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미군 패트리엇 부대 첫 공개]
탄도미사일 요격 방어시스템인 ‘패트리엇’과 ‘사드’를 운용하는 주한미군 제35방공포여단의 케빈 스톤룩 (맨 왼쪽) 여단장이 지난 20일 경기도 평택 오산기지 35여단 부대에 배치된 패트리엇 발사대 옆에서 대원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패트리엇은 사드와 통합 운영을 하면서 방어 역량이 더 높아졌다. / 김지호 기자
두 조국을 지키는 '3代의 헌신'
할아버지는 6 · 25 카투사 참전
아버지는 복무 후 미국 이민
아들은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미군, 패트리엇 부대 첫 공개···
한국계 장교가 발사 임무 맡아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는 냉엄한 국제사회 현실은 적어도 지금까지 한미 동맹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한미 동맹’ 이 시작된 지 70년, 6 · 25를 통해 씨를 뿌린 동맹은 역사의 시련을 거치며 성장했고 강해졌다. 베트남 · 이라크 ·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함께 싸웠고, 이젠 우크라이나와 자유의 어깨를 겯고 있다. 미국의 원조로 성장한 한국이 미국에서 가장 많은 투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나라가 됐고, 미8군 무대에서 성장한 음악인들은 K팝의 씨를 뿌렸다. 70년 전 두 나라의 진격은 휴전선에서 멈췄지만, 자유와 번영을 향한 한미 동맹의 새로운 진격은 계속되고 있다. 본지는 ‘한미 동맹 70주년-번영을 위한 동행’을 통해 한미 동맹의 과거 · 현재 · 미래를 짚어본다.
지난 20일 경기도 평택 주한 미군 오산 기지의 제35방공포여단. 15 ~ 40㎞의 중 · 저고도 탄도미사일 요격 시스템인 패트리엇의 최신 기종 ‘PAC-3 MSE’ 발사대 수대가 빗속에서도 사방을 겨누고 있었다. 패트리엇은 적 미사일로부터 서울 · 수도권 등 한국 전역을 지키는 하늘 위 ‘강철 지붕’ 이다.
미군은 이날 35방공포여단을 본지에 공개했다. 북한 김정은이 지난 19일 방러 일정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온 바로 다음 날이다. 사드 (THAAD ·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 패트리엇 운용 부대인 35방공포여단이 2017년 사드가 국내에 배치된 이후 부대 내부와 운용 장면을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패트리엇 부대는 북한의 제1 선제 타격 대상 가운데 하나다.
그래픽 = 김현국
미군은 이날 또 다른 ‘전략 자산’ 도 깜짝 공개했다. 케빈 스톤룩 35방공여단장 (대령)은 “주한 미군이 매일 주어진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비결은 한미가 서로 하나됨 (integration)이다. 그 상징과 같은 인물이 여기에 있다” 면서 미 장교 한 명을 등장시켰다. 패트리엇 발사대 뒤에서 전투복 차림의 한국계 미국인 제이컵 강 소위가 걸어 나왔다. 35여단에는 100여 명의 카투사 (KATUSA · 미군 배속 한국 군인)가 근무하는데, 이들뿐 아니라 미국으로 귀화한 한국계 미국인 장병, 한국인 배우자를 둔 미 장교들이 주한 미군에서 한미 군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주한미군 35방공포여단 소속 한국계 미국인 제이컵 강 소위가 지난 20일 오산기지 35여단 부대 건물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6 · 25전쟁에서 카투사로 참전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도 한국 공군 군인이었다. 3대가 한국과 미국이란 두 조국에 군인으로서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 동두천 = 노석조 기자
강 소위는 “주한 미군에 배치된 지 1년 반 정도가 됐다” 면서 “패트리엇 통제실에서 적 미사일 요격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고 했다. 적 미사일이 날아올 경우 통제실에서 레이더로 추적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의 발사 버튼을 누르는 게 그의 임무다. 그는 “2021년 임관했을 때 북한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에 대해 핵 · 미사일 등으로 위협하는 상황을 보고 주한 미군에 근무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면서 “주한 미군 일원으로서 한반도 안보에 기여한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 고 말했다. 강 소위의 할아버지는 6 · 25전쟁에 참전한 최초의 카투사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 공군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3대가 한미 군 소속으로서 지난 70년의 한미 동맹 역사에 함께한 것이다. 강 소위는 어릴 적 부모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미국 국적자가 됐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일반 회사에 다녔지만, 나를 위해 돈을 버는 경제 활동을 넘어서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고 했다. 그러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으로 지금 군복을 입게 된 것” 이라고 했다. 그의 형도 미군 폭발물처리반 (EOD)에서 11년째 근무 중이라고 한다.
패트리엇 170㎞ · 사드 1000㎞ 탐지
통합 운용 후 방어력 · 명중률 상승
"새 방공시스템 추가 도입 앞두고
한미 훈련 수준도 끌어올리겠다"
“어텐 ~ 션, 발사대 이동!” 강 소위 인터뷰가 끝나자 스톤룩 여단장이 패트리엇 발사대를 부대 건물 밖으로 전개 배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점검을 마친 발사대를 제 위치로 옮기는 절차였다. 여단 대원들은 명령이 떨어지자 방탄 헬멧 등 복장을 착용하고 패트리엇 전용 차량과 발사대를 결합해 발사대를 밖으로 이동시켰다. 발사대는 돌도 철도 아닌 듯한 독특한 재질의 장벽으로 둘러싸인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간 공개된 패트리엇의 야전 훈련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스톤룩 여단장은 “패트리엇은 실기동 훈련뿐 아니라 가상 훈련 등 여러 방법을 통해 한국 국민의 생명과 자산을 공중의 위협에서 지키기 위해 주한 미군 공군뿐 아니라 한국군과도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고 말했다.
패트리엇은 냉전 (冷戰) 시기 미국이 옛 소련 (현 러시아) 등 적대 세력의 핵 미사일 · 전략폭격기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개발한 세계 최고 성능의 요격 미사일 시스템이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막는 걸프 전쟁에 투입돼 이라크의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을 명중 요격하며 ‘총알로 총알을 잡는 총’ 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독일, 일본, 네덜란드, 폴란드, 그리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UAE) 등에 배치돼 여러 미 우방국의 ‘강철 지붕’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4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도 패트리엇을 전면 배치했다.
주한 미군에 패트리엇 운용 부대인 35여단이 배치된 것은 2004년부터다. 특히 패트리엇은 2017년 사드가 성주 기지에 배치된 이후 사드와 통합 운용하며 방어 역량을 대폭 키웠다. 패트리엇 레이더의 유효 탐지 거리는 최대 100 ~ 170㎞인데, 사드 레이더는 600 ~ 800㎞ (최대 탐지 거리 약 1000㎞)로 훨씬 넓다. 패트리엇 미사일 체계가 사드 레이더를 활용하면 적 미사일을 좀 더 멀리서 빨리 포착할 수 있어 요격 대응 시간을 벌게 되고 그만큼 명중도 더 수월해진다. 한국 군 고위 관계자는 “사드와 패트리엇이 고고도와 중 · 저고도 방어를 책임지고 있다면, 한국 국방과학연구소 (ADD)가 개발한 천궁-2는 요격 고도 15㎞로 저고도를 맡고 있다” 면서 “내년 ADD가 요격 고도 50 ~ 60㎞인 L-SAM을 개발 완료하면 한미 연합 방공망은 더욱 촘촘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케빈 스톤룩 제35방공포여단장이 지난 20일 오산기지의 패트리엇 발사대 앞에서 35여단 임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지호 기자
스톤룩 여단장은 “35여단은 아직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이미 한국군과 연합 훈련을 하고 있다” 면서 “조만간 더 새로워진 방공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을 계기로 한미 연합 훈련의 수준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계획” 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가을에 한미 연합 미사일 방어 훈련도 준비돼 있다” 면서 “이를 통해 적의 어떤 위협에도 대응할 수 있는 한미 연합 방위 태세 능력을 향상시킬 것” 이라고 말했다.
노석조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3년 9월 26일 자]
"미군부대서 몰래 가져온 재료 넣은 잡탕이 국민음식 될 줄이야"
의정부 부대찌개 원조 '오뎅식당'
오뎅식당 본점과 허기숙 할머니.
"처음엔 술과 어묵 팔던 포장마차
자주 오던 군무원들이 햄 건네며
안주 만들어 달라고 해 첫 요리
처음엔 볶음··· 나중에 국물 넣어"
꿀꿀이죽 · 유엔탕도 비슷한 역사
63년간 3代째 운영 중
"전쟁 후 생겨난 슬픈 역사 있지만
우리 가족에겐 너무 고마운 음식"
한국인의 애호 음식인 ‘부대찌개’ 는 70여 년 전 미군 부대 주변에서 시작됐다. 6 · 25전쟁이 끝난 뒤 인천과 부산, 대구 등 미군이 주둔한 도시에서 이 음식이 팔렸지만 그중에서도 ‘의정부 부대찌개’ 가 가장 유명했다. 당시 캠프 레드클라우드, 캠프 스탠리, 캠프 잭슨 등 미군 부대만 8개가 있던 경기도 의정부시에는 부대찌개 거리까지 생겼다.
‘의정부 부대찌개’ 식당 중에서 1960년 고(故) 허기숙 할머니가 문을 연 ‘오뎅식당’이 원조로 꼽힌다. 이제 오뎅식당은 아들 (김태관 · 69)에 손자 (김민우 · 41)까지 3대째 이어져 직영점 8곳을 둔 연매출 200억원 규모의 요식 기업으로 성장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늘 미군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사셨어요.”
3대째 운영 중인 손자 김민우씨.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 220-58번지 오뎅식당 본점에서 만난 김민우 대표는 “3대가 부대찌개로 먹고살았다” 며 할머니 허기숙씨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금의 본점이 있는 곳은 1960년 허 할머니가 포장마차로 장사를 시작한 바로 그 자리다. 처음엔 ‘오뎅집’ 이라고 불렸는데 이름 그대로 어묵과 술을 파는 포장마차였다고 한다.
당시 의정부에는 미군 부대에 근무하는 군속 (軍屬 · 군무원)이 많아 포장마차 손님 대부분이 군속이었다. 퇴근길 그들은 부대에서 몰래 가지고 나온 햄과 소시지, 베이컨, 통조림 등을 내밀며 “안주 좀 만들어달라” 고 했다. 허 할머니가 그 재료들을 한데 볶아 술안주 메뉴로 만들었는데 국물 없이 볶기만 해 ‘부대볶음’ 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 “밥이랑 먹을 국물 없느냐” 는 단골손님이 하나둘 늘었고, 허 할머니는 부대볶음에 김치 · 고추장 등을 넣어 찌개로 끓여 냈다. 부대찌개의 탄생이었다. 김 대표는 “부대찌개는 미군 부대가 아니었으면 구경도 못 했을 식재료와 김치, 고추장 등이 만났으니 우리나라 최초의 한식 · 양식 퓨전 요리라고 생각한다” 고 했다.
당시 부대찌개는 ‘잡탕’ 에 가까웠다고 한다. 손님들이 갖다 준 식재료가 그날 그날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햄과 소시지, 김치, 두부 등이 똑같이 들어간다. 하지만 당시는 미군 부대 보급 통조림의 종류에 따라 부대찌개의 맛이 달라졌다. 어느 날은 베이컨 대신 칠면조 고기가 들어가기도 했다.
그 당시 한국에는 ‘의정부 부대찌개’ 처럼 미군 부대에서 연유한 비슷한 음식들이 있었다. 인천과 대구 등지에선 미군 부대 잔반을 끓여 만든 음식이 ‘꿀꿀이죽’ ‘유엔탕‘ ‘유엔수프’로 팔렸다. 1955년 3월 19일 자 조선일보에는 ‘꿀꿀이죽을 먹고 지난 15일 김모라는 사람이 즉사한 사건이 발생한 후 경찰 당국에서는 오는 20일부터 시장에서 꿀꿀이죽을 파는 죽장수들을 일제히 취체 (取締) 적발하리라고 한다’ 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지난 2014년 별세한 오뎅식당 설립자 고 (故) 허기숙 할머니가 생전 손님들을 맞아 부대찌개를 조리하고 있는 모습. / 오뎅식당
서울 용산 미군 부대 주변에서 팔리던 ‘존슨탕’도 부대찌개와 비슷하다. 1966년 린든 베인스 존슨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먹어보고 극찬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지금도 존슨탕이라는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는데, 부대찌개와 다른 점은 김치와 라면 사리 대신 치즈를 넣는다고 한다.
포장마차 오뎅식당은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자리에 집을 지었다. 30평 규모의 단층 건물에 절반은 집으로 쓰고, 반은 테이블 5개에 연탄불을 놓고 가게로 사용했다. 손님이 많아지면서 집 부분을 헐어 테이블을 15개까지 늘렸다. 이후 인근에 연면적 150평짜리 3층 별관 건물을 올렸다.
1990년대 들면서 부대찌개를 찾는 사람은 더 늘었다. 오뎅식당 인근에 20여 개 식당이 들어섰고, 부대찌개 골목이 형성됐다. 지금도 12곳의 부대찌개 식당이 운영 중이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미군 보급품 유통 단속이 심해 허 할머니는 수시로 유치장을 들락날락해야 했다. 가족들이 “유치장에 가고 벌금 내고 도대체 남는 게 뭐냐” 며 장사를 그만두자고 했지만 허 할머니는 고집스럽게 장사를 이어갔다고 한다.
김 대표는 “부대찌개는 전쟁과 미군 부대 덕분에 태어난 슬픈 역사를 가진 음식이지만 할머니 입장에서는 자식과 손자들까지 다 키울 수 있었던 고마운 음식” 이라며 “왜 입버릇처럼 ‘미군 덕분에 먹고살았어’ 하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고 했다.
오뎅식당은 의정부 본점과 별관에서만 월평균 스팸 1만2000여 캔, 소시지는 3만7000여 개, 라면 사리는 8600여 개가 소진된다. 2009년 법인을 설립하고, 서울 잠실 · 은평, 부천, 인천, 김포 등에서 직영점 8곳을 운영 중이다. 정직원만 100명이 넘는다. 코로나 사태 전에는 연 매출 200억원을 올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대기업 유통업체에 밀키트를 납품하기 시작했고 편의점에 직접 제품을 출시하는 것도 추진 중이다.
김 대표는 오뎅식당을 세 아들 중 한 명에게 물려줄 계획이다. 그는 “아직 어리지만 아이들이 오뎅식당과 부대찌개를 자랑스러워한다” 고 했다.
의정부 = 김수언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3년 9월 26일 자]
미군 전투식량이던 스팸, 한국이 소비량 세계 2위
한국 스팸은 4㎣로 고기를 써는 미국과 달리 고기를 3㎣로 조각내 햄을 만든다. 1㎣ 차이지만 힘줄이나 연골 등을 더 섬세하게 제거할 수 있어 식감이 좋다. 육함량도 한국 스팸이 다른 나라 스팸에 비해 1.39% 더 높고, 하루 정도 숙성 과정을 거쳐 촉촉하고 탄력있다. / CJ제일제당
1987년 정식출시 첫해 500t 팔려
찰기있는 한국 쌀밥과 '환상궁합'
김치 · 매콤한 찌개와도 잘 어울려
“따끈한 밥에 스팸 한 조각.”
한국인이라면 이 말에 침 꼴깍 삼키지 않는 이 없을 것이다. 미국에 이어 전 세계 2위 소비량을 자랑할 정도로 한국인의 스팸 사랑은 유별나다.
미 육가공업체 호멜이 1937년 출시한 스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전투식량으로 채택되면서 전 세계로 퍼졌고, 우리나라 역시 6 · 25전쟁 당시 미군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됐다. 전쟁이 끝나고 한국에 주둔한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햄과 소시지를 기반으로 만든 ‘부대찌개’ 도 이때 나온 음식이다.
책 ‘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 을 쓴 음식 평론가 윤덕노씨는 “전쟁 중엔 먹을 게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먹을 것에 민감해지고 음식에 탐닉한다” 며 “이 때문에 사람들은 전쟁 중에도 형편없는 식재료로 명품 요리를 만들어낸다” 고 했다.
정작 햄과 소시지를 사용한 부대찌개나 스팸이 널리 유행하게 된 건 1980년대 이후다. 1960 ~ 70년대만 해도 미군 부대에서 나온 음식을 유통하는 건 불법이었기 때문. 특히 스팸은 부유하거나 인맥이 좋아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윤 평론가는 “1980년대 중 · 후반 소시지가 국산화되면서, 서울 명동 등지에도 ‘부대찌개’ 란 이름을 단 집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고 했다. CJ제일제당이 호멜사와 기술 제휴를 맺고 스팸을 본격 생산하기 시작한 때는 1987년이다. CJ제일제당 육가공식품팀 송민석 부장은 “스팸은 출시 첫해에만 500t이 팔리며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며 “밥 반찬으로 제격이었고 휴대와 사용이 간편하고 보존 기간이 길어 소비자 반응이 좋았다” 고 했다. 국내 스팸 매출액은 2018년 4190억원, 2019년 4200억원, 2020년 4500억원, 2021년 4900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가공식품 명절 선물 세트로는 수년째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프리미엄 캔햄으로 자리잡은 '스팸' 은 1990년대부터 명절 시즌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고급스러운 선물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연 매출 60%가 선물세트 시즌에 발생할 정도다. / CJ제일제당
국내 스팸의 이런 높은 인기는 외신들에도 취재 대상이다. 해외에서 스팸은 비상식량 혹은 정크푸드 이미지가 크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스팸은 궁핍한 시기 미군과 함께 한국 식탁의 중심으로 이동하게 됐다” 고 했다.
그러나 스팸의 높은 인기는 과거 절망적인 시기 오랫동안 갈망한 사치품으로서의 가치에만 있지 않다. 윤 평론가는 “스팸은 우리 김치나 찌개에 많이 들어가는 고춧가루의 감칠맛과 잘 어우러지며, 특히 한국의 찰기 있는 쌀밥과 조화를 이룬다” 고 했다.
남정미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3년 9월 26일 자]
주한미군 경제효과 연 90조··· 떠나면 국방비 2배
유사시 美 증원전력 가치만 120조
주한미군을 통한 ‘안보 우산’ 은 한국의 국방비 지출을 낮추고, 국가신용등급을 떠받치는 핵심 요인으로 작동했다.
25일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SIPRI)에 따르면 한국은 464억달러 (약 62조원)로 전 세계에서 아홉째로 많은 국방비를 지출했지만 한국의 국내총생산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은 2.7%로 1995년 이후 2%대를 꾸준히 유지했다. 미국 (3.5%)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분단국가라는 현실상 높은 국방비는 불가피한데, 주한미군의 존재가 이 비용을 그나마 낮춘 것이다. 수치가 없는 북한을 제외하더라도 이스라엘 (4.5%) 같은 영토 분쟁국들과 비교하면 낮았다.
국방대학원에 따르면 주한미군이 보유한 장비들의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17조 ~ 31조원에 달하며 이를 대체하려면 23조 ~ 36조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된다. 주한미군뿐만 아니라 전쟁 발생 시 자동 개입하는 미 증원전력의 가치만 해도 120조원 이상에 달한다.
한국국방연구원에 따르면 주한미군 완전 철수 시 한국의 국방비 부담은 대략 두 배 정도 증가한다.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1975년 철수가 실제로 단행됐다면, 1976년 실제 7327억원이었던 국방비가 1조4000억원을 넘고 매해 국방비가 실제보다 2.2 ~ 2.6배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주한미군 철수 시 국방비 부담 증가에 더해 신용등급 하락 효과까지 고려하면 주한미군 철수 시 발생할 비용은 연간 90조원가량이라고 봤다.
김태준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3년 9월 26일 자]
미군에 손내미는 베트남··· 필리핀은 철수시킨 뒤 후회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미동맹
中 위협 커지자 안보 중요성 절감
폴란드, 미군기지 건걸로 러 견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왼쪽)이 베트남 국빈 방문 이틀째인 지난 11일 (현지시간) 보 반 트엉 국가주석과 회담을 열고 악수하고 있다. / AFP 연합뉴스
미국과 베트남은 1960년대부터 1975년까지 오랜 전쟁을 치른 ‘불구대천의 원수’ 다. 미군 약 6만명, 베트남인 약 200만명이 베트남 전쟁에서 죽었다. 그런 양국이 지난 10일 하노이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외교 관계를 최상위 수준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로 높였다. 미국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은 미군 철수 50년 만에 처음이었다.
남중국해 영토를 둘러싸고 나날이 커지는 중국의 위협이 베트남을 미국에 눈 돌리게 만들었다. 이런 기류를 반영해 지난 6월엔 미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다낭에 입항했다. 다낭은 중국과 영토 분쟁 중인 호앙사군도 (중국명 시사군도)와 가깝다.
베트남이 미국과 안보 파트너십을 구축해 나가자 미국은 대규모 투자와 반도체 등 정보기술 (IT) 지원을 약속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전쟁했던 적과도 안보를 위해 힘을 합치고, 든든한 안보가 경제적 번영의 초석이 되는 국제정치의 단면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동부 최전선인 폴란드에는 지난 3월 미군 영구 주둔 기지가 건설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의 안보가 위협받는 가운데, 약 1만명의 미군이 일시 순환 배치됐던 폴란드는 “러시아의 다음 침공 대상이 우리가 될 수 있다” 며 미군 영구 주둔을 강력하게 요구해 관철시켰다. 사우디아라비아도 미국과 최근 한미동맹에 준하는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방 국가가 공격을 받을 경우 군사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미국이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강력하게 내건 조건인데, 사우디 측은 상호방위협정이 이란이나 다른 무장 파벌들의 잠재적인 공격을 억제하는 역할이 될 것이라 판단한다.
반면 필리핀은 1992년 미군을 철수시킨 후 경제와 안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었다. ‘미군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외국인 투자 공단을 만들면 글로벌 기업이 몰려 온다’ 는 구상이었지만, 안보 리스크가 커진 나라에 투자하는 글로벌 기업은 없었고 경제는 내리막을 탔다. 미군이 사라지자 중국이 스프래틀리군도 (중국명 난사군도) 일부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필리핀 어선에 총격을 가하는 등 횡포를 부리고 있지만 필리핀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양지혜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3년 9월 26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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