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와 중앙 집권]
▲ 이탈리아 폼페이에 남아 있는 로마제국 시절 도로. / 위키피디아
로마, 8만5000㎞ 길 깔아··· 페르시아는 28㎞마다 역 설치
공병대가 로마와 정복지 도로로 연결
페르시아, '역참 제도' 로 황제권 완성
수레바퀴 폭 통일해 中 지배한 시황제
최근 우리나라 곳곳에 '괴 (怪) 우편물' 2000여 개가 배송됐어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국제우편물은 중국에서 출발해 대만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파악됐어요. 국제우편망이 발전하면서 생긴 소동이지요. 과거 광대한 영토를 가진 제국들은 새로운 소식을 어떻게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가 큰 관심거리였대요. 나라를 효율적으로 잘 다스리는 것과 관련된 중요한 일이었거든요. 제국을 지배하는 위대한 왕이 되려면 명령을 잘 전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일이 필수적이었죠.
'왕의 길' 완성한 페르시아
기원전 6세기 키루스 2세는 바빌로니아를 정복하고 서아시아를 통일했어요.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가 탄생한 거예요. 성경에서 '고레스왕' 으로 등장하는 키루스 2세는 정복한 국가의 백성도 일정한 세금을 내면 종교와 풍습, 언어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준 것으로 유명해요.
그를 이은 다리우스 1세는 기원전 5세기 북아프리카 이집트부터 인도 인더스강까지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어요. 페르시아는 이민족에 대한 관용 정책과 중앙 집권 체제를 바탕으로 약 200년 동안 번영을 누렸는데, 그 바탕에는 중앙 집권을 가능하게 만든 여러 제도가 있었어요. 전국을 20주로 나누어 총독을 파견했고 '왕의 귀' '왕의 눈' 이라 불린 감찰관도 보냈어요. 화폐와 도량형을 통일해 지역들이 원활히 교류할 수 있도록 했죠.
가장 중요한 정책은 바로 도로 건설과 역참 제도였어요. 페르시아는 도로를 건설해 제국의 주요 도시를 연결했어요. 왕의 명령이 수도에서 지방으로 신속히 전달될 수 있도록 역참 제도도 마련했죠. 특히 다리우스 1세는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고자 '왕의 길' 을 건설했어요. '왕의 길' 은 다리우스 1세가 수도로 삼은 이란 남서부 도시 수사에서 시작해 서아시아를 최초로 통일한 아시리아 수도가 있던 니네베를 거쳐 종착점인 튀르키예 서부 사르디스까지 이어졌어요. 그 길이만 해도 거의 2400㎞에 달했어요.
'왕의 길' 에는 약 28㎞마다 역이 설치돼 있었는데,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관리에게 숙소와 말을 제공했어요. '역사의 아버지' 라 불리는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저서 '역사' 에서 "살아있는 것 가운데 페르시아의 전령처럼 빠른 것은 없다. 눈과 비도, 더위도, 밤의 어둠도 전혀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라고 썼대요. '왕의 길' 과 역참 제도를 통해 황제의 통치력이 전국 곳곳에 미치면서 강력한 황제권이 완성된 거예요.
▲ 진 시황제 무덤에 있는 흙으로 만든 병사 모형. / 브리태니커
중국을 영어로 부르는 '차이나 (China)' 라는 말은 '진 (Chin)' 나라에서 왔다고 해요. 진나라는 기원전 221년 강력한 법가 사상을 바탕으로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 국력을 키워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어요. 중국을 통일한 중국 최초의 황제가 바로 진 시황제랍니다. 시황제는 중앙 집권 체제를 정비하려고 여러 정책을 시행했어요. 우선 전국을 36군 (郡)으로 나누고 그 아래 현 (縣)을 설치한 후 관리를 파견하는 군현제를 도입했어요. 지역마다 다른 문자와 도량형, 화폐를 통일했죠. 흉노족의 침입을 막으려고 지역마다 있었던 장성을 연결해 만리장성을 만든 것도 유명해요. 하지만 이 모든 정책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수레바퀴 폭을 통일하고, 전국에 도로를 건설한 일이었어요. 시황제는 자신의 명령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문자를 통일했어요. 또 빠른 소통을 위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도로를 건설했죠.
시황제는 재위 기간 5차례나 전국을 순행했대요. 황제의 행차인 순행은 황실이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수많은 사람과 물자가 한꺼번에 이동하는 일이었어요. 이를 위해 도로를 완벽히 정비해야 했죠. 시황제 행차는 이미 정복한 여섯 나라의 중심지로 향했어요. 행차를 준비하면서 과거 7개로 나뉘어 있던 나라 사이를 잇는 도로가 정비될 수 있었죠. 정비된 도로는 넓은 중국을 하나로 통일했고, 이후 2000년간 이어진 중국 왕조의 기반이 됐다고 볼 수 있어요.
▲ 고대 로마 때 건축 장면을 새긴 부조. / 위키피디아
로마는 기원전 8세기 이탈리아 중부 작은 도시국가로 출발했지만, 기원전 3세기에 이르면 지중해 일대를 장악할 정도로 성장해요. 기원후 200여 년 동안 '지중해를 호수로 삼았다' 고 할 정도로 대제국을 이뤄 '팍스 로마나 (로마의 평화)' 시기를 누렸죠. 로마는 넓은 제국을 다스리고 사람과 물자 이동을 원활히 하기 위해 정복지에 큰 도시를 건설하고 이를 도로로 연결했어요. 로마 군대에는 도로 건설 등 토목 공사를 담당하는 공병대가 있었어요. 이들의 주 업무는 정복지와 로마를 잇는 도로를 건설하는 것이었죠. 로마인에겐 '길은 직선으로 만들어야 한다' 는 신념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신념에 따라 산을 뚫기도 하고 골짜기에 높은 다리를 건설하기도 했어요.
로마인들은 어떻게 도로를 만들었을까요? 로마 공병대는 먼저 땅을 1 ~ 2m 정도 파 모래를 깔아 다진 후, 30㎝ 정도 높이로 자갈을 깔았어요. 그 위에 주먹만 한 돌을 얹고 호두알 크기의 돌을 덮었다고 해요. 이게 끝이 아니에요. 돌 위에 다시 모래와 자갈을 깔고 도로의 표면이 되는 평평한 돌을 올려 도로를 완성했죠. 로마인들은 이처럼 복잡하고도 견고한 방식으로 도로를 건설했는데, 아직도 유럽 곳곳에 로마제국 당시의 도로가 남아 있어요.
3세기 말쯤 로마인들이 건설한 도로 길이는 약 8만5000㎞에 달했대요. 어디에 사는 정복민이든 로마인들이 건설해 놓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로마에 도착할 수 있었을 거예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는 말이 나온 배경이죠. 로마제국 모든 도로의 기준점은 로마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때 세운 신전 표지석 '골든 마일스톤 (밀리아리움 아우레움)' 이라고 해요. 이 표지석을 기준으로 도로 길이를 계산하고, 주요 도시마다 이정표를 세웠다고 하네요. 이렇게 치밀하게 완성된 로마의 길을 보면 로마제국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 수 있어요. 제국의 길은 곧 황제의 권력이기도 했지요.
▲ 이란 수사에 있는 다리우스궁 유적. / 위키피디아
정세정 장기중 역사 교사
기획 · 구성 = 김윤주 기자 (yunj@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8월 2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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