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좋은 글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사랑]

드무2 2024. 5. 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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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일러스트 = 이철원

 

 

 

사랑

 

더러운 내 발을 당신은

꽃잎 받듯 받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흙자국을 남기지만

당신 가슴에는 꽃이 피어납니다.

 

나는 당신을 눈물과 번뇌로 지나가고

당신은 나를 사랑으로 건넙니다

 

당신을 만난 후 나는 어려지는데

나를 만난 당신은 자꾸 늙어만 갑니다

 

ㅡ 이성선 (1941 ~ 2001)

 

 

 

책상에 올려놓고 수시로 들춰 읽는 시집들이 있다. 개중에는 이성선 시인의 시집도 있다. 어젯밤에는 ‘별똥’ 이라는 제목의 시를 읽었다. “별과 별 사이 / 하늘과 땅 사이 / 노오란 장다리꽃 밭 위로 / 밤에 큰 별똥 지나간다. / 소풍 가는 시골 초등학교 아이처럼” 이라고 짧게 쓴 시를 읽고 난 후 밤의 마당을 서성거렸다.

이성선 시인은 산 (山)을 소재로 해서 많은 시를 남겼고 정신의 고요와 영혼의 깨끗함을 읊었던 시인이었다. 이 시에서는 사랑에 대한 사유가 부드럽고 연한 음성에 실려 가만가만 들려온다. ‘나’ 의 언행에 대해 ‘당신’ 은 좋으니 궂으니 따지지 않고 너그럽게 감싼다. 불쾌해하는 낯빛이 조금도 없다. 인색함도 없어서 대공 (大空)처럼 받아들인다. 쇠잔해진 ‘당신’ 을 오늘에 마주하고 있는 ‘나’ 의 뉘우침은 때늦은 것이기만 하다.

흐리고 탁한 내 마음을 맑게 하고, 술렁이는 내 불안을 잠재우고, 내게 무량한 빛을 주는 그런 ‘당신’ 을 생각한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4년 1월 22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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