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고대와 사자 · 해태]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 전시된 법고대예요. / 연합뉴스
'케데헌' <케이팝 데몬 헌터스> 더피 닮았네··· 미국 홀린 K유물의 정체는?
동물 형상화한 조선시대 북 받침대로
으르렁대는 상상 속 사자 표현했죠
6만명 찾은 美 전시서 줄지어 인증샷
뿔이 없는 '한반도 해태' 일 가능성도
이달 1일까지 미국 워싱턴DC의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열린 ‘한국의 보물’ 특별전을 찾은 관람객이 모두 6만5000명에 달했다고 하네요. 비슷한 다른 전시의 2배가 넘을 정도였습니다. 이는 이건희 (1942 ~ 2020) 삼성그룹 회장이 수집한 문화유산과 예술품을 일컫는 ‘이건희 컬렉션’ 의 첫 해외 순회 전시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했어요.
그런데 이 전시에서 아이돌급 인기를 누린 유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법고대 (法鼓臺)예요. 불교 의식에 사용되던 북인 ‘법고’ 의 받침대인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듯한 동물을 형상화했어요. 그런데 왜 관심을 받은 걸까요? 관람객 사이에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에 등장하는 호랑이 ‘더피’ 와 닮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인증샷이 쏟아졌다고 해요. 오늘은 법고대와, 여기에 형상화된 동물의 정체를 같이 알아볼까요?
상상 속 동물이던 '사자'
이번에 미국에서 전시된 법고대는 19세기 조선 시대 작품입니다. 동물 조각상에 갈기가 표현된 것으로 볼 때 이 동물은 사자로 보인다는 의견이 나와요. 동물은 푸른색으로 채색됐고 그 위에 연꽃 모양 법고 받침이 올려져 있습니다.

충북 보은군 법주사의 쌍사자 석등이에요. / 국가유산청
여기서 의문이 생길 겁니다. “사자는 저렇게 생기지 않았잖아요!” 라고 말이죠. 주로 초원에 사는 사자는 숲이 많은 동아시아에서 서식하지 않기 때문에 근대 이전 우리나라 사람들이 실제로 사자를 볼 일은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교 서적 등으로 사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일찍부터 나무나 돌로 사자의 모습을 표현하는 일이 많았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동물이다 보니 상상 속 동물처럼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실제 모습과 다르게 묘사됐다고 해요. 512년 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 (지금의 울릉도와 독도)을 정벌할 때 나무로 만든 사자를 배에 싣고 가 겁을 준 일은 유명하죠. 8세기 작품인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은 국보로 지정돼 있어요. 국가무형유산인 함남 북청의 ‘북청사자놀음’ 은 사자 탈을 쓰고 추는 탈춤입니다. 이렇게 전승되는 사자의 모습은 갈기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한반도 온 뒤 뿔이 사라진 해태
그런데 이 동물은 사자가 아니라 ‘해태’ 일 수도 있습니다. 어딘가 중국의 해태상을 닮은 것 같기도 하거든요. 국립중앙박물관은 법고대 (법고 받침대)는 대개 사자나 해태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해태가 뭘까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는 동아시아 상상의 동물인데 ‘해치’ 라고도 읽습니다. 그러니까 식품 업체인 해태제과의 ‘해태’ 와 서울시의 대표 캐릭터인 ‘해치’ 는 같은 대상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죠.
해태가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무엇일까요. 예전에 ‘고주몽’ 편에서 부여의 ‘동명 설화’ 가 등장하는 중국 책을 설명했던 걸 기억하는 독자도 있을 거예요. 후한의 사상가 왕충이 쓴 ‘논형’ 입니다. 이 책에서는 ‘해태는 외뿔이 있는 양 (羊)이며 천성적으로 죄 있는 자를 안다’ 고 했어요. 영어로는 유니콘 라이언 (unicorn-lion)이라고도 합니다. 재판을 할 때 해태가 거짓말하는 사람에게 달려가 날카로운 뿔로 들이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서울 광화문 앞에 있는 해태 석상. /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한복판 광화문 앞에도 해치 석상이 두 개 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요. 머리가 둥글둥글하고 날카로운 이빨이 돋보이긴 한데, 해치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는 뿔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또 공정한 법 집행을 상징하는 해치가 사법과 관련 있는 건물이 아니라 왕궁 정문에 있는 것도 뭔가 이상하다는 겁니다. (김언종 논문 ‘해태고’) 어떻게 된 걸까요?
이 미스터리에 대해선 크게 세 가지 의견이 나와 있어요. ①해태가 맞다. 다만 법 집행의 상징이었던 해태가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수문장 (성문을 지키는 사람)’ 이라는 성격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뿔도 사라져 머리가 둥글둥글하게 순화됐다. ②해태가 맞다. 광화문 해태상의 머리 부분을 보면 나선형 무늬가 보이는데, 이것이 뿔을 2차원적으로 표현한 것이거나 뿔이 있던 자국이다. ③해태가 아니다. 다른 동물인데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거다.
광화문 앞 해태의 정체는 '사자' 일 수도
③번 의견대로 그 동물이 해태나 해치가 아니라면, 다시 말해 우리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라면, 도대체 그 동물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기린이란 의견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아는 기린이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상상의 동물’ 이던 기린을 가리키는 거죠. 옛 문헌 등을 찾아보면, 사자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목이 약간 길고 머리에 뿔이 달렸다고 해요.

중국에 있는 상상의 동물 ‘기린’ 청동상입니다. / 위키피디아
광화문 앞 해태는 상상의 동물인 기린 중에서도 뿔이 없는 종류인 ‘도불’ 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습니다. 도불은 ‘사악한 기운의 범접을 막고 상서로운 기운을 불러온다’ 는 뜻을 함축하고 있어요. 불의 기운을 누르려고 해태상을 세웠다는 속설과도 들어맞는다는 겁니다. 또는 해태가 아니라 몸에 원 무늬를 새긴 사자라는 의견도 있어요.
이를 모두 종합해보면 광화문 앞 해태 (해치)는 ‘뿔 있는 해태’ 일 수도, ‘뿔 없는 해태’ 일 수도, ‘기린의 일종인 도불’ 일 수도, 아니면 ‘사자’ 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럼 미국에 갔던 법고대 짐승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사자처럼 보이는 해태일 수도, 해태처럼 보이는 사자일 수도 있는 거죠. 뭐가 됐든 분명한 건 있어요. 무서운 짐승이라기보다는 매우 친숙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형상화됐다는 점이에요. 요즘 해외 관람객은 사자나 호랑이를 이처럼 해학적으로 표현한 한국 전통 미술에 흥미를 느끼고 있답니다.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기획 · 구성 = 정해민 기자 (at_ham@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6년 2월 5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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