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철학 · 인문학 이야기

[피로사회]

드무2 2026. 2. 2.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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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철학자 한병철의 말입니다. 위생이 좋지 않던 시절 사람들은 콜레라 ·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을 두려워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면역학이 발전하면서 세균이나 바이러스 때문에 생기는 병들은 대부분 다스릴 수 있게 됐으니까요. 대신 우리는 신경성 질환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울증이나 번아웃 (소진) 증후군, ADHD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같은 정신적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도대체 왜 이럴까요?

비만은 너무 많이 먹어서 건강과 몸매가 무너진 상태입니다. 우리 사회의 고통도 비슷합니다. 너무 많기에 되레 탈이 나는 거죠. 우리는 노력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얘기하는 사회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뛰어난 사람이 넘쳐나고, 가진 게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노력한다고 해서 그들과 차이를 줄일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한병철의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지쳐 있습니다. 한병철이 지금 시대를 ‘피로 사회’ 라 부르는 이유죠. 갖춰야 할 능력도 많고, 경험해야 할 것도 넘쳐납니다. 시간은 늘 부족하고 일상은 쫓기듯 살지요. 마음은 초조한데 주의는 늘 산만합니다. 불안한 마음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소셜미디어나 숏폼 (짧은 동영상)에 홀려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는 날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세요. 할 게 너무 많으면 고민만 하다가 아무 일도 못 하곤 합니다. 그럴수록 피로감만 더욱 짙어지죠.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한병철은 ‘깊은 심심함’ 에 익숙해지라고 충고합니다. 짐승들은 사색에 잠기지 못합니다. 주변 작은 자극에도 쉽게 정신이 팔리니까요. 그러나 과학과 철학을 비롯한 인류의 위대한 성취는 조용하고 끈질긴 사색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전자기기 같은 ‘과잉 자극’ 은 멀리하는 것이 좋겠죠. 뒤처질지 모른다는 걱정에 열심히 일만 하는 모습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기계는 쉴 새 없이 일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계를 현명하다고 하지는 않지요. 세상이 부추기는 욕구에 휘둘리기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진정 무엇을 바라는지 차분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병철은 ‘눈 밝은 피로’ 를 느끼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기독교 ‘성경’ 에서는 신이 세상을 창조한 뒤 일곱 번째 날에 휴식을 취합니다. 그래서 휴일은 신성한 날입니다. 피로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삶은 가치 있어져요. 부산하게 허둥거린다고 잘 사는 삶은 아닙니다. 온갖 욕망으로 넘쳐나는 시대, 진정 행복하고 알찬 삶의 길은 무엇인지 ‘피로사회’ 를 읽으며 고민해 보기 바랍니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 교사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6년 1월 27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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