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배설물]
▲ / 그래픽=유재일
수컷 향유고래 배설물은 최고급 향료··· 1㎏당 4000만원
박쥐에서 모기 눈알 건져 요리
사향고양이에선 커피 씨 골라내
코끼리에선 종이 만드는 재료 얻어
우리는 '똥'이라고 하면 보통 더럽고 지저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똥은 정말 아무 쓸모 없이 불쾌하기만 한 걸까요. 인도 등 여러 나라에선 아직도 소나 낙타의 똥을 땔감으로 쓰고 있고, 동물의 배설물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기도 해요. 똥을 재가공해 사용하는 것은 친환경적이기도 해요. 어떤 동물의 배설물이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알아볼까요.
모기 눈알 수프는 수백만원짜리 요리
중국 4대 희귀 요리 가운데 '모기 눈알 수프'가 있어요. 동굴에 사는 박쥐의 배설물에서 모기 눈알만을 건져 만든 요리예요. 박쥐는 곤충 중에서 모기를 주로 잡아먹는데요. 박쥐 한 마리가 여름 하룻밤에 먹는 모기는 3000 ~ 6000마리나 돼요. 모기의 몸은 박쥐 배 속에서 소화되지만 눈알은 딱딱한 키틴질이어서 그대로 똥에 섞여 배설돼요.
이 똥을 모아 명주실로 짠 보자기에 담아 물로 씻어내요. 씻어내기를 거듭하면 마지막에 검은 깨보다 더 작은 모기 눈알이 천에 달라붙어요. 박쥐 배설물 한 말로 모기 눈알 한 숟가락을 얻는다고 해요. 흙에서 사금을 추려내듯 귀하게 모은 이 눈알을 끓여 수프로 만들어요. 모기 눈알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요리 재료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어요.
중국에서 진미로 불리는 모기 눈알 수프는 1986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대접했다고 해요. 한화로 수백만원에 달하는 최고급 요리라 중요한 내빈들에게만 제공된다고 합니다.
커피 열매 가공, 사람 대신 사향고양이가 해요
고양이 · 원숭이 · 다람쥐 똥에서 커피를 수확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실제로 동물의 배설물로 만든 커피가 있어요. 인도네시아에서는 사향고양이 똥에 섞여 나오는 딱딱한 커피 열매 씨를 골라 깨끗이 씻은 후 가공해 독특한 맛의 커피 '코피 루왁'을 만들어요. 사향고양이는 잘 익은 커피 열매를 좋아하거든요.
사향고양이 배설물을 커피 재료로 쓰는 이유는 작업 과정의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서예요. 커피는 커피나무 열매의 씨를 갈아서 만들어요. 그런데 사람이 커피 열매를 따서 일일이 껍질을 벗기고 씨를 빼내는 일은 귀찮고 매우 번거로워요. 그 과정을 사향고양이를 통해서 해결한 거예요.
사향고양이 몸속으로 들어간 커피 열매씨는 소화 과정에서 침 · 위액 등과 섞여 발효돼요. 즉, 커피의 쓴맛을 내는 단백질이 소화 효소와 만나 펩티드와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면서 특유의 맛과 향이 덧입혀지는 거예요. 이 커피는 세계적으로 1년에 500㎏ 정도만 생산돼 가격도 비싸답니다.
바다의 로또 '용연향'은 수컷 향유고래의 똥
세상에는 금만큼 비싼 똥이 있어요. 바로 수컷 향유고래의 똥인 '용연향 (龍涎香 · ambergris)' 이에요. 고대부터 현재까지 최고의 향 (香)으로 평가돼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한 향료로 사용해요. 수컷 향유고래만 용연향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번식기에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려고 몸싸움을 해 소화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래요.
용연향은 사실 향유고래의 위장에서 생긴 결석이에요. 주요 먹이인 대왕오징어의 딱딱한 부리 등 소화되지 않고 뭉친 부분이 위장에 모여 결석이 생기는데, 이것이 똥으로 배출되는 거예요. 갓 배설된 용연향은 똥과 별 차이가 없어요. 검고 끈적거리며 불쾌한 냄새가 나요. 이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바다에 떠다니며 햇빛과 공기에 노출되면서 서서히 희고 딱딱해지고 흙 냄새 같은 은은한 향기를 갖게 돼요. 이걸 알코올에 녹여 향료로 사용하는 거예요, 품질 좋은 용연향은 1㎏당 4000만원을 호가한답니다.
초식동물 코끼리, 배설물에 섬유질 많아요
코끼리의 배설물은 처리하기 힘든 고민거리예요. 코끼리는 덩치답게 하루 평균 400㎏ 이상의 먹이를 먹고, 100 ~ 200㎏의 똥을 누거든요. 아프리카 케냐에서는 처치 곤란한 이 배설물을 종이로 만들어서 사용해요. 그 비밀은 섬유질에 있어요.
초식동물인 코끼리는 풀 · 나뭇잎 · 나무껍질 등을 먹기 때문에 배설물에 섬유질이 많아요. 이 배설물을 모아 물에 담갔다가 항균제를 뿌리면서 헹구고 끓이기를 반복해 섬유질만 남으면 갈아서 죽처럼 만들어요. 여기에 염료를 첨가해 햇빛에 말리면 종이가 돼요. 종이는 나무를 베어 만들기 때문에 종이를 많이 쓰면 숲이 사라지고 탄소 흡수량도 줄어들어요. 똥으로 만든 종이는 나무를 베지 않아 환경을 보호할 수 있어요.
천연 비료이자 화약 원료인 새똥 구아노
요즘 천연 비료인 구아노 (guano)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어요. 구아노는 군집 생활하는 바닷새의 배설물이 응고 · 퇴적된 것인데요. 바닷새인 가마우지류, 사다새류 등이 많이 번식하는 남미 페루 · 칠레 해안에 주로 분포해요.
멸치가 주된 먹이인 바닷새의 똥에는 질소와 인 · 질산칼륨이 풍부해요. 화학 비료가 만들어지기 전, 구아노의 인 (燐)은 식량 생산을 위한 기름진 비료로 쓰였어요. 그래서 구아노를 '인광석 (燐鑛石)' 으로도 불러요. 또 구아노의 질산칼륨은 화약의 원료로도 사용됐어요.
페루의 구아노는 수만 년 동안 바닷새의 배설물이 쌓여 수백 미터의 거대한 퇴적 더미를 이루고 있어서 별다른 가공 없이 채취해서 바로 비료로 쓸 수 있어요. 합성 비료인 암모니아가 개발되기 전, 구아노는 인류가 석유에 버금갈 만큼 의존했던 광물 자원이에요. 1879년부터 1883년까지 볼리비아 · 페루 연합군과 칠레가 맞서 싸운 태평양 전쟁의 발발 원인 중에는 구아노 광산권을 놓고 벌어진 경쟁도 있다고 합니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기획 · 구성 = 김윤주 기자 (yunj@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4월 25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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