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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대통령기념관] 12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2 수출지원정책 우리나라 수출은 196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경제를 고도성장시킨 주요 원동력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1년 정권 초 "불타고 도둑맞은 폐가를 인수한 것 같다"라고 말하며 나라를 꾸려갈 자본도, 자원도, 기술도, 인재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에서 '수출만이 살길'임을 확신하고 국력을 집중하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수출증진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여 경제발전을 위한 수출지원정책들을 수립 및 실현해 나갔다. 정부는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1962년부터 대통령 주관하에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수출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풀고, 금융 및 세제 혜택과 수출 우수기업들을 우대하는 등 수출지원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 결과 1964년 1..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1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1 세종로 지하도 개통기념 가위 / 태평로 지하도 준공기념 가위 /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 개통기념 가위 / 삼각지 입체로 개통기념 가위 남산 제1호 터널 및 고가도로 개통기념 가위 /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 개관기념 가위 / 북악터널 개통기념 가위 남해대교 개통기념 가위 / 호남-남해 고속도로 개통기념 가위 / 서울-강릉 간 고속도로 개통기념 가위 / 어린이대공원 개원기념 가위 천호대교 개통기념 가위 / 남산 제3호터널 준공기념 가위 / 영산강 유역 농업개발사업 준공기념 가위 종합영상관 수출진흥확대회의 Expanded Meetings for Export Promotion 수출은 원대한 안목을 가지고 착실히 계획하고, 줄기차게 실천해야 한다. 목전의 조그만 이익보다는 내일에 얻을 수..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0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0 세계 리더들이 말한 한강의 기적 "내 아버지가 미국에서 유학하던 1960년대 초반에는 케냐의 GDP가 한국보다 높았고, 내가 태어나던 때도 케냐가 한국보다 훨씬 부유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두 나라 경제 규모가 전혀 비슷하지 않다. 사람들의 능력과 잠재력을 활용하지 못한 게 케냐가 한국처럼 발전하지 못한 이유다."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 (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이룩한 성과 중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사우스코리아"라고 말하고 싶다." 피터 드러커 경영학자 (아래)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다. 박정희는 헌신적이었고 개인적으로 청렴했으며 열심히 일했다. 그는 국가에 일생을 바친 리더였다."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명예교수 (위) "내가 본 대한민국의 ..

[박정희대통령기념관] 09

[박정희대통령기념관] 09 간호사 서독 파견 간호사는 독일 마인츠 대학 의사였던 이수길 박사의 주선으로,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총 1만 226명의 간호인력이 파견되었다. 독일의 의료시스템은 '간호원 중심제'로 간호사들은 의료인으로서의 업무 외에도 환자 옷 갈아입히기, 병실 청소, 식사 보조 등의 일을 하였다. 이러한 고된 일과에도 연장근무와 주말근무까지 자청해 가며 모은 돈은 가족들에게 보내졌다. 이들의 성실과 친절함에 독일 언론은 "한국 젊은 여성의 친절, 상냥한 미소"등의 내용으로 취재에 열을 올리기도 하였다. 서독에 파견된 근로자들이 송금한 돈은 당시 우리나라 연간 총 수출액의 2%에 가까웠으며 국제수지 개선 및 국민소득 향상, 나아가 한국경제성장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이후 서독파견 근로자..

[박정희대통령기념관] 08

[박정희대통령기념관] 08 서독 에르하르트 총리의 조언 2 박정희 대통령은 에르하르트 총리와 단독회담에서 독일의 경제지원을 당부하였다. 이에 에르하르트 총리는 "각하, 일본과 손을 잡으시지요. 우리 독일과 프랑스는 역사상 42번이나 전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데나워Konrad Adenauer 총리가 드골Charles de Gaulle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면서 이웃나라끼리 손을 잡았지요. 한국도 일본과 손을 잡으시지요."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과 프랑스는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싸웠지요. 우리는 일본과 단 한 번도 대등한 입장에서 싸워본 적이 없습니다. 몰래 힘을 키운 일본이 침략했을 뿐입니다. 그래 놓고도 지금까지 사과도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나라와 어떻게 손을 잡으란 말입니까..

[박정희대통령기념관] 07

[박정희대통령기념관] 07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개요) 1962년 1월 1967 - 1971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목표는 산업구조를 근대화하고 자립경제의 확립을 촉진하는 것이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계획 수립 단계부터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을 참여시키고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중점과제로는 식량자급, 산림녹화, 수산개발과 화학 · 철강 · 기계공업 등을 건설하여 공업고도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고용을 증대하며, 가족계획의 추진으로 인구팽창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소득의 획기적 증대와 영농다각화를 통한 농가소득 향상에 주력하며, 과학 및 경영기술 진흥, 인적자원을 배양하여 기술수준과 생산성 제고에 역점을 두고 추진하였다. 그 결과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원래 계획의 ..

[박정희대통령기념관] 06

[박정희대통령기념관] 06 5월 혁명은 단순한 변혁도, 외형적 질서정비도, 새로운 계층형성도 아닙니다. 상극相剋과 파쟁派箏, 낭비와 혼란, 무위無爲와 부실의 유산을 조상과 선대로부터 물려 받은 우리 불운의 세대가 이 오염된 민족사에 종지부를 찍고 자주와 자립으로 번영된 내일의 조국을 건설하려는 것이 우리 혁명의 궁극적 지표인 것입니다. 1963년 8월 30일 전역사 민족중흥의 길에 나서다 외국에서 들여오는 주의, 사상, 정치제도를 우리 체질과 체격에 맞추어서 우리에게알맞은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내가 주장하는 민주주의다. 우리는 서양사람들이 입는 양복을 그대로 입을 수는 없다. 저고리 소매도 잘라내고 품도 줄여야 입을 수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도 바로 이와 같이 우리 실정에 맞추어야 한다. 1963년 9월..

[박정희대통령기념관] 05

[박정희대통령기념관] 05 미국육군포병학교 학생장교 시절의 박정희 준장(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 작은 거인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프랑스령의 외딴섬 코르시카 출신이다. 가난과 설움 속에서 군사학교를 졸업한 후 유럽의 절반을 제패하며 30대 초반에 프랑스의 황제가 되었다. 교육, 종교, 문화, 법률 등 오늘날 프랑스의 초석을 남긴 인물로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란 명언을 남기기도 하였다. 어릴적 '나폴레옹' 전기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박정희는 책상 앞에 걸어놓은 나폴레옹의 사진을 보며 군인의 꿈을 키웠고 그것은 곧 현실이 되었다. 나팔 문경보통학교 교사시절 아침 새벽마다 마을 동산에 올라 불었던 나팔 보통학교 교과서(書方手本) 일제강점기 당시 보통학교 학생들이 배우던 글씨 교본책 책상 대구사범학교 시..

[박정희대통령기념관] 04

[박정희대통령기념관] 04 "너희들에게 꼭 마지막으로 부탁할 말은 공부 잘하여 씩씩하고 굳센조선 여성이 되어달라는 것이다." 증언 : 문경공립보통학교 제자 정순옥 "선생님은 이 담에 뭐가 될낍니꺼? "나는 대장이 될란다. 전장에 나가서 용감히 싸워 이기는 대당이 될란다." 증언 : 문경공립보통학교 3학년 담임시절 급장인 주영배와의 대화 군인의 길을 걷다 Becoming a Soldier 1940년 3월 하순 박정희는 구미에서 만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대구사범학교 재학시절부터 품어왔던 군인의 길을 가기 위해서였다. 칠순의 어머니는 "늙은 어미를 두고 왜 그리 먼 곳을 가려고 하느냐?"하며 박정희의 옷자락을 놓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1940년 4월 박정희는 만주국 육군군관학교 제2기생으로 입교하..

[박정희대통령기념관] 03

[박정희대통령기념관] 03 문경공립보통학교 현판 대구사범학교 성적표 대구사범학교 재학 당시(1932~1937) 성적표로서 체육과 교련과목 외는 성적이 좋지 않았다. 대구사범학교 교모 대구사범학교 교복 금강산의 추억 1934년 5월 대구사범학교 3학년이었던 박정희는 70여 명의 동기생들과 함께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금강산까지는 철원에서 기차를 타고 이동하였다. 당시 학생들은 금강산의 절경에 감동하여 각자 글들을 남겼는데 박정희는 민족의 아픈 현실과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글을 쓸 정도로 남다른 열일곱 청년이었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 너는 세계의 명산! 아! 네 몸은 아름답고 森嚴(삼엄)함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데 다 같은 삼천리 강산에 사는 우리들은 이 같이 헐벗었으니 과연 너에 대하여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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