상생활을 보여준답니다.
신라인의 삶과 헤어짐이 담긴 토우
토우(土偶)는 '흙으로 만든 인형' 이라는 뜻으로, 토우 장식 토기는 10㎝ 내외의 작은 장식을 덧붙인 토기를 말해요. 지금까지 토우는 토기 몸체와 떨어진 채 별개 유물처럼 소개됐지만, 본래는 굽다리접시의 뚜껑이나 긴목 항아리의 목 부분에 붙어 있던 것이에요. 상형 토기와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을 위해 무덤에 넣은 제사용 그릇의 일종이에요. 토우 하나하나에는 당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가 담겨 있어요.
토우 장식 토기는 신라에서 아주 큰 무덤 중 하나인 황남대총을 비롯한 대릉원과 주변 지역에서 주로 발견됐어요. 금관이 출토되는 최상위 계층의 무덤에서는 토우 장식 토기가 거의 발견되지 않고, 오히려 중 · 소형급 돌무지덧널무덤 안에서 주로 발견됐습니다.
토우로 만든 인물의 옷차림을 보면 머리에 뾰족한 모자를 쓴 것도 있고, 바지나 치마, 허리띠를 표현한 것도 있어요. 비파나 가야금처럼 생긴 현악기, 피리처럼 생긴 관악기 등을 연주하는 모습도 종종 보여요. 탈을 쓰고 춤을 추거나 두 손을 모으고 노래하는 듯한 토우도 있죠. 이러한 토우들은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신라인의 음악과 춤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모두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의례의 한 과정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돼요.
▲ 사람과 개 토우 장식 뚜껑(왼쪽)과 어미 개의 꼬리를 문 강아지 · 지네 · 자라 · 새 토우 장식 뚜껑 (황남동유적, 5세기). / 국립중앙박물관
토우 장식 토기에는 다양한 동물이 붙어 있어요. 닭이나 오리 · 갈매기 · 두루미 · 원앙 · 올빼미 · 후투티 같은 날짐승도 있고, 게 · 가재 · 불가사리 · 자라 · 거북 · 메기 · 물개 같은 물짐승도 있어요. 개 · 고양이 · 소 · 호랑이 · 표범 · 토끼 · 사슴 · 뱀 · 개구리 · 두꺼비 같은 뭍짐승을 비롯해 용이나 신구(神龜 · 몸은 거북이고 머리와 꼬리는 용의 형상을 한 동물) 같은 상상의 동물도 있는데 지금까지 47종이 확인됐다고 해요. 노루나 고라니·멧돼지 같은 동물을 사냥하는 모습을 비롯해 어미 개가 강아지 목덜미를 물어 옮기는 듯한 모양의 토우도 있어요.
▲ 왼쪽은 거북과 물고기 토우 장식 뚜껑 (황남동유적, 5세기). 오른쪽은 개구리를 문 뱀 토우 장식 뚜껑 (경주 월성로, 5세기). / 국립중앙박물관
경주 노동동과 미추왕릉 지구에서 발견된 토우 장식 긴목 항아리에는 개구리 뒷다리를 무는 뱀과 현악기를 연주하는 여자, 지팡이를 든 남자, 새와 물고기 등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놓여 있어요. 뱀이 개구리 뒷다리를 물고 있는 토우는 자연 속 생존 경쟁을 보여주지만, 뱀과 개구리가 알을 많이 낳는다는 점에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해요. 토우로 표현한 갖가지 동물들은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의례와 깊이 관련된다는 점에서 재생이나 부활, 영혼의 안내, 다산 같은 다양한 상징성을 갖고 있답니다.
이병호 공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도움말 = 국립중앙박물관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도록
기획 · 구성 = 김윤주 기자 (yunj@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6월 22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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