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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신화 부록 4편 총 맞은 김구의 진실은?
정안기 前 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2021년 8월 3일 방송
김구 신화 부록 (4)
총 맞은 김구의 진실은?
2021년 8월 2일 (월)
정안기
저격 사건 개요
● 1938년 5월 7일 중국 長沙 南木廳 2층(조선혁명당 당사,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 / 한국독립당 유력자 회합 / 주연, 참석자 10명
● 김구(한국국민당), 현익철 / 유동열 / 이청천(조선혁명당), 각 1발씩 4발, 현익철 = 즉사, 김구 / 유동열 = 중상, 이청천 = 경상
● 범인 = 이운환(조선혁명당 제명자), 사주 혐의자 = 강창제 / 박창세(조선혁명당 제명자), 이른바 <남목청 사건>
학계 동향
● 윤대원(2018), 「일제의 김구 암살 공작과 밀정」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61집
● 남목청 사건은 "反김구파의 범행"인가? "일제의 암살공작"인가?
● 조선혁명당 박창세(마약 밀매 박제도 / 권투선수 박제건 귀국 편의, 일제의 회유 / 굴복)의 사주를 받은 이운환의 범행!
한국종교협의회(1979), 『박광회고록』, 한국종교협의회.
1. 사건의 기억
남목청의 그날
1. 김구, 3당 간부회합 요청, 남목청(조선혁명당 당사 / 주거지), 저녁식사 자리 연회비용 10원(쌀 두 섬 값) 출연
2. 조선혁명당(이청천, 조경한, 현익철), 한국독립당(조소항, 홍진), 한국국민당(김구, 조완구), 옵저버(유동열, 이복원, 임의택), 참석자 10명
3. 酒黨 유동렬의 심한 술타박(3차례), 조경한 직접 당골 술가게, 저격 도주 이운환 목격!
한국종교협의회(1979), 『백강회고록』, 한국종교협의회
임정 공식 성명서
罪極惡極의 반동분자 이운환이란 자로 말하면, 본래 조선혁명당 당원으로 반동사상을 품고 우리 운동계의 중요 인물들을 살해하려는 음모가 있다는 말을 탐문(探聞)하고 해당(該黨 : 조선혁명당)에서 궐자(厥者 : 이운환 / 오랑캐)를 출당시키고 개신(改新)하기를 바라던 바, 해한(該漢 : 이운환)은 더욱 검악(險惡)한 뜻을 품고 마침내 이 같은 화변(禍變)을 일으켰다. 그 놈의 소위(所爲)는 실로 극흉극악(極凶極惡)치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 이운환 개인적 일탈, 하지만 왜 김구인가?
백범김구선생전집편찬위원회(1999), 『백범김구전집(4)』, 대한매일신보사
김구 회고
● 혐의자 박창세, 강창제, 송욱동, 한성도 등 수감, 혐의자 강창제 / 박창세, 혁명난류(革命亂類), 사회적 신용은 없으나 반혁명자 규정도 곤란··· 장남 박제도는 정탐!
● 이운환이 강 / 박의 악선전 이용, 정치적 감정 충동 중국 경찰 조사, 박창세 200원 비밀 지원, 체포 당시 이운환 18원 소지, 일제의 사주 / 밀정
● 주범 / 종범 체포 / 구금, 전쟁 / 혼란, 법적 처결 곤란, 이운환 탈옥 / 비참한 도주, 강 / 박 무죄 석방
김구(2002), 『백범일지』, 369~370쪽
박남파 회고
● 장사 한인사회 관심, 이운환 체포와 범행동기, 배후자 규명, 일제 매수, 박찬익 사주에 따른 범행?
● 박남파 의심, 이청천 / 김원봉 민족혁명당 준비, 김원봉과 불화, 민족혁명당 이탈, 조선혁명당 결성, 박남파와 이운환의 친분 중시
● 당시 박남파는 백범 등과 불편한 관계, 백범과 정화암 제휴, 박남파 제거 소문, 우연히 남목청 사건 발생, 저격 범행 = 박남파 소행 의심
남파박찬익전기간행위원회(1989), 『남파 박찬익 傳記』, 을유문화사
김신 회고
● 1938년 5월 7일 남목청, 3당 합당 논의, 김구, 현익철, 유동렬, 지청천 차례로 저격
● 중국 경찰, 이운환 체포 / 구금, 혼란 중 도주, 배후 인물(강창제 / 박창세) = 석방
● 저격 동기는 "단순히 처우 불만이 이유였다는 말도 있지만, 통합 논의를 막기 위한 정치적 테러(?)"
김신(2013), 『조국의 하늘을 날다』, 돌베개
2. 일본영사관 보고서
● 불령 조선인 단체의 대동단결, 파벌투쟁 실현 곤란, 1937년 8월 한국 광복운동단체연합회 결성, 당초 反김원봉 명분의 표면적 통일, 반년도 못되어 김구파 한국국민당과 이청천파 조선혁명당의 내홍(內訌)
● "간부 지위 쟁탈 및 자금 분배 분쟁" 김구 암살 테러 사건(미수) 비화, 조선민족혁명당(김원봉) 탈당, 조선혁명당(이청천, 강창제, 박창세) 결성, 당초 김구 차별대우 없다! 미명하의 표면적 합류
● 그 후 김구, 조선혁명당에 대한 물질적 정신적 차별, 중국정부 원조자금 분배, 김구파 당원 및 가족 = 대인 1인당 월 10월 / 소인 5원, 이청천파 = 대인 1인당 월 7원 / 소인 3.5원, 당초 조건과 다른 차별대우!
● 심지어 1937년 4월경부터 "김구는 반대분자 이운환을 암살하고자 계획" 소문, 조선혁명당 이청천 일파 분노, 강창제, 박창세, 이운환, 공공연히 김구를 비난, 양측의 대립항쟁 태세
● 이청천, 현익철, 유동열은 김구와 영합, 신용획득에 혼담(魂膽)이 팔려, 반대분자 3명 제명 처분조치, 반대분자 3명 복수계획, 우연히 1937년 5월 이청천파, 김구로부터 거액 활동자금 수취
● 남목청 술자리, 이운환 박창세 권총 차수 / 회장(會場) 잠입 / 난사, 현익철 즉사, 김구(흉부) / 유동열(요부) 중상, 이운환, 박창세, 강창제 중국공안 체포 / 구금, 이운환 사형, 단순내홍 = 박 / 강 석방처리
● 일경측, 김원봉파 조선민족전선연맹 간부 발언의 수집과 비평, 박창세 / 강창제 사주를 받은 이운환, 김구 등 저격, 표면 '거두의 지위쟁탈'에 기인한 듯이 보이지만···
● 상해사변(1932년) 당시 박창세가 프랑스조계 하비로를 산보 / 자택 잠복, 그 때부터 일본 관헌과 거두 김구를 처치한다는 묵계(?) 성립, 이운환을 사주, 결행시킨 것 추단(推斷)
● 일경측, 정보는 '편견' 불과 = 사건 배후에 일본 관헌의 개입 부정, 그럼에도 윤대원, '편견' 운운은 사건 배후 밀정 관계 부정 의도! 박창세 = 일경 포섭된 밀정 = '일제 암살 공작설' 주장, 과연 그럴까???
박창세
● 1884년 평북 영변 출신,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1926년 병인의용대 창설 / 대장, 한국독립당 집행위원, 1930년 대한교민단 의경대장 활동
● 1935년 7월 남경 조선민족혁명당(김원봉 / 이청천) 결성 참여, 김원봉 독선과 전횡 / 탈당, 1935년 9월 재건 한국독립당(조소앙, 강창제, 문일민) 결성
● 1936년 5월 재건 한국독립당 탈당(자금배분), 1937년 4월 조선혁명당(이청천 / 현익철) 결성 참여, 1938년 4월 강창제 / 이운환 등과 제명 처분
윤대원(2018), 「일제의 김구 암살 공작과 밀정」
이운환(조경한 회고)
이운환은 원래 의주출생, 우직하여 분별력 결여, 오직 용협(勇俠)이 과인하고 강한 모험심, 지도하면 쓸모 있는 인간, 하지만 종래 교유가 불순하여 삐뚤어진 길, 틈만 있으면 개별지도, 十寒一曝 열흘 얼었던 것을 하루볕 쬐어 녹이려 드는 습성을 뿌리뽑기 곤란, 김구 옹에 대한 불순한 언동, "3당 영수급을 몰살해야 한다"는 잡설 유포, 배후 조사 / 보류, 조선혁명당 자체의 제명 처분, 1년 참회기간, 처벌 조치에 앙심, 교류자들에게 선동당한 우려 다분
그럼에도 왜 김구인가, 불충분한 설명!
한국종교협의회(1979), 『백강회고록』, 한국종교협의회
이운환(안병무 회고)
● 이운환은 조선혁명당 당원, 젊은 사람이 불평이 많았다. 늙은이들이 밤낮 옥신각신 자기편 견해만 고집, 일에 진전이 없고, 조선혁명당 청년들, 주는 생활비가 다른 청년들에 비해 무척 적엇고, 불평이 많았다.
● 특별히 배후는 없는 것으로, 다 죽이려고 했다기 보다는 그냥 위협사격을 한 것,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그는 의협심이 강한 인물, 남경에서 한구로 피난할 때, 배를 함께 타고 이동할 때 일
● 일행의 취사를 도맡은 중국 소년이 물을 깃다가 그만 양자강에 빠졌고,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갔다. 이때 이운환이 용감하게 소년을 구하려 강에 뛰어 들었지만, 거센 물살에 떠밀리고 말았다. 이운환은 의협심이 강한 인물!
한국정신문화연구원(1986), 『한국독립운동증언자료집』, 박영사
이운환과 박창세의 관계
본 단(한국혁명청년단)은 김구파의 전횡에 불만을 품고 조선혁명당으로부터 합류분자 박창기, 강창제 일파에 속하는 청년투자 이창기, 신기언, 이운환 등의 주창 하에 反김구파 청년투사를 결집하고 새로운 혁명공작을 전개하려는 목적으로 1937년 1월 호남성 장사에서 결성되었다. 그런데 이듬해 1938년 5월 이운환의 김구 등 암살사건으로 수뇌부가 검거되었고, 그 이래 단원들도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면서 자연히 소멸되고 말았다.
김정명 편(1967), 『조선독립운동사(2)』, 원서방, 645쪽
3. 사건의 충격파
중국정부 반응
● 장개석 총통, 1933년 2월 이래 임정에 매달 5,000원 경상비 지급, 1941년까지 지속, 임시비 / 사업비 별도 지급(무전기 등)
● 1938년 김구 피습사건 발생, 진과부 치료비 3,000원 지급, 장총통 특별지시, 김구 보호 / 경제 유지, 사건 발생은 임정의 내부 분규 때문!
● 진과부는 골치아프다! 임정 지원 업무를 중앙당부 군사위원회 이관하라! 업무는 최종적으로 중앙당부 비서처 이관했다.
肅錚(1983), 「중국국민당과 김구」 『韓國獨立運動史資料集』, 博英社
장준하 분노
(1944년 2월 중순경) 우리는 요즘 이곳을 하루빨리 떠나고자 말하고 있습니다. 나도 솔직히 말해 이곳을 떠나고 싶어졌습니다. 오히려 오지 않고 여러분을 계속 존경할 수 있었다면 더 행복했을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가능하면 이곳을 떠나 다시 일군(日軍)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번에 일군에 들어간다면 꼭 일군항공대에 지원하고 싶습니다. 일군항공대에 들어간다면 충칭폭격을 자원, 이 임정청사에 폭탄을 던지고 싶습니다··· 어떻게 임정이 이렇게 네 당, 내 당하고 겨누고 있을 수가 있습니까··· 분명히 우리가 이곳을 찾아온 것은 조국을 위한 죽음의 길을 선택하러 온 것이지, 결코 여러분들의 이용물이 되고자 해서 이를 악물고 헤매어 온 것은 아닙니다.
장준하(2017), 「돌베개」, 돌베개.
총격의 후유증 '떨림체'
月到千虧餘本質柳經百別又新技
七十四歲白凡金九
마무리
● 이운환은 의협심이 강한 남자, 사주가 아닌 개인적 범행, 충분 이해 가능!
● 범행 동기는 생활비 배분의 차별대우, 저격 사건의 진실은 "임정 내홍설!"
● 김구, 윤봉길 핏값 활용, 세력확장 / 임정주도권 확보에 광분, 참 뻔뻔한 김구! 이것이 독립운동인가?
https://www.youtube.com/watch?v=w-ZuQtbxL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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