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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4

[성주 (城主)]

[성주 (城主)]    일러스트 = 김성규    성주 (城主) 당신은 성주가 되었다성 하나에 한 사람뿐인그가 되었다사람들은 당신 앞에서 모자를 벗지만그때 웃음판이 멈추기도 한다당신의 고독은 깊어간다 탁월함이 인격인 건 아니고행복이 가치의 지표도 아니다재물은 너무 많아도 안 되고고독은 너무 적어도 안 된다 멀리 보며 전체를 생각하라좋은 꿀의 꿀물을 타서많은 이가 감미롭게 마시게 하라겸허히 기도하라 ㅡ 김남조 (1927 ~ 2023)    김남조 시인은 2020년에 마지막 시집 ‘사람아, 사람아’ 를 펴냈다. 시인의 열아홉 번째 출간 시집이었다. 이 시는 그 시집에 실려 있다. 시인은 시집을 펴내면서 자신에게 시 (詩) 혹은 시심 (詩心)은 “한 덩이의 작은 흙이었으면서 기적처럼 풀씨가 돋아나는 신비를 보여..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일러스트 = 박상훈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되므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녘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ㅡ 김종삼 (1921 ~ 1984) 김종삼 시인이 이 시를 발표한 때는 등단한 지 서른 해 가까이 되었을 때였다. 거의 서른 해 동안 시를 썼지만 시인은 정작 시를 모르고, 시인이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겸손의 말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지만 시행을 따라가며 읽..

[눈보라]

[눈보라] 일러스트 = 박상훈 눈보라 들판에서 눈보라를 만나 눈보라를 보내네 시외버스 가듯 가는 눈보라 한편의 이야기 같은 눈보라 이 넓이여, 펼친 넓이여 누군가의 가슴속 같은 넓이여 헝클어진 사람이 가네 그보다 더 고독한 사람이 가네 그보다 더 기다리는 사람이 가네 눈사람이 가네 눈보라 뒤에 눈보라가 가네 ㅡ 문태준 (1970 ~) ‘눈보라’ 로 이런 시도 쓸 수 있구나. 강한 바람에 눈이 날려 시야가 흐려지고 심할 때는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다. 따뜻한 실내에 앉아, 카페의 유리창 밖에 흩날리는 눈을 바라보는 것은 기분 좋은 낭만이지만, 세찬 눈보라 치는 바깥을 걸어가는 일은 피하고 싶다. 어릴 적에는 눈보라가 두렵다기보다 신기했지만, 지금은 눈보라에 내 몸이 젖는 게 싫어 우산을 펼쳐든다. 그 ..

[구멍]

[구멍] 구멍 현순애 구멍은 생의 출발점이지 여자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 먹고 사람이 되었다지 따뜻하고 아늑한 동똑 끝 고요 속에서 여자를 완성하고 한줄기 폭포수로 쏟아질 때 스스로 펼쳐진 낙하산처럼 우주의 기와 접선했다지 작은 빛에도 반응했을 눈구멍부터 농밀한 밤꽃에도 벌렁거렸을 콧구멍 또, 은밀한 그 구멍까지 엄마를 쏙 빼닮은 여자 오십 고개 넘어 찾아온 폐경 고립의 구멍과 관절에서 부는 바람 소리에 목젖 무너져 내린 의식 꺼진 밤이면 입 벌린 채 드르렁드르렁 집 한 채 흔들고 스스로 흔들다 구멍들 헐거워져 집 무너져 내릴 때면 다시 왔던 길 되짚어 돌아갈 터 구멍은 생의 종착점이지. 사진 출처 : NEWS N BOOK

詩, 좋은 글 ... 202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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