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위트컴 장군 조형물 제막식 시민 1만8359명이 힘 보태]
전쟁고아들과 함께··· 소박한 위트컴 장군 동상
11일 부산 평화공원에서 열린 위트컴 장군 기념 조형물 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흰색 천을 걷어내 다섯 전쟁고아와 함께 걸어가는 장군의 모습을 공개하고 있다. 뒤편 비석 앞 · 뒷면에는 장군의 업적과 조형물 건립에 동참한 시민들의 이름을 새겼다. / 뉴시스
시민 성금으로 부활한 '부산 재건의 아버지'
이재민 위해 軍창고 연 군수사령관
부산역 화재로 3만여명 피해 보자
군사물자 풀어 사람들 먹여살려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 아냐···
그 나라 국민 살펴야 진정한 승리"
전쟁으로 부모 잃은 아이들 돌보고
부산대 · 메리놀병원 건립도 도와
“6 · 25 정전 직후 한국에 온 위트컴 장군은 우리에게 꿈과 용기, 삶의 터전을 만들어준 분이었습니다. 오늘 저 높은 하늘에서 동상 제막식을 바라보며 행복한 표정을 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1일 오전 부산광역시 남구 평화공원에서 리처드 위트컴 (Whitcomb · 1894 ~ 1982) 미군 준장을 기념하는 조형물 제막식이 열렸다. 20년 넘게 유엔기념공원 묘역 안내를 맡아온 문화해설사 최구식씨가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행사 시작을 알렸다. 위트컴 장군은 6 · 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 땅에 미군 군수사령관으로 부임했다. 전후 (戰後) 부산 재건과 전쟁고아 돕기에 전력을 다해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미국인’ 으로 불렸다.
특히 그는 1953년 겨울 부산역 인근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3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자 부대 창고를 열어 구호와 지원에 나섰다. 군사 물자를 무단 전용했다는 이유로 군법회의에 회부됐지만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 라고 당당히 소신을 밝혔다. 그는 미군의 대한 (對韓) 원조 프로젝트 190여 개를 수행하며 부산대 캠퍼스, 메리놀병원 건립을 지원했다. 부모 잃은 아이들을 돌봐 ‘전쟁고아의 아버지’ 로도 불렸다.
지난해 정부가 위트컴 장군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한 것을 계기로 ‘위트컴 장군 조형물 건립을 위한 시민위원회’ 가 발족했다. 부산 시민 1만8359명이 앞다퉈 성금을 냈고, 건립 추진 꼭 1년 만인 이날 제막 행사가 열렸다. 동상을 가린 흰색 천을 걷어내자 책보를 멘 까까머리 소년, 동생을 업은 소녀 등 다섯 명의 전쟁고아와 함께 걸어가는 위트컴 장군의 모습이 나타났다. 조형물을 제작한 권치규 조각가 (성신여대 교수)는 “보통 장군 동상은 기단을 높게 설치해 내려다보는 형태이지만, 위트컴 장군 동상은 야트막한 기단 위에 있다” 고 말했다.
한복에 갓 쓰고 모금 활동
한복 차림에 갓을 쓴 위트컴 장군이 1954년 부산 거리에서 메리놀병원 건립 기금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위트컴희망재단
시민위원회 대표 위원을 맡은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 (부산 남구갑)은 “정부 예산은 단 한 푼도 지원받지 않고, 기업에도 기대지 않은 대한민국 시민운동의 모범 사례” 라며 “장군의 동상은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존재할 것” 이라고 했다. 김요섭 부산대 총학생회장은 “청년들이 장군의 뜻을 이어받아 세계에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고 말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위트컴 장군의 위대한 헌신으로 잿더미였던 부산이 세계 속에서 빛나는 글로벌 허브 도시로 성장했다” 며 “이 조형물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자유가 장군이 남긴 소중한 유산임을 각인시킬 것” 이라고 축사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위트컴 장군의 삶은 인류애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며 “부산이 유치하려는 엑스포도 인류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고 말했다. 한 외국인은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 찍으며 “리멤버 유, 제너럴 위트컴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위트컴 장군)” 이라고 했다.
제막식을 마친 참석자들은 유엔기념공원의 위트컴 장군 묘역을 찾아 헌화하고 묵념했다. 6 · 25 전쟁에 참전한 2300여 안장자 중 장성 (將星)급은 위트컴 장군이 유일하다. 장군의 딸인 민태정 위트컴희망재단 이사장은 “아버지는 생전 한미 양국 관계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며 “한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고 했다. 그는 “이런 삶이 70년 한미 동맹을 지탱한 하나의 버팀목이 됐을 것” 이라며 “우리 젊은이들이 더 튼튼한 한미 관계를 위해 힘을 보태주길 기대한다” 고 했다.
부산 = 채성진 기자
11월 11일 11시··· 부산 향해 묵념하셨나요
6 · 25서 숨진 유엔 용사 기리려
참전 22國에서 동시에 추모
6 · 25전쟁에서 숨진 유엔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추모의 날 (턴 투워드 부산 · Turn Toward Busan)’ 기념식이 11일 부산 남구 유엔 기념 공원에서 열렸다. ‘유엔 참전 용사 추모의 날’ 은 6 · 25전쟁 참전 22국 사람들이 매년 11월 11일 오전 11시, 부산 유엔 기념 공원에 안장된 참전 용사들을 향해 1분간 묵념하며 추모하는 행사다. 2007년 캐나다 참전 용사인 캐나다인 빈센트 커트니씨의 제안으로 영국 · 호주 · 뉴질랜드 등 영연방 7국에서 시작돼 매년 이어지고 있다. 11월 11일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일이자 영연방의 현충일이기도 하다.
이날 행사는 인근 평화 공원에서 동상을 제막한 ‘리처드 위트컴’ 장군 묘역 등의 참배를 시작으로 부산을 향하여 1분 묵념, 헌화, 참전국 대표 인사, 추모 공연, 헌시,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추모 비행 등 순으로 진행됐다. 묵념 때는 전몰 장병들을 국빈급으로 대우하는 의미의 조포 21발과 함께 부산 전역에 추모 사이렌이 울렸다. 이해인 수녀는 “우리의 조국에 님들의 이름을 새깁니다. 우리의 이름에 님들의 이름을 감사로 새긴다”는 직접 지은 헌시를 낭독했다.
한편, 이날 유엔 기념 공원에선 콜롬비아와 영국 참전 용사 6명의 유해 안장식이 거행됐다. 콜롬비아 참전 용사는 루이스 카를로스 가르시아 아르실라, 호세 구스타보 파스카가사 레온, 호세 세르히오 로메로, 호르헤 산체스 타피아씨 등 4명으로, 콜롬비아 용사의 안장은 처음이다. 이어 브라이언 제임스 로런슨, 브라이언 우드씨 등 영국 용사 2명의 유해도 함께 묻혔다. 유엔 기념 공원에는 현재 12국, 참전 용사 2326명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부산 = 박주영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3년 11월 13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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