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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유산 전체 옮겨 온 건 처음 ㅡ 관월당]

드무2 2026. 3. 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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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유산 전체 옮겨 온 건 처음 ㅡ 관월당]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의 사찰 고토쿠인 (高德院) 경내에 있던 관월당. 조선시대 왕실 사당 건축물로 추정되며, 사진은 해체 전 모습이다. / 국가유산청

 

 

 

관월당, 100년 만에 돌아왔다··· 日 우익 반대에 작전하듯 해체 · 이송

 

 

 

조선 왕실 사당 건축물로 추정

"조선식산은행, 日기업인에게 증여

그 후 고토쿠인 사찰에 기증돼"

 

첩보전 방불케 한 '한국 반환'

작년 6월 건물 해체 시작으로

기와 · 석재 · 목재 등 순차 이송

 

 

 

일본 애니메이션 ‘슬램덩크’ 의 배경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 높이 11m 거대한 청동 대불 (大佛)이 있는 사찰 고토쿠인 (高德院)은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 관광지다. 일본 국보로 지정된 이 빼어난 불상 뒤편엔 ‘관월당’ 이라 불리는 조선 시대 건축물이 있었다. 조선 후기 왕실 사당 양식을 갖춘 목조 건축물이다. 통째로 뜯겨 일본으로 반출된 이 비운의 건물이 100여 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왔다. 사찰 주지 스님의 ‘조건 없는 기증’ 을 통해서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조선 왕실 사당 건축물로 추정되는 ‘관월당’ 건물을 해체해 부재 5000점이 국내로 돌아왔다” 고 24일 밝혔다. 국가유산청과 재단은 앞서 23일 오후 관월당 건물을 소유해온 고토쿠인의 사토 다카오 주지와 약정을 맺고 최근 국내로 반입한 관월당 부재를 공식 양도받았다. 해외에 있는 우리 건축 유산이 통째로 돌아온 첫 사례다. 지난해 건물을 해체한 뒤 석재 · 철물 · 기와 · 목재를 단계적으로 국내로 이송했고, 해체된 부재들은 현재 경기도 파주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높이 11m에 달하는 '가마쿠라 대불'.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에 있는 사찰 고토쿠인을 대표하는 일본 국보이자 수많은 관람객들을 가마쿠라로 견인하는 상징 유산이다. 관월당은 이 거대한 불상 뒤편에 있었다. / 위키피디아

 

 

 

그래픽 = 정인성

 

 

 

‘관월당’ 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목조 건축물이다. 1924년 조선식산은행이 야마이치 증권 초대 사장인 스기노 기세이 (杉野喜精 · 1870 ~ 1939)에게 증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왕실 관련 건물로 원래 서울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도쿄로 옮겨져 스기노 자택에 세워졌다가, 1930년대 스기노가 고토쿠인에 기증하면서 사찰 경내 대불 뒤편으로 이전돼 관음보살상을 봉안한 기도처로 활용돼 왔다.

이번 귀환은 사토 다카오 주지의 굳은 신념 덕분에 가능했다. 사찰 주지이자 게이오대 민족학고고학 교수인 그는 “2002년 주지로 취임할 때부터 건물의 유래를 듣고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며 “마무리까지 23년이 걸렸다” 고 했다.

 

 

 

해체 중인 관월당. / 국가유산청

 

 

 

관월당은 국내 학계에서도 ‘반드시 돌아와야 할 문화유산’ 으로 꼽혀왔다. 지난 2010년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한 · 일 불교 문화 교류대회에 참석해 관월당을 한국에 돌려주는 데 일본 불교계 측과 합의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충분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 보도를 통해 발표가 먼저 나오자 일본 측에서 보수 우익 단체를 중심으로 반발이 커졌고, 이후 한동안 교섭이 중단됐다.

협의의 물꼬를 다시 튼 것도 사토 주지다. 2019년 국가유산청 (당시 문화재청)에 먼저 연락을 해왔고, 이후 국가유산청과 국외재단이 현지 조사, 연구, 정밀 실측 등을 진행하며 한 · 일 공동 프로젝트를 이어나갔다. 지난해 6월 건물 해체를 시작해 11월 기와 3457점과 석재 및 철물 401점이 국내에 이송됐고, 올해 5월 목재 1124점까지 극비리에 이송을 마무리했다.

 

 

 

24일 오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사토 다카오 고토쿠인 주지 (왼쪽에서 세번째)와 국내 연구팀이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 박성원 기자

 

 

 

24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관월당 건물을 해체 작업 중인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 뉴스1

 

 

 

이날 언론공개회에서 연구팀은 “관월당은 대군 (大君)급 왕실 사당 규모에 해당한다” 고 밝혔다. 기존 학계에서 관월당을 경복궁 건물로 보는 의견도 있었으나, 현지 조사를 진행한 이경아 서울대 건축학과 부교수는 “건물 구조와 여러 문헌을 검토한 결과, 경복궁 전각이나 기타 궁궐 내 건물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고 했다. 기와는 용문 (龍文), 거미문 (蜘蛛文), 귀면문 (鬼面文) 등 다양한 형태의 암막새를 사용했고, 단청도 운보문 (雲寶紋), 만자문 (卍字文) 등 다채로운 무늬로 장식돼 건물의 높은 위계를 보여준다고 연구팀은 덧붙였다.

 

 

 

관월당을 3D스캔한 모습. / 국가유산청

 

 

 

왼쪽 사진은 관월당 기와를 해체하는 모습. 오른쪽은 국내로 이송 완료된 부재들이 경기도 파주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수장고에 보관 중인 현재 모습이다.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은 “분석 결과를 종합해볼 때, 관월당은 간단한 목가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내부에는 화려하고도 격식 있는 의장을 추구한 18 ~ 19세기경 왕실 관련 사당 건축물로 추정된다” 고 했다. 다만 지난해 건물을 해체할 때 상량문 등 당시 건립 관련 자료는 발견되지 않아 건물의 원래 명칭이나 위치, 배향 인물 등은 향후 연구 과제로 남았다.

 

 

허윤희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5년 6월 25일 자]

 

 

 

"제국주의 시대 유산, 제자리 반환은 세계적 흐름"

 

 

 

'기증 주역' 사토 다카오 주지

한국 반환 관련 비용 자비 부담

"한일 교류 기금 10억원도 낼 것"

 

 

 

사토 다카오 고토쿠인 주지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는 올해 관월당을 한국에 돌려보내게 돼 영광” 이라고 했다. / 박성원 기자

 

 

 

“처음 결심하고 한국으로 온전히 돌려보내기까지 23년이 걸렸네요. 중요한 일을 마무리하게 돼 제 생애 가장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의 사찰인 고토쿠인 (高德院)의 사토 다카오 (佐藤孝雄 · 62) 주지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는 올해 관월당을 고향인 한국에 돌려보낼 수 있게 되어 영광” 이라고 말했다. 24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난 그는 승복 대신 깔끔한 양복 차림이었다. 그는 승려이자 게이오대 민족학고고학 교수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에서 반출된 문화유산을 다시 반환하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 이라며 “중요한 건 돌려보내려는 마음가짐” 이라고 강조했다.

 

 

 

24일 오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사토 다카오 주지가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 박성원 기자

 

 

 

그는 2002년 사찰 주지가 됐을 때부터 관월당을 한국으로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랜 뜻을 관철하기 위해 2019년 게이오대 김병철 교수, 한일 관계 전문가인 하종문 한신대 교수 등과 상의했고,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을 만나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이번에 건물을 모두 해체해 관련 부재를 한국으로 옮기기까지 일본 내 비용을 모두 자비로 부담했다. 그는 “문화유산을 보관 · 관리해온 입장에서 비용을 내는 건 당연한 책임” 이라고 했다. 한일 문화유산에 대한 학술 교류를 지원하기 위해 1억엔 (약 9억4000만원)의 기금을 마련해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기부하는 방안도 협의 중이다.

 

 

 

24일 오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난 사토 다카오 주지. 고고학자인 그는 "일본과 한국은 동일한 유전자 정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 했다. / 박성원 기자

 

 

 

반환 과정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처음 시도했던 반환 논의가 무산되며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는 “2010년 처음 이야기가 나왔으나 제 허락도 없이 진행됐고, 언론에 보도된 다음 날 곧바로 일본 우익 단체가 개입해 ‘확성기를 들고 사찰 앞에 출동하겠다’ 는 협박 전화를 받았다” 며 “신뢰 가능한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졌다” 고 했다.

이번에도 일본 우익이 반대하지 않을까. “15년 전과 다른 건 이미 관월당 부재가 한국에 모두 돌아왔다는 것이지요. 이송 작업이 한창이던 지난해 말 예상치 못한 계엄으로 불안하기도 했지만, 이미 시작된 일이라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는 “고고학자로서 일본과 한국은 동일한 유전자 정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며 “일본 내에도 식민지 시대에 반출된 문화유산을 회복해야 한다는 뜻을 가진 연구자가 많다. 관월당 사례가 하나의 모델이 되고, 한일 우호의 상징이 되리라 믿는다” 고 했다.

 

 

허윤희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5년 6월 25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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