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재미있는 과학

[열수분출공 (熱水噴出孔)]

드무2 2024. 2. 24.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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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수분출공 (熱水噴出孔)]

 

 

 

 / 그래픽 = 진봉기

 

 

 

300도 물 치솟는 '심해 온천' ··· 금속 비늘 가진 고둥 <비늘발고둥> 살아요

 

 

 

태평양 · 인도양 · 대서양서 300개 발견

소화기관 없는 '2m 관벌레' 도 살아

신종 생물들, 신약 개발에 활용하기도

 

 

 

최초의 생명체가 태어날 때 지구 환경은 어땠을까요? 과학자들은 심해에 있는 열수분출공 (熱水噴出孔) 주변이 지구에 생명이 태어났을 당시 원시 바다 환경과 비슷하다고 추정해요. 열수분출공 주변에서 살고 있는 생물 구조도 원시적이라고 해요. 그래서 과학자들은 열수분출공의 생태계를 연구해 지구에서 생명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비밀을 풀려고 해요. 열수분출공은 무엇이고, 어떻게 깊은 바닷속에 만들어졌을까요?

 

 

2㎞ 아래 심해서 300도 열수 치솟는 '활화산'

바다는 깊숙이 들어갈수록 수온이 점점 낮아져요. 보통 2㎞보다 더 깊은 바닷속을 심해 (深海)라 하는데, 이곳 물은 0도에 가까울 정도로 차가워요. 수온을 올려줄 햇빛이 닿지 않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심해가 전부 차갑기만 한 건 아니에요. 뜨거운 물이 검은색 연기처럼 콸콸 쏟아져 나오는 특이한 환경, 열수분출공도 있어요. 바닷속 온천인 셈이죠.

열수분출공은 깊은 바닷속에서 화산 활동이 일어나 300도 넘는 뜨거운 물이 치솟는 곳 (구멍)을 말해요. 해저 지각 약한 틈 사이로 스며든 바닷물이 마그마로 뜨겁게 데워진 후 다시 솟아나오고, 이때 뜨거운 바닷물에 녹아 있던 금속 성분이 함께 나와 차가운 바닷물에 닿으면 주변에 쌓이면서 굴뚝처럼 생긴 지형물이 서서히 만들어져요. 이것이 열수분출공이에요.

바닷물 속에 녹은 금속 종류에 따라 열수분출공이 내뿜는 뜨거운 물은 검은 연기나 흰 연기처럼 보여요. 이를 각각 '블랙 스모커 (black smoker)' 아니면 '화이트 스모커 (white smoker)' 라 불러요.

보통 지구 대기압에서 물은 100도가 되면 끓어서 수증기로 변하죠. 그런데 수압이 엄청 높은 열수분출공에서는 끓는점이 올라가 300도의 높은 온도에서도 끓지 않아요. 그 때문에 기체가 아닌 액체 상태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거예요. 열수분출공은 1977년 해저 2700m 지점에서 처음 발견됐어요.

수압은 수심이 10m 깊어질 때마다 1기압씩 높아져요. 2㎞ 깊이에서는 200기압까지 올라가죠. 이는 지상에서 느끼는 기압의 200배나 되는 압력이에요. 손바닥에 무게 3톤인 코끼리 약 7마리를 올려놓고 누르는 힘과 같죠. 우리 몸 전체를 이렇게 강하게 누르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우리는 단 1초도 견디지 못하고 죽을 거예요.

 

 

기이한 생명체가 사는 심해 오아시스

사람들은 열수분출공 주변에 생명체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수압 · 수온도 높고, 빛이 닿지 않아 광합성을 할 식물이 없다고 단정했기 때문이에요. 육지에서는 식물이 햇빛 에너지로 광합성을 해 영양분을 만들고, 그런 식물을 다른 동물이 먹어 생태계가 유지되거든요.

물론 심해에 식물은 자라지 않아요. 하지만 열수분출공 주변에는 다양한 생명체가 그 나름대로 적응하며 살고 있어요. 사람 팔뚝만 한 굵기로 2m까지 자라는 소화기관 없는 관벌레가 가장 흔해요. 눈이 없는 새우, 어른 신발만큼 큰 조개, 120도 수온에 살기 때문에 팔팔 끓는 뜨거운 물에 넣어도 익지 않는 폼페이벌레, 황화철과 여러 금속으로 이뤄진 비늘을 가진 비늘발고둥 등을 비롯해 이름 모를 생물들이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죠.

열수분출공 주변 생물은 이처럼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어요. 어떤 동물은 빛 없는 어두운 곳에서 지내다 보니 눈이 퇴화했고, 어떤 종류는 스스로 빛을 내는 기관이 있어서 먹이를 유인하거나 짝짓기 상대를 찾는 데 사용해요. 이렇게 생물이 독자적으로 진화해 생태계를 이루는 환경이 마치 심해 속 오아시스 같죠.

 

 

300도 고온에서 황화수소로 탄수화물 생성

그렇다면 빛 한 자락 없이 깜깜한 곳에서 생물들은 무엇을 먹고 살아갈까요. 이곳에는 박테리아가 바다의 플랑크톤만큼 많아요. 그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공급받으며 다른 생명체들이 살아가죠. 열수분출공에서 펑펑 쏟아지는 물질에는 황화수소가 잔뜩 들어 있어요. 박테리아는 황화수소가 산화할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해 바닷물 속 이산화탄소와 결합시켜 탄수화물을 만들어내요. 탄수화물은 생명체 대부분이 사용하는 영양분이에요.

눈이 퇴화한 새우나 소화기관이 없는 관벌레 등은 박테리아와 공생 관계를 이뤄 탄수화물을 공급받아요. 게나 조개 같은 생물은 아예 박테리아를 먹어서 에너지를 얻어요. 햇빛 에너지를 통한 식물의 광합성 대신 황화수소를 통한 박테리아의 화학 합성으로 열수분출공 주변 생태계가 유지된답니다.

 

 

신소재 · 신약 개발의 희망

현재까지 열수분출공은 태평양 · 인도양 · 대서양에서 300개 이상 발견됐다고 해요. 열수분출공에는 우리가 산업적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많아요. 많은 나라가 열수분출공에서 광물을 개발하는 데 관심을 쏟고 있죠. 이곳에는 금 · 은 같은 귀금속과 구리 · 아연 · 납 등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금속이 많이 쌓여 있거든요.

또 열수분출공 주변 무궁무진한 생물 자원에서 새로운 물질을 추출해 의약품이나 첨단 산업 신소재로 사용하려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미국은 열수분출공에서 발견한 신종 생물에서 항암 물질과 면역 관련 물질 10여 종을 찾아내 신약 개발에 사용했어요. 일본은 신종 생물 효소로 당뇨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죠.

우리나라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팀이 확보한 인도양 열수분출공의 신종 생물을 통해 신약 개발은 물론, 지구 생명체 탄생의 비밀을 연구할 계획입니다.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 · 구성 = 김윤주 기자 (yunj@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11월 21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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