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세 조각가 김윤신 인터뷰 ㅡ 평단 · 시장 열광하며 완판 행진]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 전시장에서 김윤신이 작품을 배경으로 서 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전시 작가로 선정된 그는 “세계적인 작가들이 모이는 곳에서 전시하게 돼 영광스럽고 감사하다” 고 했다. / 뉴시스
구순 <九旬>에 맞은 전성기··· "나는 지금이 가장 뜨겁다"
40년간 아르헨티나서 활동하다가
작년 한국서 연 전시로 다시 주목
국제갤러리 · 美 화랑 리만 머핀과
올해 초 동시에 전속 계약 맺어
최근 아트바젤 홍콩서 9점 완판
베네치아 비엔날레 작가로 선정
"이제 지구 전부가 내 전시 공간···
톱질하며 작업해야 몸 안 아프다"
지금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뜨거운 작가’ 를 꼽으라면 단연코 이 사람이다. 89세에 전기톱 들고 나무를 자르는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 “나무가 좋아서” 40년간 한국을 떠나 아르헨티나에서 작업하다가 지난해 서울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전시가 대박이 났다. 생애 첫 국내 국공립 미술관 개인전이었다. “한국에 이런 조각가가 있었다니...” 평단과 언론, 시장이 열광했다. 국제갤러리와 세계적인 미국 화랑 리만 머핀이 동시에 러브콜을 보냈고, 올 초 두 곳과 전속 계약을 맺었다. 세계 최고 (最古) · 최대 미술 축제인 ‘2024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전시 작가에도 선정됐다. 최근 열린 아트바젤 홍콩에선 조각 4점, 회화 5점이 완판돼 시장의 관심을 입증했다.
구순을 앞두고 인생 첫 전성기를 맞이한 작가가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 ‘Kim Yun Shin’ 을 열고 있다. 1970년대 ‘기원 쌓기’ 연작을 비롯해 목조각과 회화 등 51점을 전시한다. 다음 주 개막하는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위해 출국을 앞둔 작가를 5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풍성한 백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걸크러시 매력을 발산하며 그는 “쉼 없이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나는 톱질을 해야 몸이 안 아프다” 고 했다.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2002-790'. 유창목, 155 x 41 x 39 cm. 사진 : 안천호, 이미지 제공 : 국제갤러리
김윤신,'합이합일 분이분일 2000-653'. 알가로보 나무, 74 x 63 x 25 cm. 사진 : 안천호, 이미지 제공 : 국제갤러리
김윤신,'합이합일 분이분일 2019-19'. Acrylic on recycled wood, 114 x 41 x 27 cm. 사진 : 안천호, 이미지 제공 : 국제갤러리
ㅡ 나무 때문에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나.
“한국에서 교수 (상명대)로 살다 1984년 아르헨티나 조카 집에 놀러 갔다. 아름드리 나무가 여기저기 서 있는데, 단단하니 나무가 너무 좋더라.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엔 굵은 나무가 없었다. 대사관과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현대미술관을 찾아가 ‘이 나라에서 전시하고 싶다’ 고 했다. 관장님이 작품을 보여달라고 하더라. 두 달 달라고 했다. 현지 나무로 두 작품을 끝냈을 때 관장님이 와서 보고 감동했다. ‘30년 관장 생활 했지만 껍질을 붙인 채로 속살과 겉살의 공간에 차이를 두면서 만든 작품은 처음 봤다’ 면서. 미술관 야외에서 전시가 열렸고, 반응이 뜨거웠다. 여기저기서 전시 요청이 오고, 그러다 보니 그곳에 묶였다.”
ㅡ 교수직을 포기하고, 그곳에 정착한 건가.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예술가가 될 것인가, 교수로 남을 것인가. 그때 결정했다. 나는 예술가로 남을 것이라고.”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자연과 더불어 자랐다. 나무를 쌓아 올린 형태의 초기작 ‘기원 쌓기’ 연작은 유년기 기억과 맞닿아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오빠 김국주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엄마는 새벽마다 장독대 옆에 물을 떠놓고 기도했다. “내가 돌을 주워다 쌓으면 엄마가 초를 세워두고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엄마의 간절한 염원에서 작품이 나온 것 같다. 미술이 단순히 형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 정신과 혼이 드러나는 것임을 나중에 깨달았다.”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는 작가. 그는 “톱질을 해야 몸이 안 아프다” 고 했다. / 국제갤러리
ㅡ 일관된 주제가 ‘합이합일 분이분일 (合二合一 分二 分一)’ 이다.
“합 (合)이라는 건 내 생각과 재료가 하나가 돼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거다. 나무마다 다르다. 냄새가 향기로운 것, 단단한 것, 조금 연한 것, 껍질이 거친 것. 이 나무가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가 며칠동안 보다가, 딱 느낌이 왔을 때 톱을 들고 거침없이 공간을 만들어 간다. 서로 다른 둘이 하나가 되고, 그 합은 또 하나의 새로운 예술 작품으로 남는다. 그게 분 (分)이다.”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윤신 개인전 전시 전경. / 국제갤러리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 전시된 김윤신의 회화 작품들. 그는 "기법만 다를 뿐 조각과 그림은 같은 것" 이라고 했다. / 국제갤러리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알가로보 나무, 라파초, 칼덴, 유창목, 케브라초 등 다양한 원목이 그의 손을 거쳐 다채로운 형태의 ‘기도’ 가 됐다. 톱질을 통해 드러나는 나무의 속살과 원래 모습 그대로 살려둔 나무의 거친 껍질이 이루는 시각적 대조는 김윤신 조각의 특징이다. 남미의 토속성과 원시성, 한국의 오방색이 만난 원색의 회화도 자유분방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한국에 돌아올 계획은 없었다” 던 그의 삶은 지난해 전시를 계기로 바뀌었다. 40년간 삶의 터전이었던 아르헨티나를 떠나 한국에 다시 정착했다. 그는 “아르헨티나 나무는 돌처럼 단단해서 전기톱 체인이 빠르고 세차게 돌아간다. 자를 때의 감정과 나무가 변하는 순간, 소리, 모든 것이 하나가 돼 나오는 쾌감이 있는데, 한국 나무는 물렁해서 톱이 들어가는 순간 어느새 잘려 있다. 쉽지만 재미가 덜하다” 며 웃었다.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 전시장에서 한 관객이 김윤신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 뉴시스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 전시장에서 작품과 함께 서 있는 작가 김윤신. / 국제갤러리
작가는 “이제 지구 전부가 내 전시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힘이 닿는 데까지 작품을 남기고 싶다”며 “나이가 들어서 못 한다? 이런 건 생각해 본 적 없다.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지금에 충실할 뿐” 이라고 했다. 전시는 28일까지. 무료.
☞ 김윤신
193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1969년 귀국해 학생들을 가르쳤고, 1974년 한국여류조각가협회 설립을 주도했다.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만난 단단한 나무가 김윤신 조각에 건축적 구조와 응집된 힘을 표현할 수 있게 했다. 지난해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허윤희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4년 4월 8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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