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기억, 짙은 그리움] 01
희미한 기억, 짙은 그리움
2024. 09. 10. 화 ㅡ 10. 27. 일
제2회 이산가족의 날 기념 전시
이산가족과의 두 번째 동행
70여 년 넘게 그리운 가족을 뵙지도 고향에 가지도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산가족입니다. 굳이 잊으려 한 것이 아닌데도 부모님 얼굴도, 목소리도, 고향 산천의 정경도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긴 세월 속절없이 희미해져 가는 기억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이런 기억의 끝을 잡아줄 추억의 물건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마땅한 것이 없습니다. 6 · 25 전쟁통에 옷가지만 겨우 챙겨 피난길에 오르기도 했고, 전쟁이 끝나면 바로 돌아갈 생각에 부모님이든 고향이든 추억이 서린 변변한 물건 하나 챙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덧없는 세월 속에 가물가물한 기억이 속상하고, 그런 만큼 그리움은 강렬해집니다.
이산가족의 애절한 속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제2회 이산가족의 날*을 맞아 이산가족의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 줄 전시를 열게 되었습니다. 빛바랜 작은 사진, 손편지, 고향 그림, 이산가족 상봉 당시 재북 가족이 준 선물 등 이산가족의 그리움이 깊이 스며 있는 기증품들을 모았습니다. 북녘에 있는 가족과 고향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면서 이산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이산가족의 날 : 이산의 아픔을 위로하고 이산가족 문제해결에 대한 국민 공감대 형성을 위해 추석 전전날 (음력 8월 13일) 을 국가기념일로 지정 (『이산가족법』 제12조의 2, 2023. . 28. 시행)
이산가족 현황
2024년 7월 31일 기준 이산가족 신청자 134,121명 가운데 생존자는 37,953명으로 30%가 채 되지 않습니다. 생존자 가운데 66.9%인 25,304명이 80세 이상 고령이고, 60 ~ 70대도 27.7%로 10,545명에 달합니다. 매년 많은 고령의 이산가족이 북쪽의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사망하고 있지만, 북한의 호응을 촉구하는 것 외에 뾰족한 해결책은 없는 상황입니다.
이산가족 문제는 같은 민족이라는 동포애에 기초한 인도주의를 넘어 인권의 문제입니다. 70년 이상 가족의 생사도 모르고, 고향을 방문하지도 못하는 것은 엄연한 기본권 침해입니다. 이산가족이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고, 다시 결합하는 것은 마땅한 권리입니다. 하루 빨리 남북 당국이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나서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산가족 신청 현황
1988 ~ 2024. 7. 31. 신청인 등록 분 전체
신청자 수
(단위 : 명)
134,121
생존자 사망자
37,953 96,168
전월 대비 250명 증가
생존자 현황 (단위 : 명) 사망자 현황 (단위 : 명)
37,953 96,168
90세 이상 12,130 90세 이상 29,364
80 ~ 89세 13,174 80 ~ 89세 41,327
70 ~ 79세 6,845 70 ~ 79세 19,896
60 ~ 69세 3,700 60 ~ 69세 4,588
59세 이하 2,104 59세 이하 993
거주현황 (단위 : 명)
서울 9,624 강원도 2,294
경기도 11,477 충청남도 1,207
인천 3,044 세종 152
대전 792 충청북도 1,289
전라북도 655 경상북도 1,172
광주 367 대구 918
전라남도 561 울산 309
제주도 409 경상남도 951
해외 1,137 부산 1,595
이산가족 이별이 너무 길다.
그리운 나의 가족
이순주님이 이산가족이 되기 전
남편에게 받은 편지
1930년 5월 18일생인 이순주 님은 갑작스런 전쟁으로 이산가족이 되기 전 남편에게 받았던 편지를 절절히 가슴에 고이 품었다. 남편이 고려대학교 재학 중 평양의 한 중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대가족을 건사하게 된 아내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순주 편지
이순주가 6 · 25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이 되기 전 남편에게 받은 편지
* 위 편지는 이순주 님이 2017년 통일부에 기증한 것으로 남북이산가족 디지털박물관 (reunion.unikorea.go.kr)에서 다른 이산가족들의 사연을 볼 수 있다.
집사람한테.
내 대신 할아버님 할머님 看病 (간병) 잘 하시오
할 말이 많으면서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괴로움
임자의 총명만으로 잘 짐작하시고
새로 뵙는 叔父 (숙부)께 큰절이나 잘
드리시오.
그쪽 사정도 모르고 내 혼자 염치없이
떠들어 댔다는 사실이 할머님의 下書 (하서)로서
露呈 (노정) 되었으니 내 若干 (약간) 어색하고 無顔 (무안)하지
않을 수 없소.
이것을 理解 (이해)하시고
내는 이제부터 沈默 (침묵)을 벗을 삼으려는
나의 뜻도 聰明 (총명)한 그대 이를 理解 (이해)하시오.
다만 할아버님 病患 (병환)이 그만하시고 할머님 若 (藥, 약)도
靜鎭 (정진) 하실지요, 편지해 주시오.
참, 당신은 □□을 알지 못하지
그럼 그만 두겠소
이로서 나의 할말 끝났소
할머님 약은 곳 (곧) 사내려가겠소
숙부님은 事務 (사무) 奔忙 (분망)하셔
도저히 下京 (하경)하실 겨를이 없으시대요.
試驗 (시험) 끝나면 내가 내려가리
굳 바이
good bye
이곳서의 나의 벗과 愛인 (애인)과 스승은
다음 세 가지요
卽 (즉) 술, 침묵, 산책 (山野 산야를 거니는 것)
그리고 책과 □□
내 벙어리된 지 오늘로서 사흘이 되오 오늘은 特別 (특별)히
반가운 날이라 비로소 입을 열어 몇 마디 하였소
당신 편지가 나의 굳은 마음문을 열어준 셈이요
그럼 幸福 (행복)스럽게 그동안들 지내소.
황해도 벽성군 동운면 출신 이산가족 이동표 님의
고향 그리고 가족 이야기
함경남도 함주군 퇴조면 출신 이산가족 김의두 님의
고향 그리고 가족 이야기
나의 살던 고향은
추억과
그리움의 끈
긴 이별 끝에 가졌던 짧은 만남, 대면 상봉 때 북측 가족에게 받았던 소중한 선물과 전쟁 당시 지니고 있었던 이산가족들의 물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김명옥 1 · 4 후퇴 당시 방한용 보자기
이산가족 김명옥이 1 · 4 후퇴 때 머리에 쓰고 온 방한 보자기
김명옥 1 · 4 후퇴 당시 옷
이산가족 김명옥이 1 · 4 후퇴 때 입고 온 옷
정광숙의 아버지 정윤용의 1 · 4 후퇴
당시 기록일기와 십원권 지폐
이산가족 정광숙의 아버지 정윤용이 1 · 4 후퇴 시 기록한 일기와 십원권 지폐
김용연 한복 옷감
제14차 상봉 당시 이산가족 김용연이 북한 가족 김대영에게 선물 받은 한복 옷감
유연동 원형 식탁보
제15차 상봉 당시 이산가족 유연동이 북한적십자사로부터 선물 받은 원형 식탁보
민경자가 선물받은 한복 옷감
제14차 상봉 당시 이산가족 민경자가 북한가족 민경춘에게 선물 받은 한복 옷감
박희찬 입수 북한지도
이산가족 박희찬이 국군 모사단 정보처 근무 시절에 입수한 함경남도 흥남시가 보이는 북한지도
이회수 공예품 액자
제12차 상봉 당시 이산가족 이회수가 북한 가족 이회영, 이회중에게 선물 받은 액자
곽상조 금강산 그림
제14차 상봉 당시 이산가족 곽상조가 북한 가족들에게 선물 받은 금강산 그림
박형식이 피난올 때 입었던 옷
이산가족 박형식이 1950년 피난 당시 입었던 옷
이재구 영광려과 담배
제11차 상봉 당시 이산가족 이재구가 북한의 가족들에게 선물 받은 영광 려과 담배
이훈 다과
제20차 상봉 당시 이산가족 이훈이 북한가족 이순영에게 선물 받은 다과
오형재 반지
제1차 상봉 당시 이산가족 오형재가 북한가족 오은하에게 선물 받은 반지
엄대섭 자개 장식 항아리
제10차 상봉 당시 이산가족 엄대섭이 북한가족 엄동섭에게 선물 받은 자개 화병
장두찬 화병
제15차 상봉 당시 이산가족 장두찬이 북한가족 장두성에게 선물 받은 청자 화병
김봉학 들쭉술
제19차 상봉 당시 이산가족 김봉학이 북한의 가족들에게 선물 받은 들쭉술
박효만 금술
제1차 상봉 당시 이산가족 박효만이 북한가족 박영만에게 선물 받은 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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