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너는 누구인가?

5편 운동권 주사파는 위정척사파의 후예

드무2 2021. 8. 28.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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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운동권 주사파는 위정척사파의 후예

 

 

 

 

 

 

『한국 사람 만들기』 I, II, III           함재봉 著

 

 

 

함재봉 교수

 

 

 

김용삼(펜앤드마이크 대기자)

 

 

 

2020년 1월 11일 방송

 

 

 

조선지식인들의 반응 :

송시열과 주자학적 근본주의 탄생

 

● 기축봉사(1649)

● 예송(1차 1659, 2차 1674)

 

우암 송시열

(宋時烈, 1607~1689)

미수 허목

(許穆, 1595~1682)

백호 윤휴

(尹鑴, 1617~1680)

 

 

 

예송(禮訟)

 

제 1 차 예송 : 1659년 : 효종 승하

    ● 자의대비(1624~1688) : 효종의 생모 인령왕후 사후 14세에 중전 책본 : 인조와 29세 차이

    ● 효종 승하시 35세

 

제2차 예송 : 1674년 : 효종의 중전 인선대비 승하

    ● 자의대비 생존

 

 

 

송시열의 '체이부정론'

 

"인조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소현(昭顯)의 아들은 바로 '정이불체'(正而不體)이고 대행 대왕은 '체이부정(體而不正)인 셈입니다."

 

현종실록 즉위년(1659년) 5월 5일(을축) 3번째 기사.

 

 

 

기축봉사(己丑封事)

 

일월(日月)이 비치고 상로(霜露)가 떨어지는 곳에 사는 모든 성명(性命)을 가진 유라면 그들과 한 하늘 밑에 함께 살 수 없는 의리를 가지지 않은 자가 없을 터인데, 더구나 우리 나라는 신종 황제의 은혜를 힘입어 임진년의 변란에 종사가 이미 폐허가 되었다가 다시 존재되고, 생민이 거의 다 없어질 뻔하다가 다시 소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나라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백성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황은(皇恩)을 입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크게 원통해 하는 것이 온 천하에 그 누가 우리와 같았습니까.

그러나 오늘날에 시세를 헤아리지 않고 경솔히 강로(强虜)를 끊다가 원수는 갚지 못하고 화패(禍敗)가 먼저 이르게 된다면, 또한 선왕께서 수치를 참고 몸을 굽혀 종사를 연장시킨 본의가 아닙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마음에 굳게 정하시기를 '이 오랑케는 군부의 큰 원수이니, 맹세코 차마 한 하늘 밑에 살 수 없다.'고 하시어 원한을 축적하고 원통을 참고 견디며 말을 공손하게 하는 가운데 분노를 더욱 새기고 금폐(金弊)를 바치는 가운데 와신상담을 더욱 절실히 하여 계책의 비밀은 귀신도 엿보지 못하고 지기(志氣)의 견고함은 분육[賁育 고대의 장사 맹분(孟賁) · 하육(夏育)]도 빼앗지 못하도록 하여 5~7년 또는 1~2십 년까지도 마음을 늦추지 말고 우리 힘의 강약을 보고 저들 형세의 성쇠를 관찰하소서. 그러면 비록 창을 들고 죄를 문책하여 중원을 쓸어 말끔히 우리 신종황제의 망극한 은혜를 갚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혹 관문(關門)을 닫고 약속을 끊으며 이름을 바꾸고 이치를 밝혀 우리 의리의 온편함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성패와 이둔(利鈍)은 예견할 수 없더라도 우리가 군신 · 부자의 사이에 이미 유감이 없다면, 굴욕을 당하고 구차하게 보존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주자학 근본주의와 조선의 여성

 

신이 고로(故老)들에게 들으니, 선조조에 임진년 왜변이 있은 뒤에 전교가 있었는데, 지난해 성상의 전교와 서로 부합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자세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여항에서 전하는 바로 말한다면, 그때 어떤 종실이 상소하여 이혼을 청하자 선조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으며, 어떤 문관이 이미 다시 장가를 들었다가 아내가 쇄환(刷還)되자 선조께서 후취 부인을 첩으로 삼으라고 명하였으며, 그 처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정실부인으로 올렸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재상이나 조관(朝官)으로 사로잡혀 갔다가 돌아온 처를 그대로 데리고 살면서 자식을 낳고 손자를 낳아 명문 거족이 된 사람도 왕왕 있습니다. 이 어찌 예는 정(情)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때에 따라 마땅함을 달리 하는 것으로서 한 가지 예에 구애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인조실록, 인조 16년(1638년) 3월 11일(갑술) 2번째 기사

 

 

 

주자학적 근본주의와 남존여비사상

 

이정암 『사유제집 삼절부전

선비가 세상에 태어나 옛사람의 글을 읽고 옛사람의 절의를 사모하여 평소에는 큰소리 치면서 '의에 죽고 구차히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가가 위험하고 어려운, 전쟁으로 빼앗고 약탈하는 때를 만나면 목숨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는 자가 백 중 한둘도 없는 법인데, 부인이나 처녀들 중에는 반대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간혹 있으니 나는 이를 우리 가문의 세 절부에게서 보았다.

 

Isabella Bird Bishop, Korea and Her Neighbors(1898) -

농촌 여성의 삶에 즐거움이란 없다. 그의 삶은 고역일 뿐이다. 유일하게 고역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며느리를 보면서 그에게 그 고역을 전가하는 방법뿐이다. 서른 살에 이미 쉰 살로 보이고 대부분 마흔이면 이가 다 빠진다. 자신을 예쁘게 치장하고픈 욕망도 아주 이른 나이에 사라져 버린다. 그의 생각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있다면 땅과 하늘에 수없이 많이 살고 있다고 믿는 유령들에게 치성(致誠)을 드려야 하는 여자의 특별한 의무를 수행할 때 뿐이다.

 

 

 

송시열의 답

 

신은 또 상고하건대 정자가 이르기를, "실절(失節)한 여자를 취하여 배필로 삼으면 이는 벌써 자신이 실절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축년 변란 초에 실절한 부인을 그 남편으로 하여금 버리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는 실절을 가르친 것입니다. 법을 의롭게 제정했더라도 오히려 악이용될까 걱정인데, 이런 식으로 법을 만드니, 어떻게 백성을 방지하겠습니까? 삼가 듣건대 장선징(張善澂) 집에 실절한 부인의 소생이 있는데, 상신(相臣)이 그와 혼인을 의논했다 하니, 추잡함이 막심합니다. 대신이 이와 같기 때문에 조정이 날로 격하되고, 임금의 위세가 날로 강하되니, 매우 두렵습니다.

 

송시열, 『송자대전』 제5권, 봉사, 「기축봉사」

 

 

 

https://www.youtube.com/watch?v=gxehHPrFz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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