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학자 양정무 교수가 말하는 2000년 전 폼페이 유물 관람법]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6층 '폼페이 유물전' 전시장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 박상훈 기자
고대 로마인은 숯 넣어 와인 데우는 주전자를 썼다
벽지 대신 장식한 '프레스코 벽화'
향을 넣었던 '걸이식 청동 등잔'
겨울에 와인 데웠던 '사모바르' 등
열정적이고 호화로운 인생 즐겨
우윳빛 거대 대리석 조각상들
인간의 아름다운 곡선을 탐미
괴테도 1787년에 폼페이 방문 후
"이토록 즐거운 재앙이라니" 매료돼
“폼페이의 매력은 작품 안에서 도시의 삶을 통째로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릇과 항아리를 보면 그 안에 담겨 있었을 빵과 와인이, 벽화와 전등에선 폼페이 사람들이 즐겼던 왁자지껄한 파티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거죠.”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6층 ‘폼페이 유물전ㅡ그대, 그곳에 있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미술사학자 양정무 (57)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2000년 전 고대 로마인들의 생생한 삶과 어우러진 폼페이 작품을 한국에서 즐길 기회” 라고 강력 추천했다. ‘한국의 곰브리치’ 라 불리는 그는 이번 전시의 감수를 맡았고, 오디오 가이드도 녹음해 실감나는 해설을 들려준다. 관람객들은 “배우가 정해진 대본을 읽는 일반적인 오디오 가이드와 달리, 입담 좋은 전문가가 그리스 · 로마 신화와 당시 폼페이 생활상까지 풍부하게 설명해주니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다” 는 반응이다.
양 교수는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서 온 이번 출품작 중에서 제가 가장 주목하는 건 프레스코 벽화” 라고 했다. 지방 경제의 중심지였던 폼페이에는 부를 누린 로마인들의 고급 주택이 가득했고, 집의 내부를 신화의 한 장면, 풍경 등을 담은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했다. 그는 “요즘 주택에서 벽지를 쓰는 것처럼 그들은 프레스코 벽화를 썼다. 벽체에다가 얇은 회반죽을 바르고, 채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려넣는 기법” 이라며 “폼페이가 발견되면서 고대 그리스·로마의 회화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비로소 명확히 알게 된 것” 이라고 했다.
그래픽 = 김하경
“우리나라로 치면 강릉보다 작은 도시에 약 2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어요. 화산이 덮치면서 상층부는 날아갔지만, 30m 화산재에 뒤덮여서 나머지는 완벽하게 남아 있었던 거죠. 이 도시는 서기 79년 8월 24일에 그대로 멈춰버린 겁니다.” 그는 “1748년 우연히 발견돼 발굴이 시작됐는데 아직도 3분의 1은 땅속에 묻혀 있다” 며 “‘폼페이학’ 이라는 새로운 학문 체계가 만들어졌을 정도로 놀랄 만한 자료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고 했다.
알고 보면 더 많이 보인다. 양 교수에 따르면, 입구에 놓인 청동 조각상 ‘앉아 있는 헤르메스’ 의 얼굴은 로마제국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얼굴과 흡사하고, 폼페이에서 발견된 대리석 조각상은 대부분 그리스 시대 작품을 로마인들이 다시 제작한 것들이다. 우윳빛 나신 (裸身)이 눈부시게 빛나는 ‘포토스’ 를 가리키며 그는 “몸은 완전히 S (에스)자 곡선으로, 어깨에 두른 망토는 직선으로 떨어지게 대조시켰다.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몸을 보여주는 데 굉장히 열정적이었다” 고 설명했다.
양정무 교수가 '폼페이 유물전' 전시장 입구에 놓인 '앉아 있는 헤르메스' 청동 조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박상훈 기자
독일의 문호 괴테는 1787년 3월 폼페이를 방문한 후 “세상에는 수많은 재앙이 있었지만, 이토록 후세에 즐거움을 가져다준 재앙은 드물 것” 이라고 썼다. 괴테는 특히 아름다운 등잔에 매료돼 “천장에 매달았던 램프가 좌우로 흔들리면 더 즐거웠을 것” 이라 상상했는데, 괴테를 경탄케 한 ‘걸이식 청동 등잔’ 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양 교수는 “연구 결과, 폼페이인들은 등잔에 기름만 넣은 게 아니고 향까지 넣었다. 그 시대에 이미 ‘아로마 세러피’ 를 즐겼던 것” 이라며 “겨울에 와인을 데우는 청동기 ‘사모바르’ 같은 것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인생을 즐겁고 럭셔리하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고 했다.
조선일보사가 한국 · 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이번 전시는 대리석 조각 · 프레스코 벽화 · 청동 조각 · 장신구 · 사람 캐스트 등 127점을 선보인다. 5월 6일까지.
허윤희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4년 1월 23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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