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의 핵무기 통제와 확산]
전 세계 핵탄두 9500개··· 개발비 낮아져 최근 빠르게 확산
러시아 · 중국 등 반미 진영 군비 확장
북한 · 인도 등 '핵 신흥국' 도 속도 내
신기술이 더 강한 무기 개발 자극
1940년대 미국이 원자폭탄을 만들 목적으로 추진한 '맨해튼 프로젝트' 의 총책임자 로버트 오펜하이머 (1904 ~ 1967)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오펜하이머' 가 지난 15일 국내 개봉했어요. '원자폭탄의 아버지' 라고 불리는 오펜하이머는 역사상 최초의 핵실험이 성공한 뒤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됐다" 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핵이 인류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 고 우려해 말년에는 '군축 (軍縮 · 군비 축소)의 아버지' 로 불렸다고 해요.
하지만 오펜하이머가 세상을 떠난 지 50여 년이 흐른 지금, 각국이 핵무기를 빠르게 늘려가며 세상을 파괴로 몰아넣을 위험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어요. 영화 '오펜하이머' 원작에 해당하는 책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서문에서 원작자인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은 "전 세계적으로 냉전이 종식됐지만, 오펜하이머가 1946년 제안했던 핵무기 국제 통제 계획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고 썼어요.
2017년 이후 늘어나는 핵무기
실제로 국제사회에서 핵무기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어요. 당장 지난 17일 (현지 시각) CNN에 따르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나토 (북대서양조약기구 · NATO) 침략이 있을 경우 즉시 핵무기를 사용할 것" 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미 동맹국 러시아의 핵무기를 넘겨받아 배치한 상황이에요. 이튿날 한국과 미국, 일본 3국 정상이 발표한 '캠프 데이비드 원칙' 에 "핵무기가 다시는 사용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 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도 핵 위협에 대한 우려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와요.
미국과학자연맹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에 있는 핵탄두는 9576기에 달해요. 2017년 9282기로 바닥을 친 뒤 다시 늘어나기 시작해 이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매년 증가하고 있어요. 2017년은 공교롭게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해예요.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강력하게 밀어붙인 '미국 제일주의' 가 러시아 등 다른 핵무기 보유 국가를 자극했다고 분석해요.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심화한 미국 제일주의로 불안정한 상황이 되면서 미국과 반대편에 있는 국가들이 군비를 확장하고 있다" 고 분석했어요. 특히 러시아는 2017년 핵탄두 수가 4300기까지 감소한 뒤 2020년까지 소폭 증가에 그쳤지만, 2021년 돌연 4495기로 크게 늘렸죠. 러시아는 기존 보유량이 많았던 만큼 증가율 (5%)은 크지 않지만, 탄두 수만 놓고 따져 보면 이 시기 가장 많이 늘린 국가예요.
이른바 '핵 신흥국' 이 뒤늦게 핵무기 개발에 나선 영향도 커요. 2017년 이후 현재까지 북한 (100%), 인도 (26%), 파키스탄 (21%), 이스라엘 (13%) 등 핵 신흥국은 모두 10% 이상의 핵탄두 수 증가율을 기록했어요. 이들의 핵 확산 속도가 빨라진 것은 핵무기 개발에 드는 비용이 저렴해졌기 때문이에요. 1945년 미국이 처음 핵을 개발할 당시 투입된 비용은 22억달러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330억달러 (약 44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어요. 반면 최근 북한이 핵 개발에 들인 비용은 최대 15억달러 (약 2조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죠.
최근 특히 위협적인 나라는 중국이에요. 시진핑 주석이 임기를 시작한 2013년 기준 250기였던 중국의 핵탄두 수가 올해 410기로 늘었습니다. 1971년 100기에서 2013년 250기로 150기가 늘어나는 데 40년 걸렸는데, 이후 160기가 더 증가하는 데는 10년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죠.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벌어지면서 전 세계가 군비를 늘리는 추세" 라며 "군비 경쟁은 동북아와 유럽 할 것 없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고 분석했어요.
▲ 북한이 지난달 공개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사진. 핵 무인 수중공격정 (핵어뢰) ‘해일’ 로 추정되는 무기가 공개됐어요. / 노동신문 뉴스1
냉전 이후 핵 감축 노력은 물거품 될까
핵 확산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서 기존 핵 보유국이 추진해온 핵 감축 노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어요. 전 세계 핵탄두 수는 1968년 핵확산금지조약 (NPT)에도 불구하고 1986년 6만4452기에 이를 만큼 크게 늘었어요. 냉전이 끝나며 비로소 핵 감축이 결실을 보는 듯했죠. 미국과 러시아는 1991년 소련 붕괴 후 2009년까지 실전에 배치한 핵탄두 수를 6000기까지 줄인다는 내용의 조약 '전략무기감축협정 (START · 스타트)' 을 체결했어요. 2010년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실전 배치 핵탄두 수를 2026년까지 1550기로 줄인다는 내용의 '신전략무기감축조약 (New START · 뉴스타트)' 을 맺었죠. 하지만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압박이 거세지자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했어요.
전문가들은 핵탄두 증가보다 더 큰 문제는 핵 기술의 현대화라고 지적해요. 극초음속 미사일 등 파괴력 높은 신무기가 개발되면서 기존 핵 방어 능력이 무력화되고, 다시 상대국이 더 강한 무기를 개발하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201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국제 반핵 단체인 '핵무기폐기국제운동 (ICAN)' 이 지난 6월 발표한 '2022년 전 세계 핵무기 지출 보고서' 에 따르면 전 세계 핵무기 투자 규모는 2019년 729억달러, 2020년 726억달러, 2021년 824억달러, 지난해 829억달러로 나타났어요. 핵무기 제작에 투입된 비용이 4년 만에 100억달러 (약 13조원) 가량 늘어난 것이죠.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여전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나토의 무기 제공이 오히려 핵 위협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와요.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의 댄 스미스 소장은 최근 미국 의회 전문 매체 더 힐에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시기로 흘러가고 있다" 며 "각국 정부가 협력할 방법을 찾는 것이 필수적" 이라고 전했어요.
▲ 세계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티니 실험’ 두 달 뒤인 1945년 9월에 잔해를 살펴보는 오펜하이머 (왼쪽). / 위키피디아
조성호 · 김나영 기자
기획 · 구성 = 김윤주 기자 (yunj@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8월 21일 자]
'신문은 선생님 > 숨어있는 세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대상을 담은 노래] (0) | 2023.12.09 |
---|---|
[영불해협] (0) | 2023.11.27 |
[금서 (禁書)] (0) | 2023.11.18 |
[로마의 극장] (0) | 2023.11.16 |
[도로와 중앙 집권] (0) | 2023.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