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⑴ 스탈린과 40년전쟁]
▲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 44세 ⓒ 뉴데일리DB
● 연재를 시작하며
대한민국의 건국은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피와 땀이 이룩해낸 성공이다.
그 선구적 리더가 이승만이었음은 역사적 기록이 증명한다. 김구는 어떠했던가?
지금 대한민국은 건국의 주역 이승만을 제쳐놓고 '건국을 반대한 임시정부 주석' 김구를 가장 숭앙하는 역사왜곡의 아이러니에 빠진지 오래다. 왜 그럴까?
1948년 3월, 역사상 최초의 자유민주 총선거 (5 · 10)를 앞두고서 벌어진 건국전쟁의 현장을 보자. '유엔감시 총선을 통한 건국'이란 외교독립론에 마침내 성공한 이승만 박사는 김구가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얼마 전까지 유엔의 남한단독정부수립에 적극 동조하던 김구가 하루밤새 돌변하여 "김일성과 통일 협상" 주장을 들고 나와 평양행을 고집하는 것이었다.
"갈 테면 모스크바로 가라. 소련의 꼭두각시 김일성을 백 번 만나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남북통일을 논의하겠다면 분단의 원흉 스탈린을 직접 만나서 담판해야 할 것이다. 우리 자유 총선거를 무산시키려는 남북회의에 참가하면 스탈린의 목적에 이용만 당할 뿐이다. 한국 지도자 중에서 이것을 홀로 모른채 평양행을 고집한다니 대세에 몽매하다는 조소를 면키 어려울 것이오. 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국가 대사에 방해되는 것을 생각지도 못하니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이승만 담화)
'갈 테면 모스크바 스탈린을 찾아가 담판하라'는 한마디가 두 사람의 격차를 드러낸다.
'소련은 최악의 독재'라는 말을 『백범일지』에 써놓았던 김구가 자신의 정당 한독당까지 반대하는데도 굳이 소련의 하수인 김일성을 꼭 만나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태어나면서부터 '지정학의 함정'에 놓여있는 한반도, 국경선에 몸 붙인 주변국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당대의 군사대국들, '독립유지'에 필요한 것은 지정학적 상상력, 지정학적 접근, 지정학적 전략전술이다. 조선왕조의 '사대주의' 선택이 그 시대적 요구였다면, 강대국들 약육강식 전쟁시대에 일본식민지 약소민족의 독립은 누가 어떻게 이루어 낼 수 있으랴.
다행히도 스무살 청년선비 이승만은 배재학당에 들어가 '자유의 신대륙' 미국을 발견한다.
미국 선교사들과 서재필과 유치호로부터 세계역사, 세계지리, 수학, 물리학, 천문학 등 선진과학 문명과 영어를 배워 익히면서 망국작전 조선을 혁파하여 자유민주국가로 거듭나야 할 것인데 미국을 새로운 독립국가 모델로 삼는다.
독립협회의 청년 지도자, 한국 최초의 민간 일간지를 두 개나 창간한 언론인, '만민공동회'의 인기스타 젊은 혁명가는 급기야 한성감옥에 갇힌다. 모진 고문을 받던 중에 '뜨거운 성령'을 받아 기독교로 회심한 사형수 이승만, 그 순간 기독교의 순교자적 신앙에 녹아든 자유와 민주주의 '건국의 꿈'은 옥중서신 『독립정신』에 오늘 봐도 참신한 그림으로 꽃피운다.
다시 말하면, 지정학의 굴레에 묶여 3강국의 먹이가 된 한반도에서 주변국의 위협을 물리치고 독립을 지켜줄 힘을 바로 미국 역사연구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미국의 힘을 이용한 한국독립"이란 지미친미용미 (知美親美用美)의 현대병법으로 무장, 당시 유일한 글로벌 리더십을 갖춘 독립운동가로 스스로의 전투태세를 완성한다. 고종 황제 부자가 대한제국을 "일본 천황폐하께 기꺼이 양도"하던 1910년 8월이었다.
▲ 소련 레닌과 스탈린.(자료사진)
인보길 기자
[출처 : New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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