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 70년, 번영을 위한 동행

[ <2> 한강 이북 유일한 주한미군 전투부대 르포]

드무2 2023. 12. 22.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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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한강 이북 유일한 주한미군 전투부대 르포]

 

 

 

2023년 9월 12일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에서 '한미 연합 화생방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훈련에는 미국측 미2사단 / 한미연합사단 예하 59화학중대, 스트라이커여단 2-77포병대대와 대한민국측 23화생방대대, 28사단 화생방지원대 장병들이 참가했다. / 남강호 기자

 

 

 

미군, 동두천 210여단 첫 공개

北 남침 땐 처음 저지나설 부대

평택 이전 안하고 최전선 지켜

도발 억지하는 핵심 전략자산

 

 

 

北 남침때 맨먼저 맞설 美부대 “적 미사일 위치 샅샅이 꿰고 있다”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 는 냉엄한 국제사회 현실은 적어도 지금까지 한미 동맹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한미 동맹’ 이 시작된 지 70년, 6 · 25를 통해 씨를 뿌린 동맹은 역사의 시련을 거치며 성장했고 강해졌다. 베트남 · 이라크 ·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함께 싸웠고, 이젠 우크라이나와 자유의 어깨를 걸고 있다. 미국의 원조로 성장한 한국이 미국에서 가장 많은 투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나라가 됐고, 미8군 무대에서 성장한 음악인들은 K팝의 씨를 뿌렸다. 70년 전 두 나라의 진격은 휴전선에서 멈췄지만, 자유와 번영을 향한 한미 동맹의 새로운 진격은 계속되고 있다. 본지는 ‘한미 동맹 70주년-번영을 위한 동행’을 통해 한미 동맹의 과거 · 현재 ·  미래를 짚어본다.

 

 

 

북한 김정은이 러시아 국경을 넘던 지난 12일. 경기도 동두천에선 주한 미군 제210야전포병여단이 M270 MLRS (다연장로켓시스템) 훈련을 하고 있었다. 210여단은 한강 이북에 주둔하는 유일한 미군 전투부대다. 일시에 최전방 북한 장사정포 부대를 초토화할 수 있는 MLRS를 수십 대 운용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6 · 25전쟁, 걸프전쟁 때 참전해 나치 독일, 북한, 중공,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에 맞서 위용을 떨친 명장 부대다.

주한 미군은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을 계기로 210여단 부대와 훈련 장면을 최초로 공개했다. 6 · 25전쟁 정전 (停戰) 직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주둔해온 주한 미군은 한미동맹의 대표적 상징이다. 주둔하는 그 자체만으로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는 핵심 ‘전략 자산’으로 평가된다. 그 가운데서도 비무장지대 (DMZ) 철책 앞에 배치된 210여단은 북한이 남침할 경우 가장 먼저 맞닥뜨릴 ‘인계철선 (引繼鐵線 · Tripwire)’ 부대다.

 

 

 

미군의 대표적인 포병 무기인 MLRS (다연장 로켓 시스템)가 지대지 탄도미사일인 에이태킴스 (ATACMS)를 발사하는 모습. / 주한미군

 

 

 

이날 210여단이 주둔하는 동두천 캠프 케이시 (Casey) 기지 연병장에서는 수십 대의 MLRS 발사대, 지휘통제 장갑 차량이 굉음을 내며 상호 운용 훈련을 펼쳤다. 북한의 선제공격 상황을 가정해 진행됐다. 군 본부에서 원점 타격 지점을 파악해 지휘 통제 차량에 정보를 공유하면 각 지휘 차량이 MLRS 발사 차량에 타격 좌표를 전달해 융단 폭격을 가하는 절차를 익히고 있었다. MLRS는 1발당 수백 개의 자탄이 든 227㎜ 로켓탄을 동시에 12발 발사할 수 있어 ‘강철비’ 로 불린다.

사거리 300㎞의 지대지 탄도미사일 에이태킴스 (ATACMS)도 동시에 2발을 쏠 수 있는데, 이는 갱도에 은폐된 북한의 미사일 발사대도 정밀 타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MLRS 수십 대면 DMZ 인근에 배치된 북한 240㎜ 방사포 (다연장로켓), 170㎜ 자주포 등 포병 부대를 일거에 초토화할 수 있다.

 

 

 

2023년 9월 12일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 내 미2사단 제210포병여단의 M270 MLRS 등 다연장로켓 발사기를 뒤로하고 지휘차량 등이 기동 훈련을 하고 있다. / 남강호 기자

 

 

 

북한은 미군이 지난해 MLRS 사격 훈련만 하면 한미 군을 비방하는 성명을 총참모부 명의로 내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2015년 북한의 DMZ 목함 지뢰 사태 당시 우리 군이 대북 심리전 방송을 재개하자 북한이 적반하장식으로 서부전선 포격 도발을 벌이며 48시간 내 심리전 중지를 요구했는데, 그때 전면에 나선 부대가 210여단이다. 미군은 210여단이 MLRS 장갑 차량을 몰고 경기 파주 통일대교를 통해 최전방으로 이동하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언론에 공개했는데, 이를 본 북한은 갑자기 포격을 멈추고 ‘대화’ 를 제안하더니 이례적으로 ‘유감’ 표명을 했다.

미 육군 2사단 소속인 브렌던 툴란 210여단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막강한 미군 화력 부대가 한국 군과 함께 최전방에 배치된 그 자체만으로도 북한의 무력 도발을 억지하는 효과를 낸다” 면서 “우리는 한국을 겨눈 북한의 미사일 등 공격 지점을 샅샅이 파악하고 있으며, 유사시 즉시 저들의 기지를 초토화할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고 했다. 그러면서 “70년 전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한미가 피 흘렸고 그렇게 한미동맹과 그 상징인 주한 미군이 탄생했듯이 앞으로도 한미는 어떤 최악의 상황에도 같이 헤쳐나갈 것” 이라고 말했다.

 

 

 

그래픽 = 정인성

 

 

 

210여단이 주둔하는 캠프 케이시는 한강 이북에 남은 유일한 미군 전투기지다. 과거 의정부 등 전방 여러 지역에 미군 기지가 설치돼 있었지만 평택 험프리스 기지 확장 건설이 결정되면서 전방의 미군 부대들이 모두 험프리스로 이전했다. 캠프 케이시도 험프리스로 옮겨질 뻔했지만 북한 장사정포 대응 등 임무 중요성 때문에 2014년 동두천에 계속 주둔하는 것으로 계획이 바뀌어 지금까지 최전선을 지키고 있다. 이 기지에는 210여단을 비롯해 미 본토에서 9개월마다 새로 순환 배치되는 부대로 현재 스트라이커 (Stryker) 여단, 핵 · 대량살상무기 (WMD)에 대비하기 위한 화생방대대도 배치돼 있다. ‘신속기동여단’ 으로 불리는 스트라이커 여단은 수십 대의 스트라이커 장갑차 등을 보유하고 있다.

 

 

수백발 자탄 장착된 MLRS로

상대방 장사정포 부대 초토화

 

北, 2015년 서부전선 포격 도발 때

210여단의 전방 이동에 대화 제의

 

툴란 210여단장은

한국 근무만 이번까지 다섯번

11년 전엔 한국 여성과 결혼

 

 

 

이날 케이시 캠프에서는 210여단 훈련과 별도로 북한의 생화학 미사일 공격 등 WMD에 대비하는 한미 연합 훈련도 진행됐다. 미 측에서는 스트라이커 여단, 제23화생방대대, 우리 측에선 국군화생방방호사령부, 육군 28사단 등이 참가했다. 생화학전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열세에 몰린 러시아가 핵 · WMD 사용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국제사회의 대응 과제로 급부상했다. 특히 북한은 공개적으로 핵 · 미사일 위협을 하는 가운데 뒤로는 생화학 무기를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반 쇼트슬리브 화생방대대 59 화학중대장 (대위)는 “화학전은 갈수록 그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면서 “우리는 그 위험에 완벽하게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 고 말했다. 쇼트슬리브 중대장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중동 다수 지역에서 참전 경험이 있는 화학전 전문가라고 한다.

 

 

 

2023년 9월 12일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에서 '한미 연합 화생방 훈련' 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훈련에는 미국측 미2사단 / 한미연합사단 예하 59화학중대, 스트라이커여단 2-77포병대대와 대한민국측 23화생방대대, 28사단 화생방지원대 장병들이 참가했다. / 남강호 기자

 

 

 

미 랜드연구소와 한국 아산정책연구원의 공동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 2500 ~ 5000t의 화학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북한은 화학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야포와 다연장로켓 발사대, 박격포, 공중폭발폭탄, 미사일을 갖췄으며 화학무기 공격이 가능한 무인기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미는 이날 동두천 일대에 북한의 화학 폭탄이 떨어진 상황을 가정해 훈련했다. 한미 장병들은 실제 제독 차량 등을 동원해 오염된 장갑차, 부대원들을 제독하며 안전지대로 이동시키는 연습을 대규모로 펼쳤다.

툴란 210여단장은 “우리는 한국, 그중에서도 전략적 요충지인 동두천의 일원이 돼 한국, 더 나아가 동북아의 안보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면서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한국군과 끊임없이 손발을 맞추며 대비 태세 훈련을 해나갈 것” 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한 미군은 군 훈련뿐 아니라 동두천 등 주둔 지역에서 독거 노인 돌보기, 어린이 영어 교실 등 여러 봉사활동과 대민 지원을 하며 잠깐 왔다 가는 ‘손님’ 이 아니라 같이 힘을 합치는 ‘친구’ 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 했다.

 

 

 

주한미군 제210야전포병여단의 브렌던 툴란 여단장 (대령)이 지난 12일 210여단이 배치된 경기 동두천 캠프 케이시에서 부대 마크 앞에 서 있다. / 남강호 기자

 

 

 

툴란 여단장은 한국 근무만 이번까지 다섯 번째인데 두 번째 근무 당시 한국 여성을 만나 11년 전 결혼해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고 한다. 그는 “한국과 미국은 자유 민주주의 등 공유하는 가치가 많기 때문에 두 나라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삶을 가꿔나가는 것도 상대적으로 수월한 것 같다” 면서 “한미동맹이 안보동맹에서 산업 · 경제뿐 아니라 문화 ·인 적 교류 등 여러 면에서 더욱 발전해나가길 바란다” 고 말했다.

 

/ 동두천 = 노석조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3년 11월 9일 자]

 

 

 

6 · 25 참전국 국방장관 11월 모두 한자리에 모여

 

 

 

연말까지 동맹 70년 행사 풍성

파주엔 웨버 · 싱글러브 추모비

美선 K팝 · 한국요리 문화행사도

 

 

 

한국과 미국은 동맹 70주년을 맞아 연말까지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미국에서 한미동맹 행사에서 축사를 하고, 11월에는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참전국 국방장관이 모두 서울로 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군의날 행사에선 사상 처음으로 미군 전투부대원이 행진을 한다. 한미 양국에서 진행했거나 진행 예정인 기념 행사를 종합하면 역대 최다인 150건이 넘는다.

 

 

 

① 이승만 대통령이 1952년 방한한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당선인을 맞이하는 모습 ②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 ③ 6 · 25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 ④ 6 · 25전쟁에 참전한 제임스 밴 플리트 미 8군 사령관 ⑤ 채명신 베트남 한국군사령관 ⑥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⑦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⑧ 2017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국을 찾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⑨ 1961년 방미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

 

 

 

한국국제교류재단 (KF)과 국제전략문제연구소 (CSIS)는 이달 25일부터 이틀간 미 워싱턴 DC에서 ‘한미전략포럼’ 을 주최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기조 연설을 하고 박진 외교부 장관이 축사 (영상)를 한다. 한미 전문가들이 두루 참석해 ‘한미 동맹의 새로운 70주년’ ‘캠프 데이비드 합의에 따른 한 · 미 · 일 다자 (多者) 협력’ 을 주제로 토론을 벌인다. 26일엔 건군 75주년 국군의날 행사를 기념해 서울 도심 시가 행진을 하는데 사상 처음으로 미군 전투부대원 300여 명이 한국군과 함께 행진한다.

 

 

 

그래픽 = 김성규

 

 

 

다음 달 12일엔 한미동맹재단 · SK그룹이 주도해 파주 평화누리공원에 고 (故) 윌리엄 E 웨버 대령과 존 싱글러브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추모비가 제막된다. 두 사람 모두 6 · 25전쟁 참전 영웅이자 한미 동맹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전쟁에서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은 웨버 대령은 6 · 25전쟁을 미국 내 알리는 데 일생을 바쳤고, 싱글러브 장군은 1977년 지미 카터 대통령의 주한 미군 철수 계획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강제 퇴역당했다. 이 외에도 재단은 7일 미국 애틀랜타, 13일 서울에서 각각 동맹 70주년 기념 콘퍼런스를 진행한다. 빈센트 브룩스 · 커티스 스캐퍼로티 전 주한 미군 사령관 등이 참석하고 한미 우호 증진을 위해 힘쓴 이들에게 ‘웨버상’ ‘아너스상’ 등을 시상한다.

11월엔 서울에서 열리는 ‘제55차 한미안보협의회 (SCM)’ 참석을 위해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방한한다. SCM에선 동맹의 70년 성과를 평가하는 한편 동맹의 국방 분야 미래 구상이 담긴 ‘한미 동맹 국방 비전’ 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는 SCM과 연계해 사상 최초로 ‘한 ·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의’ 를 공동 개최한다. 사실상 6 · 25 참전국 국방장관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자리여서, 자유 · 민주 진영 연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70년 동맹’ 을 주제로 한 기획전을 12월 31일까지 진행하고 있고, 미국 현지에서도 K팝 · 태권도 · 한국 요리 등을 주제로 하는 문화 행사가 연말까지 계속된다.

 

김은중 · 김태준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3년 9월 25일 자]

 

 

 

K팝 오디션처럼··· 패티김·신중현 발굴한 ‘미8군 쇼’

 

 

 

美 심사위원이 가수들 등급 매겨

대중음악 인재 몰린 '꿈의 무대'

 

 

 

미 8군 무대 출신 가수들. 왼쪽부터 현미, 패티김, 조용필, 신중현. / 조선일보 DB

 

 

 

한국 대중음악계가 미8군 무대에서 얻은 가장 큰 수혜는 단연 ‘1세대 음악 영재들의 발굴’ 이다. 현미, 패티김, 신중현, 윤복희, 조용필···. 미8군 무대에 섰던 음악인들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스타로 성장했다. 지금은 연예기획사가 연습생 시스템을 갖추고 영재를 뽑아 스타로 키우지만 1950년대엔 미8군 클럽이 대중음악 인재를 배출하는 유일한 무대였다. 최규성 음악평론가는 “제대로 노래 부를 무대가 없던 당시 미8군 클럽은 아티스트로 대접받는 유일한 공간이었고, 당대 전국의 음악 인재들이 앞다퉈 몰려들었다” 고 말했다.

요즘 같은 치열한 경쟁 오디션 체제를 갖춘 것도 미8군 쇼가 스타 음악인을 많이 배출한 비결이었다. 미8군 쇼 출연 가수들은 분기별로 용산 미국공보원 (USIS)이 주최한 공개 오디션에서 주한미군 측 전문 심사위원들의 눈을 통과해야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심사위원은 대부분 미국 음대를 졸업한 성악 · 기악 전공자들이었다. 노래 실력뿐만 아니라 ‘댄스’ ‘의상’ ‘조명’ ‘무대 매너’ ‘코러스와의 조화’ ‘영어 발음’ 등을 꼼꼼히 따졌다. 이 오디션으로 가수들에겐 AA, A, B, C 등급이 주어졌고 급여도 차등 지급됐다.

장교들이 모이는 ‘오피서스 (Officers) 클럽’ 에선 우아하게 부르는 스탠더드 팝이 인기였다. 현미, 패티김, 최희준 등이 정장과 드레스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하사관 (부사관)용 ‘NCO 클럽’ 은 주로 춤추기 좋은 밴드 음악이나 백인 중심 컨트리 음악이 유행을 이끌었다. ‘한국의 비틀스’ 로 불렸던 키보이스, 포크 장르로 활약한 서수남 등이 이 클럽의 단골 스타였다. 흑인 출신이 많았던 병사용 ‘EM 클럽’ 에선 솔과 록 음악, 알앤드비 등이 대세였다. 미군들 사이에서 ‘재키 신’ 으로 명성을 떨쳤던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노래 ‘봄비’ 의 흥행으로 한국 최초의 솔 가수로 꼽힌 박인수, 조용필이 속했던 그룹 ‘앳킨스’ 와 ‘화이브핑거스’ 등이 병사들을 열광케 했다.

 ‘이시스터즈’ ‘김시스터즈’ ‘펄시스터즈’ 같은 여성 그룹과 ‘코리안키튼즈’ 윤복희가 활약했다. K팝 한류의 원형이 사실상 미8군 쇼에서 태동했던 것이다. 가수 서수남은 “미8군 무대에서 다양한 장르를 경험한 가수들이 이후 한국 음악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고 말했다.

 

 

윤수정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3년 9월25일 자]

 

 

 

“미8군 데뷔 무대서 난생 첫 기립박수··· 노래 인생 ‘꽃밭’ 열렸죠”

 

 

 

정훈희 "미8군 경험이 날 키워"

 

 

 

가수 정훈희가 남편 김태화와 함께 운영하는 부산 라이브 카페에서 포즈를 취했다. 반짝이 의상은 과거 미군 부대 등에서 입었던 화려한 드레스 느낌을 재현한 것으로 그녀가 아끼는 스타일 중 하나다. / 김동환 기자

 

 

 

가수 정훈희 (72)의 노래 인생은 미군에서 듣고 배운 음악이 바탕이 됐다. 아버지 (정근수), 작은아버지 (정근도), 오빠 (정희택)가 모두 미 8군 무대에서 음악 활동을 했다. 남편 (김태화)도 미 8군에서 록밴드 리드 보컬로 활동했다.

아버지는 1950년대 후반 부산에 주둔한 미군 부대 (캠프 하이얼리아 · Camp Hialeah)에서 피아노를 쳤다. 해방 이전 최대 음반사인 빅터 레코드 전속 가수였던 아버지는 어린 딸에게 늘 말했다. “이제는 미국 노래를 불러야 해. 더 큰 세상에서 놀아야 한다.” 한글을 깨칠 무렵 아버지는 딸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대여섯 살 때쯤이었을까? 아버지가 ‘ㄱ’을 써주시면서 ‘이게 기역인데, 기역의 영어 발음은 ‘G’라고 쓴다. 알겠제?’ 이런 식으로 한글과 알파벳을 동시에 배웠어요.”

어린 정훈희도 미국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뛰었다. AFKN (주한미군방송 · American Forces Korean Network)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팝송을 익혔다. “AFKN 라디오에서 최신 미국 인기 가요 방송인 ‘아메리칸 톱 포티 (American Top 40)’ 가 들리면 그렇게 마음이 설레는 거예요. 최신 팝송이 들리는 대로 우리말로 받아 적으며 따라 불렀어요. 아버지가 미군 부대 미국인들한테 원어 가사를 받아주시기도 했고요. 너무 재미있고 신기하니까, 영어로 말하고 쓰는 게 어렵다는 생각을 전혀 안 했어요.”

 

 

 

2023년 9월 16일 부산 기장군 가수 정훈희 씨가 남편 김태화 씨와 함께 운영 중인 라이브까페에서 포즈를 취했다. / 김동환 기자

 

 

 

작은아버지는 미 8군에서 활약한 밴드 마스터였다. 1967년 고교 1년생인 16세 정훈희가 가수로 데뷔할 수 있었던 건 작은아버지 덕분이었다. “작은아버지는 서울 대형 나이트 클럽에서도 밴드 연주를 했어요. 그래서 제가 방학 때 서울 남대문 그랜드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었지요.” 어느 날 작곡가 이봉조가 클럽에 찾아왔다. 작은아버지 친구인 이봉조는 미 8군 무대서 색소폰을 불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이봉조는 정훈희 노래가 끝나자 무대로 달려와 팝송을 불러보라고 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의 주제가 ‘문 리버 (Moon River)’, 가수 패티 페이지 노래 ‘아이 웬트 투 유어 웨딩 (I Went to Your Wedding · 당신의 결혼식에 갔었어요)’ 을 불렀어요.” 노래를 듣고 이봉조가 말했다. “쬐깐한 게 참 노래 잘하네. 영어 발음도 좋고. 니 노래 어디서 배웠노?” 미 8군에서 음악하는 집안의 딸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미군 부대서 군생활을 한 큰오빠 (정희택)는 1970년대 록밴드 히식스의 기타리스트 겸 보컬로 활약했다.

 

 

 

"아빠 · 오빠 · 남편도

미군 클럽서 활약

AFKN으로 팝 공부

 

남편 김태화 등장땐

미국인 환호 · 꿏다발

美軍 '한류' 있었다"

 

 

 

이봉조가 작곡한 노래 ‘안개’ 로 가요계에 데뷔한 정훈희도 미군 무대에 여러 차례 섰다. 정작 첫 미군 무대에 선 때는 시기가 좀 늦었다. 데뷔 후 10년쯤 지난 1977년 군산 미 공군 부대 특설 무대에 초청받았다. 1960년대를 풍미한 백인 듀엣 라이처스 브러더스의 노래 ‘언체인드 멜로디 (Unchained Melody)’ 를 불렀다. “Oh my love, my darling (오 내 사랑, 그대여) I’ve hungered for your touch (당신의 손길이 너무도 그리워요) A long lonely time (길고도 외로운 시간들).”

노래가 끝났는데 일순 침묵이 흘렀다. 이런 무반응은 처음이었다. 혹시 실수라도 한 건 아닐까. 마이크를 잡은 두 손에 땀이 흥건해졌다. “제가 무대에서 긴장 같은 건 잘 안 하거든요. 세계 가요제 무대에도 섰고, 서울 대형 나이트 클럽에서 미군들 앞에서도 노래 많이 했거든. 차라리 야유가 터지면 다행인데 그조차도 없이 조용하니까, 내가 일냈구나 생각했지요.” 그 순간이었다. 조용하던 관객들이 노래가 완전히 끝났다는 걸 확인했는지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튿날 미 8군 신문에 정훈희 기사가 크게 실렸다.

 

 

 

1970년 도쿄 국제 가요제에 데뷔곡 ‘안개’ (1967)로 출전한 정훈희. 톱 10에 올랐다. / KTV

 

 

 

미 8군 무대에서 만났던 선배들도 기억한다. “미 8군 쇼 무대에 섰던 가수 오빠들이나 언니들을 보면 정말 치열하게 살았어요. 요즘 TV에서 아이돌 데뷔 오디션 하지요? 그때도 오디션이 있어서 A, B, C 같은 등급을 매겼어요. 돌아가신 현미 언니를 비롯해, (윤)복희 언니, (윤)항기 오빠, (장)미화 언니 같은 사람들은 정말 인기 스타였어요.”

정훈희는 국제 가요제에서 통하는 가수로 성장했다. 1970년 도쿄 국제 가요제에서 ‘안개’ 로 ‘월드 베스트 10′ 에 입상했다. 1975년과 1978년 칠레 가요제에서는 각각 ‘무인도’ 와 ‘꽃밭에서’ 를 불러 최고 가수상을 품었다. 하지만 정훈희는 “해외 팬들 사이에서 인기는 남편이 먼저였다” 며 웃었다. 남편 김태화는 하드록 그룹 ‘라스트 찬스’ 의 리드 보컬로 미 8군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어느 날 서울 시민회관 공연이 있어 갔는데 미국인들이 바글바글한 거예요. 꽃 들고 환호하며 가수를 기다리는데, 그게 바로 김태화였지. 미 8군 공연을 하니까 미군 가족, 친척, 친구들까지 팬이 된 거죠. 이미 미군 부대에서 한류가 있었던 거죠.”

정훈희는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데뷔곡 ‘안개’가 박찬욱 영화 ‘헤어질 결심’ OST (삽입곡)로 화제가 됐고, 노래 ‘무인도’ 가 최근 영화 ‘밀수’ 에 삽입됐다. 정훈희는 “동양적 정서에 서양 곡조를 더한 노래이기에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힘을 갖는 것 같다” 면서 “가수 정훈희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미군 부대를 통해 배운 음악이었다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최보윤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3년 9월25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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