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진출한 美 · 유럽 대형 갤러리 한국 신진작가 발굴해 전시회]
서울 한남동 리만머핀 서울에서 켄건민의 ‘1992, Western Ave.’ (2023)가 전시된 모습. 이민자로서의 경험을 환상적 이미지로 풀어내는 작가는 유화를 한국 전통 안료 및 자수와 섞어 화면 위에 직조했다. / 리만머핀
외국계 메가 화랑들, 새해 첫 전시는 한국작가展
세계 정상급 화랑 美 리만머핀은
한국 진출 후 첫 韓작가 그룹전
페이스 · 타데우스 로팍 서울도
외부 큐레이터가 기획해 전시 중
해외 컬렉터들의 관심 높아져
차세대 K작가 소개하는 역할
"해외 작가 작품만 판다" 는
국내 미술계 비판도 의식한 듯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대형 화랑들이 숨어있는 ‘K 작가’ 발굴에 나섰다. 서울 한남동에 둥지를 튼 미국계 화랑 리만 머핀과 페이스 갤러리, 유럽 명문 화랑인 타데우스 로팍이 올해 첫 전시로 일제히 한국 작가 그룹전을 열어 미술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세계 정상급 화랑 리만 머핀은 한국인 · 한국계 작가 4인의 그룹전 ‘원더랜드’ 를 열었다. 리만 머핀이 2017년 한국에 진출한 이후 한국 작가들로만 구성된 전시를 개최한 건 처음이다. 외부 큐레이터 엄태근이 기획해 지난 24일 끝난 전시는 연령 · 성별 · 지역이 다른 작가들이 그려낸 이상 세계의 풍경을 다채롭게 펼쳐 호평받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는 켄건민 (48)은 1992년 LA 흑인 폭동을 은유적으로 표현했고, 영국 런던에서 유학을 마친 뒤 미국에서 거주하는 유귀미 (39)는 이민자이자 여성으로서 느낀 고립감을 파스텔톤의 몽환적 회화로 풀었다.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 로팍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작가 그룹전 ‘노스탤직스 온 리얼리티’ 전시 전경. / 타데우스 로팍
2021년 서울에 진출한 타데우스 로팍은 한국 작가 6인 그룹전 ‘노스탤직스 온 리얼리티’ (Nostalgics on realities · 3월 9일까지)를 열고 있다. 김성우 큐레이터가 기획해 20대 젊은 작가 정유진부터 2019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여한 남화연까지 신진 · 중견 작가들의 회화와 영상, 설치, 조각 등을 선보이고 있다. 뉴욕 3대 갤러리 중 하나인 페이스갤러리 서울은 3월 13일까지 인물 회화 작업을 선보이는 한국 작가 8인의 그룹전을 연다. 맹지영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김정욱 · 김진희 · 류노아 · 박광수 · 서용선 · 이우성 · 이재헌 · 정수정 등 다양한 세대의 작가들을 모았다.
그래픽 = 이철원
그동안 해외 작가를 국내에 소개하는 데 주력했던 글로벌 화랑들이 왜 ‘잘 팔리지도 않는’ 차세대 한국 작가 발굴에 나선 걸까. 김해나 타데우스 로팍 서울 전시팀장은 “한국 작가를 소개하면서 유럽 미술계와의 가교 역할을 하려는 것이 서울에 자리잡은 가장 큰 이유” 라며 “현재 한국의 미술 지형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서 한국 미술계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큐레이터에게 작가 선정부터 세부까지 모든 것을 맡겼다” 고 했다. 손엠마 리만머핀 서울 디렉터도 “갤러리라는 플랫폼을 통해서 한국 작가들을 소개하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며 “국내 관객들은 물론 해외 본사에서도 주목하기 때문에 새로운 작가들의 해외 진출 가능성도 타진할 수 있다” 고 했다.
비판적 시각도 있다. 글로벌 메가 화랑들이 한국에 들어와 해외 작가 작품만 팔아치우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구색 맞추기’ 라는 것. 미술시장 전문가 A씨는 “진짜 숨은 보석을 발굴하고 싶으면, 갤러리 내부에서 직접 현장 조사를 해 작가를 찾아다니며 기획했겠지만, 외부 큐레이터에 맡겼다는 것부터 크게 에너지를 쏟지 않고 명분만 쌓겠다는 정도로 보인다” 고 했다.
페레스 프로젝트 베를린 본점에서 24일까지 열린 한국 작가 이근민 개인전 전경. / 페레스 프로젝트
한국 작가에 대한 해외 컬렉터들의 수요가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K컬처 열풍이 한국 미술로 확장돼 ‘그럼 한국의 작가는 누가 있는지’ 관심이 커졌다는 얘기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은 “한국에 진출한 갤러리들이 이미 자리잡은 작가를 소개하는 1단계에서 가능성 있는 로컬 작가를 발굴하는 2단계로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며 “해외에 어떤 작가를 들고 나갈지 시장 반응을 먼저 탐색하는 의미도 있을 것” 이라고 했다.
실제로 해외에서 한국 30 ~ 40대 작가들을 소개하는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2022년 서울에 진출한 페레스 프로젝트는 독일 베를린 본점에서 한국 작가 이근민 개인전을 24일까지 열었다. 타데우스 로팍도 지난해 전속 작가로 영입한 제이디 차, 정희민의 유럽 개인전을 잇달아 연다. 제이디 차는 4월 타데우스 로팍 파리에서, 정희민은 6월 타데우스 로팍 런던에서 각각 첫 개인전이 열린다.
허윤희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4년 2월 26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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