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강원도

[추억의 수학여행 ㅡ 철원여행 (남이섬, 가평레일바이크, 김유정 문학촌포함)] 06

드무2 2024. 6. 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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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수학여행 ㅡ 철원여행 (남이섬, 가평레일바이크, 김유정 문학촌포함)] 06

 

 

 

남이장군 묘 앞 홍살문

 

 

 

남이장군 묘

 

 

 

南怡將軍追慕碑

 

 

 

 

南怡장군추모비

 

멀리 金剛山 萬瀑洞 물과 五臺山 북쪽 골물이 합하여 昭陽江 新淵江이 되어 加平고을 동남쪽으로 흘러내리니 이것이 北漢江이요 맑고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며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합하면서 오랜 세월을 거쳐 오는 사이 한 모래언덕을 이루니 이것이 南怡섬인데 동쪽에는 塞德山 서쪽에는 佛岐山 앞에는 굽이도는 강줄기로 그림같은 산수 속에 휩싸인 아름다운 섬이 어찌 우연히 생긴 것이라 언제부터 南怡섬이라 불렀던지는 문헌상으로 고증할 길 없으나 옛 지도에 南島라 적혀 있음을 보면 오랜 유래가 있음을 알 수 있고 또 이곳에 굳이 분묘가 있어 南怡장군의 무덤이라 전해오는 것도 그의 비참한 최후를 헤아려 보면 그 같은 추정이 가능할 것도 같다. 그러나 역사란 오래지나면 정확한 것이 흐려지기도 하고 아닌 것이 그릇전하기도 하여 뒷 세상에 미혹을 끼치는 수가 많은 법이라

 

 

 

 

내가 여기서 가벼이 단정하려는 것은 아니거니와 다만 옛날부터 그렇게 전하고 믿어온 것만은 그 또한 기이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南怡장군의 본관은 宜寧이요 宜山君 暉의 손자이며 太宗 대왕의 외증손자로서 世宗 二十三년 辛酉 서기 一四四一년에 태어났는데 나면서부터 천품이 뛰어나고 체격이 장대하여 장차 장수의 재목이 될 것을 기약했었고 당시의 재상 權擥 (권람)의 네째 사위가 되었으며 나이 十七세에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니 이는 우리 역사상 참으로 드물게 보는 일이요 그로 인하여 世祖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 그는 이같이 절륜한 용기를 가졌더니 世祖 十三년 서기 一四六七년에 吉州사람 會寧府使 李施愛가 咸鏡道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그 해 八월에 節度使 許悰 등 여러 장수들을 보내어 반역자들을 토평케했을 때 가장 혁혁한 공로를 세운 이가 바로 南怡장군이었고 九월에 鴨綠江 상류지대 建州衛의 女眞族들이 국경을 침범하므로 우리 장수들이 나가 추장 李滿住를 죽이고 그들을 무찔렀는데 그때에도 으뜸 공로를 세운 이가 장군이라 敵愾功臣號 (적개공신호)를 내리고 우리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로 工曹判書와 兵曹判書가 되었었다 그가 오랑캐를 무찌르고 회군하면서 시를 읊었는데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라 하니 번역하면 白頭山 돌은 칼 갈아 없애고 豆滿江 물은 말먹여 말리리 사나이 스무살에 나라 평정 못하면 뒷날 그 누가 대장부라 하리오 이 같은 시를 읊은 영웅이건만 운명이 기구하여 世祖 다음 睿宗이 즉위한 뒤 奸臣 柳子光의 모함을 입어 반역죄로 고문을 받은 끝에 원통하게 처형되면 내 나이 겨우 二十七세라 가석하다 한 말이 王朝實錄에 적혔거니와 때는 서기 一四六八년 十월 二十七일이요 그 같이 죽었으므로 이 섬에 버린듯이 묻혔던지도 모르거니와 그런 것을 따지기보다 여기서 옛 영웅 사모하는 일이야 못할까 보냐 그러므로 五백년 뒤에 와서나마 이 묘역을 정화하고 그 외로운 영혼을 위로해 드리는 것이 우리들로서 할만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더우기 이곳 南怡섬이야말로 十三만 七천여 평이나 되는 넓은 땅에 천연기념물인 망개나무 등 十여 종의 희귀식물들을 비롯하여 二백三十여 종류의 수목들이 절로 나기도 하고 심기도 하여 거의 자연생태에 가까운 숲을 이루어 좋은 교단이 되어 있을 뿐아니라 아름다운 풍경이 마치 한 폭의 산수화같고 공기조차 공해없이 맑아 많은 사람들이 거리의 먼지를 벗어나 끊임없이 찾아오는데라 국토자연을 아끼고 역사 전통을 사랑하는 정신도장이 되기에 적당하므로 정화사업이 뜻있는 일임을 믿고 못내 기뻐하는 바이다

 

南怡장군 돌아가신지 五백九년되는 一九七七년 十월 二十七일

鷺山 李殷相 글을 짓고 一中 金忠顯 글씨를 쓰고

京春觀光開發株式會社 대표 閔丙燾 비를 세우다

 

 

 

 

 

 

 

 

 

 

 

 

 

 

 

 

 

 

 

 

 

남이섬의 대구 골목투어

 

 

 

 

 

 

 

 

 

 

 

 

 

세계인의 관광휴양지 남이섬에서 상상하는 대구 중구 근대 골목길은

문화와 역사의 흔적을 잘 보존하는 대구 중구와 주식회사 남이섬의

관광교류 협약에 따라 조성된 노래비 공원입니다.

이곳에 한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인 박태준 선생의 노래비와 가수 김광석,

그리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의 민족시인 이상화 선생의 시비를 세워

자연과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의 조용한 쉼터로 만들었습니다.

 

 

 

 

 

 

 

 

 

 

 

 

 

 

 

 

 

 

 

청라언덕

박태준이 작곡한 동무생각의 노랫말에 나오는 '청라언덕' 은 대구 중구 동산동에 위치한 작은 언덕으로 푸른 담쟁이 (靑蘿) 덩굴이 휘감겨 있었던 곳이라 하여 청라언덕이라 불렀다. 대구 중구가 고향인 박태준은 계성학교 재학시절 청라언덕을 지나 다니던 흰 백합처럼 청초한 신명학교의 한 여학생을 흠모하였지만, 마음을 전하지 못한 채 바라보기만 하였다. 졸업 후 남쪽 바닷가 마을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박태준은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그때의 추억을 악보에 담았고, 이은상 시인이 그 사연을 듣고 노랫말을 붙임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 동무생각이 탄생하게 되었다. 박태준의 꿈과 추억이 서린 청라언덕은 한국관광의 별,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99곳' 에 선정된 대구 중구 근대골목에서 만날 수 있다. 이 노래비는 대구광역시 중구와 남이섬과의 관광 활성화 상호협력사업의 일환으로 2012년 10월 30일, 이곳에 세워졌다.

 

 

 

 

 

 

장덕 노래비

 

 

 

 

싱어송라이터 '장덕'

여성 싱어송라이터인 장덕은 진미령, 이은하, 양하영 등 많은 가수들에게 주옥같은 곡을 선물했다. 친오빠 장현과 '현이와 덕이' 를 결성해 가수로 활동했고, 영화와 드라마에 출현하는 등 당대를 대표하는 인기스타였다. 1990년 장덕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곡은 많은 가수들에 의해 재조명되며 여전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소녀와 가로등

장덕이 작사 · 작곡한 '소녀와 가로등' 은 1977년 제1회 MBC 서울가요제에 가수 진미령이 부른 곳이다. 당시 대회 '최연소' 입상이라는 영예를 얻었고, 소녀 장덕이 전하는 구슬픈 가삿말은, 대중의 심금을 울리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이 곡은 이선희, 변진섭, 조관우, 장필순, 홍진영 등에 의해 리메이크되었다.

 

 

 

 

 

 

 

박시춘 노래비

 

박시춘 선생 탄생 100주년에 헌정하다

2013년 10월 28일 재단법인 노래의 섬

 

 

 

봄날은 간다 (손로원 작사 / 박시춘 작곡 / 백설희 노래)

 

 

 

작곡가 박시춘 (朴是春 1913. 10. 28 ~ 1996. 6. 30)

본명 박순동. 경남 밀양 출생. '애수의 소야곡' '세상은 요지경' '신라의 달밤' '낭랑 18세' '전우여 잘자라' '청춘고백' '전선야곡' '봄날은 간다' '이별의 부산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등 노래를 통해 시대의 감성을 가장 잘 표현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우리의 전통가락을 접목시켜 가장 한국적인 대중음악을 완성시킨 작곡가인 동시에 1930년대 조선악극단에서 아리랑보이스 멤버로 활동했고 1940 ~ 50년대 JODK (현 KBS) 최초 전속악단 지휘자, 럭키레코드사, 오향영화사를 설립하고 1963년 한국연예협회 초대 이사장을 맡는 등 대중음악계에 기여한 공로로 1982년 우리나라 대중음악인 최초로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을 받았다. 2002년 밀양에 생가가 복원됨과 동시에 박시춘가요제도 개최되었다.

 

 

 

 

 

 

아름다운 노래의 역사

더 밝은 미래를 위하여

한국 노래 박물관 부지를 정합니다.

 

2000. 7. 8 노래박물관 추진위원회

 

 

 

통기타 음악 50년

 

 

 

통기타 음악 50주년

꿈과 낭만

자유를 노래했던 통기타 음악은

청년문화를 이끌며 대중음악사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다

가장 젊고 아름다운 노래의 대명사 포크송

대한민국 통기타음악 50주년을 기념하여

대중음악계의 뜻을 모아 여기 기념비를 세운다

 

2015년 8월 29일 재단법인 노래의섬

 

 

 

 

 

 

 

 

 

 

 

 

 

 

 

류홍쥔 세계민족악기전시관

 

 

 

 

류홍쥔 세계민족악기전시관

2008년 남이섬은 류홍쥔 선생이 수집 · 복원한 악기를 기증받아 류홍쥔 세계민족악기전시관을 설립했다. 정창원 복원 악기와 더불어 세계 각국의 민족 악기 300여 점을 전시해 관람객들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류지움이 위치한 노래박물관은 다양한 공연과 전시와 행사가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이기도 하다. 250석 규모의 다목적 공연장인 매직홀과 대중음악 전시공간인 호반갤러리가 함께하며, 스윙카페 & 베이커리에서는 음료와 간식을 즐길 수 있다.

 

 

 

 

류홍쥔 소개

류홍쥔 세계민족악기전시관을 설립한 류홍쥔은 음악가이자 악기 연구가이다. 그는 중국 가극무극원 수석 연주자로 활동했고, 1980년 일본으로 건너가서는 전통피리 연주와 동양음악 작곡으로 큰 명성을 얻었다. 영화 <마지막황제> OST, NHK다큐멘터리 <실크로드>, NHK드라마 <음양사>와 <성덕태자> 음악을 담당했다. 일본 동대사 정창원에 소장된 고대악기 복원의 총감독을 맡아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복원 악기를 연주하는 악단인 천평악부를 창단해 잊혀진 실크로드 음악의 명맥을 잇고 있다.

 

 

 

 

별 섬을 노래하다展

남이섬과 함께한 스타들을 찾아서

 

남이섬을 다녀간 수많은 스타들이 남기고간 흔적을 통해

다시금 과거를 회상하며, 노래박물관 건립을 위해 힘써온

모든 가요인들을 추억하고자 합니다.

 

1999년 우리나라 노래문화와 대중음악 발전을 위해 국내 뮤지션을 비롯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의 인사들이 발벗고 나섰습니다.

2004년 노래박물관 개관을 시작으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남이섬에서는

매년 600회에 이르는 공연과 다양한 문화행사를 통해

관광객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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