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좋은 글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눈과 강아지]

드무2 2024. 4. 2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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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강아지]

 

 

 

일러스트=양진경

 

 

 

눈과 강아지

 

지그재그로 발자국을 찍으며

강아지 한 마리 눈 위로

겅중겅중 달린다 컹컹컹컹 달린다

한 골목을 지나 또 다른 골목으로

아무것도 씌어지지 않는 골목으로

아무것도 씌어지지 않는 골목으로

강아지는, 강아지는 달리고 또 달린다

이제 강아지의 앞발도 보이지 않는다

 

ㅡ 최하림 (1939 ~ 2010)

 

 

 

최하림 시인은 ‘이슬방울’ 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이슬 / 방울 / 속의 / 말간 / 세계 / 우산을 / 쓰고 / 들어가 / 봤으면”이라고 짧게 썼는데, 이 시에는 그야말로 ‘말간 세계’ 가 있다. 설레어서 가슴이 콩닥콩닥하는 동심도 들어 있다. 강아지도 흥분되어 심장이 두근두근한다. 강아지가 눈 위에 찍은 발자국을 보아도 그렇다. 펄펄 날리는 눈송이처럼 좌우로 뛴다.

‘겅중겅중’ 이라는 말에는 솟구쳐 맘껏 도약하는 그 높이가 있다. ‘컹컹컹컹’ 이라는 말은 원래 크게 짖는 소리이지만, 이 시에서는 오히려 막 내달리는 강아지의 가슴팍 앞쪽 공간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 참 절묘한 시구이다.

눈은 마치 으쓱거리는 어깨춤처럼 내리고, 강아지는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흥겹게, 힘차게 달린다. 바라보는 시인의 얼굴에도 희색 (喜色)이 가득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는 이런 장면이 한 컷씩 남아 있지 않을까 싶다. 귀심 (歸心)을 부르는 동화 같은 한 컷.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4년 1월 8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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