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규의 영원한 집] 01
권진규의 영원한 집
KWON JIN KYU FOREVER HOME
2023. 06. 01 ㅡ 2024. 12. 31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허명회 인터뷰 <나의 외삼촌 권진규와 아틀리에>, 2022, 32분 31초
허명회 인터뷰 1편 <나의 외삼촌 권진규>
허명회 인터뷰 2편 <권진규 예술세계>
권경숙 인터뷰 <나의 오빠, 권진규>, 2022, 40분 49초
귀의
권진규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와 어릴 때부터 절에 자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불교적 세계관을 갖게 되었고, 이는 그의 삶과 작품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는 속리산 법주사 미륵 대불 마무리를 시작으로 일본에서도 <보살입상> (1955) 등의 불상을 제작했다, 이는 불상의 전형적인 도상에서 벗어나 몸은 보살이나 머리는 여래로 표현됐다. 몇 연구자들은 직간접적으로 이를 지적했지만, 학구적인 데다가 뛰어난 관찰력을 가졌던 그가 도상을 몰랐을 리 없다. 추측이나 위로는 부처를 통해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이상적 수행자인 보살과 부처인 여래, 즉 우리가 사는 세상과 정토를 이어 고통받는 중생이 번뇌 없는 청정한 이상세계에 도달할 것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을 수 있다. 이는 1970년대 불상까지 이어졌다.
권진규는 1959년 귀국 후 아틀리에를 완성한 뒤에 하루를 시간 단위로 나눠 아침과 밤에는 주로 작품구상과 드로잉을 하고 점심과 저녁에는 작품을 제작했다. 강의나 재료 구입을 위한 외출을 제외하고는 아틀리에에서 작업에 몰두하거나 옆에 딸린 작은 방에서 독서에 열중했다. 1960년대의 그는 마치 수행자처럼 작업에 정진, 대상의 본질을 담은 강건한 동물상, 다양한 참고물들을 재해석한 부조, 영원성을 지닌 여성 흉상, 자소성 등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확고히 구축했다. 이 시기에도 그는 불교적 색채가 짙은 작품을 제작해 1965년 제1회 개인전에 목조 <입산> (1964 ~ 65)을, 1968년 일본에서의 제2회 개인전에 <비구니>, <춘엽니> 등을 출품했다.
권진규는 1971년 초에 양산 통도사 수도암에 기거하면서 목조 <불상> 제작에 전념했다. 이 역시 국보 제83호 불상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머리부분과 <철조여래좌상> (고려초기)의 몸부분을 참고했다. 머리의 삼산관 三山冠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렬한데 이는 인도나 중국 보살상에서는 찾기 어렵다. 귀가해 테라코타와 건칠 불상을 제작했다. 이때 그를 따르던 혜상 스님과 자주 절을 방문했다. 그는 권경숙에게 "내가 절에서 수양할 때, 기분이 좋으면 부처님이 웃고, 부처님이 웃으면 나도 웃고, 작업이 잘되고, 많이 도움이 됐다," 고 얘기하면서 수양을 강조했다. 그해 6월 『조선일보』 기사 「건칠전 준비 중인 조각가 권진규씨」에서 자신의 작품에 관해 "토착화에 성공했으며 불교적 세계로의 고뇌 어린 침잠 沈潛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라고 했고, 12월에 개최된 제3회 개인전에 건칠 불상 11점을 출품했다. 그러나 반응이 기대에 못 미치자 이후 그는 작품을 제작보다는 로맹 롤랑 (Romain Rolland, 1866ㅡ1944)이 자신의 절망을 이겨내고자 쓴 『베토벤의 생애』와 불교경전인 『반야심경』을 반복해 읽었다. 이에 더해 해외 전시, 동상 제작 등 바라던 일들이 무산되자 그는 1972년 8월 양산 통도사에 다녀와 다음날 가마를 부수고 계속해서 자살을 암시했다.
그는 1973년 고려대학교 박물관이 현대미술실을 만들면서 <가사를 걸친 자소상>과 <마두> 작품을 소장하기로 하자 기뻐했던 것도 잠시, 개막식에 참석한 다음날인 5월 4일 오전 현대미술실에 들렀다 귀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결국 "표박유전 漂泊類轉이 미의 피안길이 아니기를, 운명이 비극의 서설이 아니기를..." 이라는 그의 시구는 현실이 됐다. 그는 자신의 혼을 불어넣어 영원히 사는 작품을 두고 그렇게 귀의했다.
<입산>, 1964ㅡ65년경, 나무, 109 × 93 × 23㎝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입산> (1964ㅡ65)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인 일주문 一柱門을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을 구상하며 그린 드로잉에 '1964. 12. 목조 木彫 입산 入山' 이라는 글귀가 들어잇을 뿐만 아니라, 목조로 된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은 형태를 볼 때 일주문을 상징화한 것으로 보인다. 사찰에 들어가기 전 세속의 번뇌를 끊고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라는 뜻이 담겨 있는 건축물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권진규의 불교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또한 그의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1m가 넘는 대형인 데다 한옥의 결구 結構처럼 못을 사용하지 않고 각각의 자재를 서로 연결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간결하고 소박한 형태, 나뭇결을 최대한 살리면서 목재를 우아하게 다듬은 흔적 등 전통 목조 건축에 대한 권진규의 관심이 잘 반영되어 있다.
<자소상>, 1970년대, 석고, 31 × 16 × 20㎝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자소상> (1970년대)은 작품을 고정할 수 있는 별도의 장치가 없는 얼굴 조각이지만 마스크는 아니다. 작품을 전시하는 방식을 고안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권진규의 병세가 깊어진 1970년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넓은 이마 중앙부에 약간의 머리카락을 덩어리로 표현하였다. 코는 길고 입은 꼭 다물었으며 눈을 감은 모습으로 눈두덩이가 표현되었다. 광대는 내려앉았고 피부도 느슨해 보인다. 마치 데드 마스크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눈두덩은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그럼에도 작은 흙을 붙여 손으로 눌러 표면을 마무리하는 방식은 이 작품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1997년에 출판된 『한국의 미술가 권진규』 (삼성문화재단)에서 이 작품에서 "하악골이 길고 깡마른 얼굴에서 병이 깊어가고 있는 자신의 얼굴에 대한 정직한 관찰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라고 하였다. 데드 마스크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두상은 삶과 내세의 중간지점에서 인간의 영혼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불상>, 1970년대, 나무, 25 × 8.5 × 6.5㎝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불상> (1970년대)은 시무외인 施無畏印 (손을 가슴 위로 들어 올리고,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한 모습으로 '두려워하지 말라' 라는 뜻이다.)과 여원인 與願印 (손바닥을 밖으로하여 내린 손 모양으로 중생이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한다는 뜻이다)의 수인을 한 불상을 제작하다가 미완으로 남겨진 목조각이다. 얼굴이 완전히 마무리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신체 비율을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5등신에 가까울 정도로 머리가 크다. 이 작품은 일본 유학 시기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보살입상> (1955)처럼 머리의 중앙부를 봉긋하게 올리고 나발은 묘사하지 않았다. 권진규는 1970년대 제작한 불상에서도 도상을 엄격하게 지키지 않았는데, 그것은 불상의 제작 과정이 그에게 제작 과정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통로이자 독자적인 창작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경우 얼굴 윤곽은 다 잡혀 잇으나 보살을 상징하는 장신구가 보이지 않고,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한 것으로 보아 아미타불과 같은 불입상을 조각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불상>, 1960년대, 화강석, 13 × 8 × 9㎝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불상> (1960년대)은 전체적으로 미완으로 보이지만 크기가 작은데 비해 도상이 또렷이 드러나 보인다. 돌 전체의 앞부분에 불상을 조각하여 뒷면이 광배가 되는 거신 광배의 부조 형상을 띠고 있다. 상호 相好는 둥근 편이며 머리에는 작지만 육계가 표현되어 있다. 수북한 눈두덩이에 도톰한 입술 등이 부드러운 북제주 양식을 상기시키는데, 어깨는 둥글고 편단우견 복장을 하였다. 자세는 오른쪽 다리에 왼쪽 다리를 올린 상태여서 반가좌를 한 것으로 보인다. 왼손은 전면에 두고 자세를 앞으로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유희좌 遊戱坐 (한쪽 다리는 곧추 세우고 다른 한쪽 다리는 대좌 아래로 내려뜨린 자세)의 여래상을 표현한 것으로도 보인다. 전통을 공부하며, 불상에서도 미륵보살성과 여래상의 도상을 혼용하는 등의 부단한 실험을 한 권진규의 불상에 대한 연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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