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전후 농축산업 기반 닦아준 미국 헤퍼인터내셔널의 손길]
염소가 생겼어요
헤퍼인터내셔널이 보낸 가축을 받아든 한국 어린이들. / 헤퍼코리아
"미국이 준 소 2마리가 7남매를 키웠다"
한국을 위한 '노아의 방부' 작전
유정란 21만개, 돼지 331마리 등
1952년부터 가축 3200마리 보내
폐허의 땅에 희망을 선사하다
"기증받은 소 덕분에 목장 시작
선교사들이 기술까지 가르쳐줘"
헤퍼 도움으로 자립한 농업인들
이젠 네팔 빈곤층 위해 소 기부
경기도 작은 읍 장호원의 서기였던 최은영 (1929~1978)씨는 1964년 다니던 교회를 통해 홀스타인 얼룩소 한 마리를 받았다. 고향은 6 · 25전쟁으로 초토화됐고, 동네에서는 가축을 찾아보기 힘들던 시기였다. 최씨에게 소를 준 곳은 미국에 본부를 둔 헤퍼인터내셔널 (헤퍼 · heifer, 암송아지라는 뜻)이란 비영리단체였다. 최씨는 2년 후 헤퍼에서 저지 품종의 황토색 젖소 한 마리를 더 받아 목장을 시작했다.
최씨의 손자 최충희씨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나는 헤퍼의 도움을 받은 농가 3세대” 라며 “할아버지는 받은 소를 기반으로 우리 아버지를 포함해 칠남매를 교육했다. 남매 중 다섯은 대학까지 나왔다” 고 했다.
최씨 농가에서 태어난 첫 암송아지는 이웃에게 보냈다. 헤퍼와 사전에 서약한 ‘패싱 온 더 기프트 (passing on the gift · 선물 전파하기)’ 를 실천한 것이다. 최씨가 처음 받은 소도 헤퍼의 도움을 받은 다른 목장 소가 낳은 것이었다.
최씨 가족은 6 · 25전쟁 이후 헤퍼가 진행한 ‘한국을 위한 노아의 방주 작전’ 수혜 가구 중 하나다. 헤퍼는 1952년부터 1976년까지 선박 · 항공편으로 유정란 21만6000개, 돼지 331마리와 암소 222마리 등 가축 약 3200마리를 한국으로 보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 국민들이 가축을 키워 번식시킬 수 있도록 자립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본지와 인터뷰한 헤퍼의 수혜자들은 “헤퍼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전후 한국의 1세대 농가를 이뤄 한국 축산업 기반을 만들었다” 고 했다.
한국행 비행기 타는 달걀
1952년 4월 1일 미국 시카고 미드웨이 공항에서 설 메츠거 (왼쪽) 헤퍼인터내셔널 사무총장과 임병직 (오른쪽) 주유엔 한국 대사 등이 한국으로 보내는 유정란을 살펴보고 있다. / 헤퍼인터내셔널
지난달 26일 경북 안동에서 만난 이재복 (86)씨도 헤퍼의 도움을 받아 자립 발판을 다졌다. 다섯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이씨는 홀어머니 밑에서 농사지을 땅 한 평 없이 가난하게 자랐다. 이씨는 1960년대 후반, 군 제대 이후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다 헤퍼에서 파견한 농업 선교사 폴 킹스베리 (Kingsberry)를 만났다. 1957년 한국에 온 킹스베리는 한국에서 농촌 경제 발전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고, 이씨에게도 농축산 기술을 배우라고 권했다. 이씨는 그의 도움으로 대전의 기독교 농민 학원을 수료했고, 헤퍼가 수료생들에게 준 젖소 두 마리를 받아 마을로 돌아왔다. “전쟁이 막 끝나서 농축산을 가르쳐 줄 사람이나 지도서도 없고 막막한 거라. 근데 이제 선교사들이랑 농민 학원이 이렇게 다 가르쳐 줬지. 그래서 살았소.”
헤퍼는 한국 축산업이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될 즈음인 1976년 철수했다가, 2020년 한국 지부 (헤퍼코리아)를 다시 설립했다. 40여 년 만에 다시 연 지부는 가축을 받는 처지로서가 아닌, 도움이 필요한 다른 나라에 가축을 보내기 위해 가동을 시작했다. 헤퍼코리아는 2021년 ‘네팔에 젖소 101마리 보내기 프로젝트’ 를 시작했다. 최씨 가족과 이씨 모두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네팔에 젖소를 기부했다.
이씨는 “나는 미국은 늘 참 부유하고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고 했다. “이런 나라와 동맹이라니 얼마나 든든합니까. 이제 우리도 다른 나라에 그런 도움을 주도록 해야겠지요.”
유재인 기자
한국행 비행기 실린 꿀벌 150만 마리 죽을까봐··· 고도까지 낮춰
지원에 결정적 역할한 설 메츠거
6 · 25전쟁 때 한국 찾아 도움 결심
70년 전 전쟁으로 황폐화된 한국 땅에 ‘물고기를 주는 대신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겠다’ 며 가축 3200여 마리를 보낸 헤퍼인터내셔널 (헤퍼) 창립자는 댄 웨스트 (West)였다. 그런 그의 아이디어를 이역만리 한국 땅을 찾아 실제 행동에 옮긴 인물은 당시 사무총장 설 메츠거 (Metzger · 2006년 별세)다. 최근 본지와 화상 인터뷰를 한 메츠거의 장녀 캐슬린은 “얼마 전 아버지가 쓴 일기 중에서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고 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일한 좋은 소식이란, 그와 그의 자녀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것 (희망)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오로지 그런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메츠거는 인디애나주 (州)에서 농사를 지으며 고등학교 교사를 하던 1945년, 헤퍼에서 가축을 운반할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이어 1951년 이 재단의 사무총장 신분으로 구호 수요 조사를 위해 정전 협상이 진행 중이던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본부에 “전쟁으로 아무것도 안 남았다. 당장 지원이 필요하다” 고 주장했다.
동물을 태평양 건너 한국으로 보내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예컨대 헤퍼는 벌 약 150만마리가 담긴 꿀벌 통 200개를 한국에 비행기로 보냈는데 꿀벌은 고도에 민감해 너무 높이 날면 모두 죽을 위험이 있었다. 이를 위해 당시 비행기는 고도를 평상시의 절반 이하 (약 4000피트)로 유지해야 했다고 한다.
메츠거의 둘째 딸 바버라는 “헤퍼에서 두세 번 전기 (傳記)를 남기자고 연락이 왔지만 아버지는 모두 거절하셨다” 며 “대신 아버지가 한 일에 대한 증거로 지금의 한국이 남았다” 고 말했다. 메츠거의 가족들은 “한국은 과거 도움을 받던 국가에서 이제 다른 나라를 돕는 국가로 발돋움했다” 면서 “이런 변화를 만들어줘서 고맙고 전 세계 많은 사람을 변화시킬 것” 이라고 했다.
뉴욕 = 윤주헌 특파원
[출처 : 조선일보 2023년 11월 24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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