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일 극장 개봉 앞둔 이승만 다큐 '건국전쟁']
1954년 8월 2일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이던 이승만 대통령이 뉴욕 맨해튼 영웅의 거리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는 모습. 영화 '건국전쟁' 의 김덕영 감독이 2023년 6월 미 워싱턴 국립문서기록관리청 (NARA)에서 처음 발굴한 약 45초 분량의 동영상 일부다. / 김덕영 감독 제공
1954년 이승만의 美국빈 방문··· 뉴욕 카퍼레이드 영상 70년 만에 첫 공개
독재자로 폄훼됐던 건국 대통령
자료 발굴 · 인터뷰 통해 재조명
6 · 25 정전 후 이듬해 방미 당시
45초 분량 카퍼레이드 영상 찾아
맥아더 등 영웅에게만 준 특전
미국이 아닌 국가 원수로는 처음
"휴전 협정 후 최대 이익 끌어내···
분단은 스탈린 지령에 따른 것"
1954년 8월 2일 국빈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 중이던 이승만 (1875 ~ 1965) 대통령이 뉴욕 맨해튼에서 ‘영웅 행진’ 카퍼레이드를 하는 동영상이 70년 만에 발굴됐다.
다큐멘터리 영화 전문가인 김덕영 감독은 지난해 6월 미 워싱턴 국립문서기록관리청 (NARA)에서 45초 분량의 이 미공개 자료를 찾아냈다고 11일 밝혔다. 당시 카퍼레이드 장면은 사진 일부가 남아 있지만, 동영상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처음이다. 이 영상은 12일 시사회를 거쳐 내달 1일 극장 개봉하는 영화 ‘건국전쟁’을 통해 일반에 공개된다.
영상은 태극기와 성조기가 꽂힌 오픈카에 탑승한 이승만 대통령이 연도에 모인 환영 군중 사이로 지나가고, 이 대통령이 모자를 벗어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나 답례하는 생생한 장면을 담았다. 밝은 표정의 뉴욕 시민들이 길가와 고층 빌딩에서 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색종이를 뿌리는 모습도 담겼다.
이 카퍼레이드는 뉴욕시의 공식 행사인 ‘영웅 행진’ 으로, 더글러스 맥아더 등 역사에 영웅적인 공헌을 남긴 인사들에 대해서만 벌였던 행사다. 당시는 휴전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이뤄진 다음 해였으며, 외국 원수로는 처음으로 이 행사의 주인공이 된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서 ‘자유의 수호자’ 로서 환영을 받고 있었다.
1954년 8월 2일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이던 이승만 대통령이 뉴욕 맨해튼 영웅의 거리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는 모습. 영화 '건국전쟁' 의 김덕영 감독이 2023년 6월 미 워싱턴 국립문서기록관리청 (NARA)에서 처음 발굴한 약 45초 분량의 동영상 일부다. / 김덕영 감독 제공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는 본지에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한평생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분투하고 공산 전체주의와 대결한 자유의 전사 (freedom fighter)였고, 6 · 25 전쟁 직후 미국은 바로 그런 이승만에게 뉴욕 중심가의 카퍼레이드 특전을 베풀었던 것” 이라고 했다.
휴전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다음 해인 1954년 7월 26일 미국을 방문한 이승만은 28일 상 · 하원 합동회의에선 ‘불굴의 자유 전사’ 로 소개 받은 뒤 “죽음은 서울보다 워싱턴에 더 접근해 오고 있다” 며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연설을 해 33차례 박수를 받았다.
이 카퍼레이드 영상을 담은 영화 ‘건국전쟁’ 은 제작 기간 3년 동안 약 2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100분 분량의 작품으로, 독립과 건국,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립을 위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평생에 걸친 노력을 담았다.
그래픽 = 송윤혜
특히 1953년 이 대통령이 휴전 협정 상황에서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낸 것을 중요한 업적으로 강조했다. 한국은 이 조약으로 주한미군 주둔, 한국군 증강, 8억 달러 경제 원조 등 약소국으로서 강대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얻었고, 사상 유례 없는 장기간의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1954년 8월 2일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이던 이승만 대통령이 뉴욕 맨해튼 영웅의 거리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시민들이 웃는 모습. / 김덕영 감독 제공
영화는 자료와 취재, 인터뷰를 통해 오래도록 ‘독재자’ ‘분단 책임자’ 로 폄훼됐던 이승만 전 대통령을 독립과 건국에 몸 바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 로 재평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1949년 지주들의 반대를 극복하고 성공시킨 농지개혁은 산업화의 초석이 됐다고 평가했다.
또한 ▲이승만의 독립운동과 교육 활동 ▲약자와 인권을 중시한 인권 정책 ▲평화선과 독도 수호 ▲원자력 발전의 기초 수립 등의 중요한 업적을 소개했다. 반면 한반도의 분단은 이미 1945년 8월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과 이후 스탈린의 지령에 의해 이뤄진 것이며 이승만의 정읍 발언과는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6 · 25 때 혼자 도망가고 망명을 계획한 ‘런승만’ 이었다는 비판에 대해선 “시민에게 서울에 남으라는 방송을 한 적이 없으며, 미국 측의 망명 권유를 거절하고 끝까지 대한민국을 지켰다” 고 반박했다.
유석재 기자
다큐 '김일성의 아이들' 을 연출한 김덕영 감독.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의 김일성, 마오쩌둥, 스탈린 전시물을 배경으로 촬영했다. / 김덕영 감독 제공
"이승만, 100년 내다보고 자유민주국가 수립"
''건국전쟁' 각본 · 감독 김덕영
"평생 대한민국 위해 산 인물"
영화 ‘건국전쟁’ 의 각본 · 감독과 편집, 촬영 일부를 맡은 김덕영 (59 · 사진) 감독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공부를 시작한 뒤 큰 반성을 하게 됐고, 그를 비롯한 건국 세대에 대한 죄송함을 영화에 담았다” 고 했다.
― '건국전쟁’ 을 만들게 된 계기는?
“2020년 다큐 ‘김일성의 아이들’ 에서 1950년대 북한이 동유럽 국가들로 보낸 전쟁고아들의 삶을 조명했다. 그때 북한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심지어 1990년대까지도 평양에 ‘이승만 괴뢰도당을 타도하자’ 는 구호가 있었다는 걸 들었다. 왜 그들이 그렇게까지 이승만을 타도하려 했는지 궁금해졌다.”
― 이승만이 오랫동안 부당하게 폄훼됐다는 시각을 영화에 담았는데.
“84학번인 나 역시 대학 시절 ‘독재자’ 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을 파고들어 보니, 100년 앞을 내다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한 한국사의 유일한 인물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 '대한민국 건국’ 은 1948년 이승만에 의해 이뤄졌다고 했는데.
“선언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렉 브레진스키 미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미래의 비전과 안정된 보장 시스템이 존재해야 건국 (建國)이라 할 수 있다’ 고 했는데 바로 이승만이 그걸 해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교육 예산에 전체 예산의 20%를 썼다. 이승만이 깔아 놓은 레일 위에 박정희의 경제 개발이란 기관차가 달린 것이다.”
― 관객들에게 바라고 싶은 점이 있다면.
“이승만 전 대통령은 오랜 세월 동안 좌파들의 선동에 의해 부당한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그 거짓의 선글라스를 벗으면, (울먹이며) 평생을 대한민국만을 위해 살았고 실천했던 한 노인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출처 : 조선일보 2024년 1월 12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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