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루사]
▲ 바비루사 수컷은 위턱과 아래턱에 한 쌍씩, 모두 두 쌍의 엄니가 있어요. / Coke Smith. Nature.org
둥글게 나는 엄니··· 계속 자라면 얼굴까지 파고든대요
최근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이 한 동물의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어요. 우리나라 멧돼지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털은 짧고 얼굴에는 엄니 (크고 날카롭게 발달한 포유동물의 이빨)가 길고 둥글게 돋아 있었죠. 이 동물은 바비루사예요. 말레이어로 '돼지사슴' 이라는 뜻이에요. 엄니가 자라는 모습이 마치 사슴뿔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바비루사는 멧돼지의 한 종류예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 토기안섬 · 부루섬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살고 있답니다. 다 자라면 몸길이는 1.1m, 어깨높이는 80㎝로 우리나라 멧돼지보다 조금 작답니다. 바비루사의 트레이드마크는 엄니예요. 기다랗게 자라 입 밖으로 삐죽 튀어나오는 엄니는 멧돼지들의 공통점인데요. 바비루사는 그중에서도 유별나요. 엄니가 한 쌍인 대부분의 멧돼지와 달리 바비루사 수컷은 위턱과 아래턱에 한 쌍씩 모두 두 쌍의 엄니가 있어요.
게다가 위로 곧게 솟는 게 아니라 둥글게 원을 그리는 형태로 자라나요. 그러다 보니 엄니가 부러지거나 닳지 않으면 얼굴 살갗을 파고들어 갈 수밖에 없어요. 아래턱 엄니 역시 위턱만큼은 아니지만 길고 둥글게 자라죠. 이렇게 기묘한 모습을 한 바비루사 엄니의 용도가 대체 무엇인지는 수수께끼로 남아있어요. 아주 단단한 것도 아니고, 바깥을 향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천적을 물리치는 무기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거든요.
수컷들이 암컷을 두고 싸울 때 쓰거나 안면 보호대 역할을 하는 거라는 추정도 있어요. 그런데 수컷들은 뒷발로 일어서 앞발로 권투를 하듯 힘겨루기를 해서 엄니로 맞붙을 일은 없대요. 그래서 암컷에게 멋지게 보이려는 액세서리 정도에 불과할 거라고도 얘기하죠. 여느 멧돼지들처럼 바비루사도 주변 환경 적응력이 아주 뛰어나요. 나무 열매와 식물 뿌리부터 곤충과 애벌레, 심지어 작은 포유동물까지도 먹는 잡식성이랍니다.
너비가 넓은 강을 거뜬히 건널 정도로 헤엄도 잘 쳐요. 심지어 헤엄쳐서 바다 이 섬에서 저 섬으로 가기도 해요. 달릴 때는 시속 50㎞까지 속도를 낼 수 있는데, 돼지 중에서는 가장 빠른 편에 속한다고 합니다.
멧돼지는 보통 한 번에 10마리 넘는 새끼를 낳아요. 또 새끼들 몸에 있는 알록달록한 줄무늬는 보호색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바비루사는 새끼를 한두 마리만 낳고, 새끼들 몸에 줄무늬도 따로 없다고 해요. 이렇게 새끼도 적게 낳고 보호색도 없는 건 별다른 천적이 없기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인도네시아에는 호랑이 같은 맹수가 살고 있지만 바비루사가 살고 있는 섬에는 없거든요. 하지만 인간이라는 가장 무서운 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사냥으로 급속하게 숫자가 줄어들면서 바비루사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답니다.
정지섭 기자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4년 5월 15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