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좋은 글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꽃을 따르라]

드무2 2024. 8. 3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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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따르라]

 

 

 

일러스트 = 김성규

 

 

 

꽃을 따르

 

돈을 따르지 말고

꽃을 따르라

 

봄날에 피는 꽃을 따르지 말고

봄날에 지는 꽃을 따르라

 

벚꽃을 보라

눈보라처럼 휘날리는 꽃잎에

봄의 슬픔마저 찬란하지 않으나

 

돈을 따르지 말고

지는 꽃을 따르라

 

사람은 지는 꽃을 따를 때

가장 아름답다

 

정호승 (1960 ~)

 

 

 

꽃이 오고 있다. 꽃이 와서 봄에게 새 의상 (衣裳)을 입히고 있다. 산과 들에 헐벗은 구석이 사라지고 있다. 시인은 봄날에는 꽃을 좇아서 꽃 가는 대로 같이 가라고 말한다. 돈을 선호하지 말고 꽃을 애호하라고 말한다. 꽃을 맘껏 완상하라는 권유이기도 하겠다. 그런데 피는 꽃보다 지는 꽃을 숭상하라는 속뜻은 무엇일까. 꽃에게는 개화와 낙화의 일기 (日記)가 각각 있음을 기억하라는 뜻 아닐까. 우리의 일상에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함께 있음을 잊지 말라는 뜻 아닐까. 흐뭇하고 흡족한 때도 있고, 아프고 괴로운 때도 있듯이.

마음을 접어야 할 때와 손을 떼어야 할 때가 있다. 이별을 받아들이고 견뎌야 하는 때가 있다. 이때가 바로 꽃이 지는 시간이다. 나는 정호승 시인의 시 가운데 ‘반달’ 이라는 시를 또 좋아한다. “아무도 반달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 반달이 보름달이 될 수 있겠는가 / 보름달이 반달이 되지 않는다면 / 사랑은 그 얼마나 오만할 것인가” 낙화는 보름달이 반달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4년 3월 18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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