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남풀]
▲ 거의 항상 꽃잎을 오므리고 있는 과남풀 꽃. 청보라색 꽃은 늦여름부터 가을 막바지까지 피어요. / 김민철 기자
수줍게 오므린 청보랏빛 꽃잎··· 늦여름에 피어 가을 소식 알려요
경기 가평에 있는 화악산 등에 과남풀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과남풀 꽃은 늦여름 피기 시작해 가을의 시작을 알립니다. 청색에 가까운 청보라색 꽃은 언제 보아도 세련미가 있습니다.
과남풀은 용담과 (科) 여러해살이풀로 전국적으로 분포하지만, 약간 깊은 산이나 풀밭에 가야 볼 수 있는 식물입니다. 높이는 50 ~ 100㎝ 정도로 대부분 곧게 서 있습니다. 꽃이 예뻐서 꽃다발이나 꽃꽂이에도 많이 쓴다고 합니다.
과남풀 꽃의 특징은 거의 꽃잎을 오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좀처럼 속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아직 덜 피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늘 그 상태입니다. 햇빛이 좋을 때는 약간 벌어지기도 합니다. 저렇게 꽃잎을 오므리고 있으면 벌이 어떻게 들어가나 생각했는데, 한번은 제법 큰 벌이 자연스럽게 몸을 틀면서 꽃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곤충이 과남풀 꽃 속에서 하룻밤 자고 가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숙박비는 꽃가루를 옮겨 주는 것으로 치르겠지요. 곤충들이 자고 갈 경우 꽃가루받이 성공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고 합니다.
과남풀 잎은 마주 달리는데, 긴 타원 모양으로 길쭉하고 끝이 뾰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희미한 잎맥이 3 ~ 5개 있고, 잎 가장자리는 밋밋합니다. 잎자루는 없고 밑부분이 줄기를 감싸고 있습니다. 예전엔 칼잎용담과 큰용담을 구분했는데, 현재는 과남풀로 통합됐습니다. 과남풀이란 이름은, 관음초 (觀音草)로 부르던 것이 관음풀로 변하고 또 세월이 지나면서 과남풀로 바뀐 것이라고 합니다.
용담은 과남풀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약간 다릅니다. 우선 꽃이 진한 보라색이고, 보통 꽃잎을 오므리고 있는 과남풀과 달리 용담은 꽃잎이 활짝 벌어져 뒤로 젖혀 있습니다. 꽃받침조각도 용담은 수평으로 젖히는데, 과남풀은 딱 붙어 있습니다. 과남풀은 대체로 높은 산지에서, 용담은 낮은 산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용담이라는 이름은 뿌리의 쓴맛이 웅담보다 강하다고 해 붙었다고 합니다.
과남풀과 용담처럼 산에서 만나는 가을 야생화는 유난히 보라색이 많습니다. 가을 야생화의 보라색은 진하면 진한 대로, 연하면 연한 대로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가을 야생화에 보라색이 많은 이유가 있겠지요? 보라색은 곤충 눈에 잘 띄는 색이라고 합니다. 곤충의 활동이 제한적인 가을에는 이들 눈에 잘 띄는 색으로 꽃이 피어야 유리하겠죠. 꽃 색 하나에도 식물의 전략과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권정생의 소설 '몽실 언니' 는 6 · 25전쟁 통에 부모를 잃고 동생들을 돌보는 몽실이 이야기입니다. 소설엔 몽실이가 초가을 산들바람이 불 때 동생 영순이에게 주려고 '댓골 가는 고갯길에서 과남풀 꽃' 을 따 모으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분도 산길을 걸을 때 보라색 꽃이 보이거든 혹시 과남풀 아닌지 확인해보기 바랍니다.
김민철 기자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8월 21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