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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3

[김일성과 박헌영 서열 바꾼 스탈린의 모스크바 면접]

[김일성과 박헌영 서열 바꾼 스탈린의 모스크바 면접]     일러스트 = 한상엽    조선공산당 1인자 박헌영은 왜'수령' 이 되지 못했나   스탈린이 호통쳤다"인민은 땅을 파고결정은 우리가 하는 것" 朴, 가정 파탄나도공산당에 몸 바쳤지만소련군 출신 金에 밀려    1900년생 박헌영은 1912년생 김일성보다 열두 살 위였다. 해방 이전 공산당 관련 사건으로 세 차례에 걸쳐 10년 가까이 복역했다. 1927년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을 때는 법정과 구치소에서 광인처럼 날뛰었고, 두 차례 자살 시도를 했다. “대변을 보고는 손에 쥐어 벽에 바르고 간수가 밥을 갖다주면 밥은 그대로 두고 변을···” (박갑동, ‘박헌영’)이라는 일화는 당대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병보석으로 석방되어서는 만삭 아내..

[⑴ 스탈린과 40년전쟁]

[⑴ 스탈린과 40년전쟁] ▲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 44세 ⓒ 뉴데일리DB ● 연재를 시작하며 대한민국의 건국은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피와 땀이 이룩해낸 성공이다. 그 선구적 리더가 이승만이었음은 역사적 기록이 증명한다. 김구는 어떠했던가? 지금 대한민국은 건국의 주역 이승만을 제쳐놓고 '건국을 반대한 임시정부 주석' 김구를 가장 숭앙하는 역사왜곡의 아이러니에 빠진지 오래다. 왜 그럴까? 1948년 3월, 역사상 최초의 자유민주 총선거 (5 · 10)를 앞두고서 벌어진 건국전쟁의 현장을 보자. '유엔감시 총선을 통한 건국'이란 외교독립론에 마침내 성공한 이승만 박사는 김구가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얼마 전까지 유엔의 남한단독정부수립에 적극 동조하던 김구가 하루밤새 돌변하여 "김일성과 통일 협..

[우크라이나 홀로도모르]

[우크라이나 홀로도모르] 우크라이나 곡창지대의 밀 수확 현장. / 로이터 연합뉴스 대기근과 소련 경제 통제 탓에 500만명 이상 굶어 죽어 1922년 강제 합병 후 식량 뺏기고 스탈린에 의해 종자까지 압수되며 1932년 가을부터 餓死 늘어났어요 러시아가 주요 밀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사실상 차단하면서 전 세계 식량난이 더욱 악화하고 있어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곡물 운반 선적이 이동하는 흑해 항로를 봉쇄하면서 이곳을 통과하는 선박의 수가 급감했죠. 전쟁이 계속 되고 세계 식량 위기가 가중되면서 기아 · 빈곤 및 조기 사망이 광범위하게 증가하고 있어요. 유엔세계식량계획 (WFP)에 따르면 현재 2019년보다 2배 이상 많은 3억4500만명이 심각한 식량 불안으로 고통받고 있거나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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