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명화 <1> 장욱진 '가족']
소박하고 단란했던 우리 집
다시 보다 :
한국근현대미술전
내 아버지 장욱진 (1917 ~ 1990)은 가족을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경제 관념은 없고 늘 밖으로만 다녔지만, 아버지는 가족을 사랑했다. 그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화백' 이란 단어는 질색해도 집 가 (家)가 들어간 '화가'는 좋아했다. 아버지 그림에 그려진 어린아이를 보면서, 우리 형제들은 다들 그 아이가 자기라고 우겼다.
피란 시절 이산가족처럼 떨어져 살았다. 어머니는 동생들과 외갓집에, 나랑 오빠는 아버지랑 친가에 갔다. 그때부터 나는 아버지랑 짝궁이었다. 아버지가 머리카락도 직접 잘라줬다. 너무 동그랗게 잘라서 학교에 못 간다고 울고불고 한 기억도 있다. 아버지는 측은한 존재였다. 돈 못 버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서점을 운영하면서 다섯 자식을 건사했다. 술 한잔 하면 "나는 그림 그린 죄밖에 없다"고 말하는 아버지가 가여워서, 그 모습이 너무 고독해 보여서 내가 아버지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이번 전시를 두 번 관람했다. 예전과 달리, 그림 속 아버지와 어머니 얼굴만 보였다. 아버지와 여자아이, 이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가 나무 아래서 가족사진을 찍는 것처럼 일렬로 서 있는 그림이다.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일까. 예전 같았으면 가운데 여자아이를 보면서 '이건 분명히 나'라고 생각했을 거다. 두 분이 이렇게 서서 우리를 보호해 주고 있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원근법과 비례를 무시한 채 단순하게 표현된 산과 집은 자연 속에서 소박한 삶을 추구했던 아버지의 이상을 담아냈다. 자세히 보면 사람, 식물, 동물이 같은 공간에 살고 있다. 가족 옆에 강아지가 서 있고, 새는 우리 집 지붕 위에 올라가 있다. 그위엔 산이 있고, 그 산을 오르는 사람이 있다. 모든 생태계가 전부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아버지 그림이 유독 인기라고 들었다. 눈을 부릅뜨고 봐야 하는 그림이 아니라, 따뜻하고 만만한 그림이라 좋아하시는 것 같다. 이 그림을 보는 관객들도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이 정도 그림은 나도 이해할 수 있다' 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그 얼굴을 바라보면서 나도 행복했다.
장경수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명예관장
장욱진 화가의 장녀
전시 : 서울 소마미술관
문의 : (02) 724ㅡ6017
[출처 : 조선일보 5월 24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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