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김구 신화 부록

김구 신화 부록 1편 김구의 너무 잦은 살인

드무2 2021. 8. 19.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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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신화 부록 1편 김구의 너무 잦은 살인

 

정안기 前 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2021. 7. 13 방송

 

 

 

 

 

 

김구 신화 부록 (1)

 

김구의 너무 잦은 살인,

 

생체 정보의 프로파일링

 

2021. 7. 12 (월)

 

정안기

 

 

 

 

 

 

          김구의 연쇄 살인          

 

1. 연쇄살인 동기와 심리

 

2. 김구의 생체정보 활용

 

3. 범죄심리학적 특성

 

 

 

오소백著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다』

- 八 · 一五에서 五 · 一六까지 · 解放十七年日誌 -

 

 

 

          생체연령과 법적연령          

 

사람의 성장 발육 정도와 건강 상태, 몸의 전반적인 기능 상태에 따라 결정하는 나이. 60살(법적연령) 난 사람의 몸의 기능 상태가 40살 난 사람의 상태와 같으면 그의 생체연령(생물학적 연령)은 40살이다.

 

 

 

 

 

 

 

 

 

 

 

 

 

 

 

          출생 비화          

 

● 17세 초산의 모친, 산통 168시간 (7일), 뱃 속에서 농성, 고금 역사에 없는 거인의 초기록 난산!

● 얼마나 애를 쓰셨던지 너무 귀찮아서 어서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까지 짜증

● 어머니 젖이 부족해서 미음물을 먹고, 부친의 품에 안기어 젖동냥 양육, 부친도 가련한 신세.

● 3~4살 마마를 앓았고, 부스럼을 다스리듯 댓침으로 따서 고름을 뺐다.

● 그래서 얼굴에는 굵은 벼슬자국(마마자국) 생성, 곰보 김구! 동네 아이들의 놀림감

 

          오소백 (1949), 『인간 김구』, 국제문예사, 3쪽          

 

 

 

           왜곡된 심성          

 

● 5살 때 강령 삼가리 이주, 동네 아이들의 텃세, 식칼로 칼수림, 죽도록 얻어 맞고 식칼마저 강탈. 저녁에 어머니 부엌에서 식칼, 못들은 척

● 팽이가 없어 못난 동맹이, 주워서 돌리다가 손에 큰 상처, 엿이 먹고 싶어서 집에 있는 숟가락을 분질러서 엿과 바꾸어 먹음.

● 어머니 말씀, 달걀구름 (달걀꾸러미), 멍구럭 담아서 메고 와라, 그래서 강아지를 등에 거꾸로 메고 귀가했다.

 

          오소백 (1949), 『인간 김구』, 국제문예사, 6쪽          

 

 

 

          상놈본색          

 

● 부친의 엽전 20냥, 방 아랫목 이부자리, 떡 먹고 싶어서 20냥을 몽땅 허리에 감고, 떡집에 가다가 길가에서 삼종 할아버지와 마주침

● 부친, 아무말도 없이 다짜고짜 꽁꽁 바로 동여서 들보에 메달아 놓고, 물푸레 채찍 (물푸레 나무 껍질로 만든 채찍)으로 무자비하게 후려 갈겼다.

● 어린 창암의 빗발 같은 눈물, 지나가던 장련 할아버지 등장, 들보에 매달려 매맞는 꼴 확인

● 곡절을 인지한 장련 할아버지, 채찍을 빼앗아 부친을 후려갈김, 아버지 매맞는 꼴, 너무나 기뻐서 속으로 만족했다.

 

          오소백 (1949), 『인간 김구』, 국제문예사, 9쪽          

 

 

 

          경교장의 식생활!           

 

● 수수한 식생활, 바위와 같은 체구, 상당히 왕성한 식욕

 

● 식생활이 너무도 量적이고 質적으로 조악하다. 영양결핍과 불균형 우려

 

● 화려한 경교장 생활, 3류 사회 수준의 식생활

 

          오소백 (1949), 『인간 김구』, 국제문예사, 88쪽          

 

 

 

           생물학적 특성          

 

● 1948년 10월, 탈장증, 경성의전 병원 입원, 큰 수술, 담당의사였던 박종완(朴鍾琓)

● 탈장증, 배에 힘을 많이 주는 웅변가, 대마도, 씨름꾼 같은 사람이 많이 걸리는 질병

● 무마취 수술, 칠척 장신의 건장한 체격, 수술대 길이가 짧아서 "장안의 대병원이라는 경의전병원에도 거인 백범 선생을 편히 누일 수술대가 없으니···"하고 한탄

● 무마취 수술 고통, 의사와 간호사들, 김구의 표정을 관찰했지만, 태연자약 어깨가 과도하게 넓고, 정비례해서 배도 굉장히 컸다.

 

          오소백 (1949), 『인간 김구』, 국제문예사, 97쪽          

 

 

 

          광물학적 인간?          

 

● 복부의 피부가 너무 두터운 것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고 한다. 보통 사람의 수술, 수술용 갈고리(鉤)를 수평으로 뱃가죽을 잡아당기는 것이 일반, 수직으로 사용해서야 수술

● 수술 다음날 의사와 간호부가 입원실을 찾아 "상당히 아프셨지요"하고 묻자, 김구는 "뭘 괜찮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래도 걱정스러워서 "아프시면 아프다고 말씀해 주십시오"하고 재차 물어도, 김구는 "괜찮겠지"하고 담담하게 답했다.

● 그러자 어느 간호부가 "선생은 아마 '생물학적 인간"이 아니고 '광물학적 인간'인 모양이요"하고 말하는 바람에 다들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오소백 (1949), 『인간 김구』, 국제문예사, 97쪽          

 

 

 

          그는 괴물인가          

 

● 어느 날 저녁 담당의사, 기침약 3인분 처방, 다음 날 아침 간호부 확인 3일분 기침약 흔적이 없다.

● 놀란 간호부, 저녁에 드린 기침약은 어디에, 김구 왈 "다 먹었다", 더욱 놀란 간호부, 담당의사에게 보고

● 놀란 담당의사, "체온기로 맥을 보기는 했으나 거인 김구 선생의 맥박은 완전히 현대과학을 무시하고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담당의사, 혹시나 무슨 좋지 않은 경과를 보일까, 전전긍긍, 아침이 다되어도 "백범 선생은 백범하게 백범 선생이었다"

 

          오소백 (1949), 『인간 김구』, 국제문예사, 97쪽          

 

 

 

          환국 이후 입원 기록          

 

1. 1946년도 『조선일보』 1946년 5월 3일자, 민주의원 총리 김구씨 심장병(심몽병), 5월 1일 용산 제2성모병원 입원 가료, 경과는 양호하다.

 

2. 1947년도 『경향신문』 1947년 2월 9일자, 시내 모 병원 가료 중

 

3. 1948년도 『한성일보』 1948년 10월 30일자, 10월 28일 김구씨 탈장, 경의전병원, 입원 및 수술

 

 

 

          김신 인터뷰 (1)          

 

● 수사와 장식을 모르는 사람, 많은 오해, 둔한 신경, 어려서부터 강한 인내력, 화로 불장난, 인두 손 잔등 지지고서도 시큰둥

● 아버지는 열네 살이 되도록 바지를 입지 못하고 벌거숭이로 자랏다. 가정이 극빈하여 옷을 해 입히지 못하고 할아버지의 커다란 저고리를 저고리, 바지, 외투 겸해서 입으셨다.

● 동네애들, 이꼴을 보고 무척 놀려 먹었으나 조금도 이렇다할 짜증을 하지 않았다. "바지도 없이 십사년을 살았다는 것은 세계기록" 물론 남양의 토인들도 있지만···

 

          오소백 (1949), 『인간 김구』, 국제문예사, 199쪽          

 

 

 

          김신 인터뷰 (2)          

 

● 동냥밥 구걸, 모친 산후조리 부실, 2층에서 낙상, 능막염 / 폐렴, 한 푼도 없으니 약은 고사하고 그날그날 끼니할 쌀이 없고···

● 할 수 없이 할머니는 저를 업고 밥을 얻어 먹이려고 이집저집다녔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아버지 주머니를 톡톡 털어보니 1전이 나와서 캐수이(끓인 물)와 사탕 한 봉지, 식사를 대신.

● 할머니는 우리도 미국 가자고 몇 번이나 권고, 아버지는 끝끝내 반대, 할머니의 분노, 그래서 1925년 어린 김신을 데리고 귀국

 

          오소백 (1949), 『인간 김구』, 국제문예사, 200쪽          

 

 

 

          무기력과 무책임          

 

● 1919년 4월 13일 김구 상해 도착, 1920년 6월 모친 (최준례) 김인과 상해 도착, 1922년 9월 김인 출생 (김구 47세), 3명 누이 전부 어린 나이 사망

● 1922년 할머니 곽낙원도 상해 도착, 모친은 할머니에게 "저 아이(김신)은 어머님이 못 기릅니다. 고아원에 보내야겠어요", 1924년 1월 1일 최준례 죽음

● 모친을 죽음 전후, 김신은 세 차례 중국인 고아원 생활, 밥이라도 굶기지 않기 위해서, 고아 신세를 면한 것은 전적으로 할머니(곽낙원) 덕분

● 임정 가람들은 머리가 돌앗거나 삶을 포기한 이들!

 

          김신 (2013), 『조국의 하늘을 날다』, 돌베개, 21쪽          

 

 

 

          굶주린 혁명가          

 

● 상하이의 겨울 밤, 동냥밥을 찾아 헤매는 혁명가, 몇칠을 굶어가며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다가 동포의 집에서 동냥밥을 구하려고 허덕였다.

● 눈 내리는 밤거리, 동포들의 집은 이미 굳게 잠겨 있었다. 얼어붙은 손을 허리 춤에 넣고 하비로 김모의 집을 찾았다. 15세 계집애 안내로 컴컴한 부엌에서 솥뚜껑을 열고 차디찬 누렁지를 긁어 먹었다.

● 카이젤 수염에 누렁지 부스럼이 매달려 잇었다. 김구는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깊어가는 상해 하비로의 밤거리를 터벅터벅 발을 옮겨 아크등만이 밝게 비추는 공원으로 들어갔다. 이역만리 하비로 무주공원의 눈내리는 겨울 밤은 한없이 깊어갔다.

 

          오소백 (1949), 『인간 김구』, 국제문예사, 230쪽         

 

 

 

          아이구, 그 놈의 두상!          

 

흔히 이른 새벽, 그렇지 않으면 날이 어둑어둑 어두워질 무렵 프랑스 조계 뒷골목으로 어슬렁어슬렁 다 떨어진 중국 두루마기에다가, 그도 반드시 긴 소매에 팔짱을 끼고 머리까지 핑토우(平頭, 앞만 조금 남기고 위로 한 일자로 칼로 벤 듯이 깎은 중국식 머리)로 깎아 제친, 키가 건장한 50대의 노인 한 분이 유유히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니, 두말할 것도 없이 그가 백범 선생이었다··· 그 시절의 백범 선생을 상해 일반 교포들의 가정에서는 부인네들이 흔히 이렇게 불렀다. 김영감, 두상, 김두상, 심지어 나의 귀에는 지금도 다음과 같이 말하던 어떤 부인네들의 말투가 생생하다. "아이구! 그 놈의 두상! 거지꼴을 하고 이집저집 돌아다닌 꼴··· 차마 볼 수 없어서···

 

          김광주 (1954. 8), 「백범 김구 선생」 『신천지』          

 

 

 

          거지 중의 상거지          

 

● 그림자나 짝하며 홀로 외롭게 살면서 (形影相從), 잠은 政廳(임정청사)에서 자고 밥은 직업 있는 동포들 집에서 얻어먹으며 지내니, 나는 거지 중의 상거지였다.

● 나의 처지를 잘 아는 터이므로 어느 동포도 나를 차례식 (嗟來食 : 무례하게 박대하며 주는 음식)으로 대접하지 않았다.

● 조봉길, 이춘태, 진희창, 김의한··· 그 밖의 동지들에게도 동정적인 대접을 받았다.

 

          김구 (1947), 『백범일지』, 317쪽          

 

 

 

          놀라운 식욕          

 

● 언젠가 백범이 임정 사람들과 같이 저녁을 사먹은 일이 있었다. 그 분 혼자서 여섯 상을 해치웠다.

● 남이 보이기에 쑥쓰러웠던지 마지막 상을 치우고는 "아구, 장사 흉내내기도 힘들다. 세 상을 먹고 나니까 더는 못먹겠는 것을 장사인 체 하려니까 억지로 먹었네. 에이 이제는 밥 맛이 없어 못 먹겠다.

● 백범은 역시 거목 (?)이었다!

 

          정정화 (1998), 『장강일기』, 학민사, 122쪽.          

 

 

 

          어, 손등에 부서리가 붙었네!          

 

● 백범 네 살 때 일, 화로에 꽂아두고 쓰는 작은 부삽으로 부서리, 그걸 가지고 놀다가 그만 손등에 덜컥 달라 붙었다.

● 그런데 네 살난 아이는 울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서 "어, 이 부서리가 내 손등에 가 붙었네"

● 그만큼 질기고 억셌던 아이였으니 커서 청년이 되었을 때엔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정정화 (1988), 『장강일기』, 학민사, 121쪽          

 

 

 

          그래, 나 도적놈이다!          

 

● 모진 고문 끝에 살피듬이 터져 나가고 피가 엉겨 붙었다. 그러기를 몇 날 몇 칠 상처가 아물지 않앗던지 백범 다리에 큰 종기가 생겼다.

● 일본 군의관이 와서 시퍼런 칼날을 들이대고 그 종기를 무작스럽게 도려내는 데도 백범이 백범이 아프다는 소리는 커녕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냥 앉았으니까

● 군의관이 놀라서 한다는 소리가 "야, 너 무슨 죄로 들어왔니?" "나 도적놈이다" "그래? 너 도적질 깨나 했겠다"

 

          정정화 (1998), 『장강일기』, 학민사, 122쪽          

 

 

 

          생체정보의 시사점          

 

● 1948년 10월 탈장증 수술, 생체연령 (70세 이하)과 법적 연령 (73세)과의 괴리

● 농담과 같은 진실, '생물학적 인간'이 아닌 '광물학적 인간!' 70세 이하 생체연령!

● 1920~30년대 조선인 평균수명 40세 이하, 조선인 생체정보, 김구 = 타고난 건강 체질

● 유년기 극빈한 가정환경, 청년기 혹독한 감옥생활, 장년기 상해의 상거지 생활

● 청년기, 떠돌이 생활, 화적떼 생활, 뒷골목 세계 = 長幼有序, 인간관계, 법적 연령 날조 = 1948년 당시 70세 이상 추정!

 

 

 

          연쇄살인의 프로파일링          

 

1. 치하포 강도살인사건, 법적연령 21세 = 조작 / 날조, 생체정보 고려, 법적 연령 추정, 대략 10대 후반!?

 

2. 치하포 사건 당시, 몇 건의 범죄, 지명수배자, 사건 이전부터 해주 일대를 떠돌며 광폭한 살인, 폭행, 강탈

 

3. 범죄심리학, 연쇄살인범 아동기 = 고통스런 경험 / 장기간 사회적 박탈감 / 심각한 정서적 학대, 외톨이 = 자기만의 세계 = 환상!

 

4. 연쇄살인 단계 : 환상(살인충동) ㅡ> 스토킹(피해자 물색) ㅡ> 유괴 ㅡ> 살해 ㅡ> 시체유기

 

 

 

https://www.youtube.com/watch?v=2uG4ml_kwS0&t=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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