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좋은 글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산그늘]

드무2 2025. 8. 2. 13:42
728x90

[산그늘]

 

 

 

 

일러스트 = 이철원

 

 

 

산그늘

 

장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나에게 젖을 물리고 산그늘을 바라본다

가도 가도 그곳인데 나는 냇물처럼 멀리 왔다

해 지고 어두우면 큰 소리로 부르던 나의 노래들

나는 늘 다른 세상으로 가고자 했으나

닿을 수 없는 내 안의 어느 곳에서 기러기처럼 살았다

살다가 외로우면 산그늘을 바라보았다

 

ㅡ 이상국 (1946 ~)

 

 

 

시인은 아주 어렸을 적의 일을 회상한다. 물건을 사고파는 장에 다녀온 어머니는 아이를 품에 안아 젖을 물리면서 먼 산에 산그늘이 내린 것을 망연히 바라본다. 하루의 해가 뉘엿뉘엿 기운 무렵이었을 것이다. 장성 (長成)한 시인은 어느 날 옛집에 들러 산그늘을 바라보면서 그때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시인은 그동안 대처 (大處)로 나가 사느라 힘들고 고생스러운 세상살이를 겪었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서 그러하셨듯이 산그늘을 바라보는 일을 저절로 익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시인은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시 ‘그늘’ 에서 “사는 일은 대부분 상처이고 또 조잔하다” 고 썼다. 다른 시에서는 세상의 인심이 서로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도무지 없다고 애석해했다.

그렇다면 어머니에게, 그리고 시인에게 산그늘은 어떤 마음을 얻게 했을까. 산그늘은 수선스럽지 않다. 불쾌한 소음이 없고, 요란하지 않고, 담담하고 또 적요 (寂寥)하다. 산그늘은 계곡 물소리와 새소리와 바람을 홑이불처럼 덮어준다. 산그늘은 시인의 우울과 고립감을 다독이고 새뜻하게 해주었을 것이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4년 9월 9일 자]

 

 

 

 

 

 

728x90

'詩, 좋은 글 ... >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날과 돌]  (0) 2025.09.20
[베개]  (2) 2025.08.10
[겨울 강가에서]  (5) 2025.07.25
[미역 한 타래]  (1) 2025.07.14
[어두운 등불 아래서]  (2) 2025.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