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김구 신화

김구 신화 2. 치하포 살인사건

드무2 2021. 7. 23.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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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신화 2. 치하포 살인사건

 

정안기 前 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2020년 10월 27일 방송

 

 

 

 

 

 

김구의 신화 (2)

 

치하포 살인 강도 사건

 

2020. 10. 27 (화)

 

정안기

 

 

 

 

1. 사건의 역사성

 

 

 

 

 

 

● 1896년 3월 9일 오전 3시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鵄河浦 / 治下浦) 旅店에서 발생한 살인강도 (구타살해, 사체유기, 재물약탈) 사건

 

● 피살자는 일본인 매약상 쓰치다 죠료 土田讓亮 (황주 → 치하포 → 진남포 → 인천항)

 

● 살인범은 황해도 해주 백운방 거주, 자칭 八峯 접주 金昌洙 (21세)

 

● 폭력적 항일 독립 투쟁 최초 훈장!

 

 

 

1. 손충무 (1976), 『상해 임시 정부와 백범 김구』, 범우사.

 

2. 도진순 (1997), 「1895~96년 김구의 연중의병활동과 치하포사건」, 『한국사론』 제38집. 국모 보수!

 

3. 백범김구선생전집편찬위원회 (1999), 《백범김구전집 (3)》 매일신보사.

 

4. 양윤모 (2003), 「백범 김구의 '치하포사건' 관련 기록 검토」, 『고문서 연구』 제22집. 擧事 동기 / 본질 불명!

 

5. 김상구 (2014), 「04. 쓰치다 사건의 진상」, 『김구 청문회 (1)』, 매직하우스. 사실 왜곡 / 분식!

 

6. 손세일 (2015), 「제7장 신화가 된 치하포 사건」 『이승만과 김구』, 조선뉴스프레스. 김구 / 사건의 신화성!

 

 

 

(1) 육필본 (1929) 김 구

國母報讐!

 

 

 

(2) 초간본 (1947) 이광수

치하포 사건!

 

 

 

(3) 주해본 (2002) 도진순

복수 의거!

 

 

 

2. 사건 연보

 

● 3/8 김창수 외 3명, 용강 - 치하포, 쓰치다 외 1명 (통역, 임학수), 황주 십이포 - 치하포, 조응두 나룻배 용선

● 3/9 치하포 旅店 (李化甫), 쓰치다 죠료土田讓亮 피살

● 3/12 통역 임학수 평양착 보고

● 3/15 平原篤武 경부, 현장 출동 및 증거 수집

● 3/31 小村壽太郞 공사, 범인 체포 / 의법 처단 요구

● 4/6 인천 영사관 대리 荻原守一 외무성 보고

● 4/19 안악군수, 해주부 참서관 김효익, 범인 金昌洙

● 6/21 해주부 김창수 체포 및 압송

● 6/22 해주부 李化甫 및 집강 오룡점 체포 및 압송

●  6/27 해주부 참서관 김효익, 初招 / 보고, 사건 全然不知!

● 8/13 인천 감리서 압송

● 8/31 제1차 심문

● 9/5 제2차 심문

● 9/10 제3차 심문

● 9/12 인천 영사관 대리 荻原守一, 살해자 처벌 요청

● 9/13 인천감리서, 욉 / 법부, 의법처리 요청서

● 9/22 《독립신문》, 치하포 강도살인 사건 보도

● 10/2 인천감리서, 주막집 주인 이화보 무죄방면

● 10/3 인천감리서, 강도 살인 金昌洙 처결 훈령 대기

● 10/22 법부대신 한규설, 金昌洙 교수형 上奏

● 11/7 《독립신문》, 강도 살인범 金昌洙 교수형 奏請

● 1898/3/19 탈옥(23세), 동료 4명 (인신매매범 등)

● 1898/4 부친 김순영 투옥

● 1899/3 부친 김순영 석방

● 1899/4/29 金昌洙 = 마곡사 圓宗 스님, 양친과 재회

● 1905/3/15 한국정부 유가족 배상금 3,779원 지급

 

 

 

3. 치하포의 뱃길

 

 

 

최근 황해도 안악군 지도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주변

 

 

 

1890년대 황해도 안악군 지도

 

 

 

4. 살인의 추억

 

 

 

■ 아침식사가 시작되어 가운뎃방과 윗방까지 밥상이 들어왔다. 그때 가운뎃방에는 단발을 하고 한복을 입은 사람 한 명이 같이 낮은 나그네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성은 정씨라 하고 장연에 산다고 하는데, 말투는 장연 말이 아니고 경성말이었다. ······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왜놈이었다. ······ 흰 두루마기 밑으로 칼집이 보였다.

 

■ 혹시 저 자가 우리 국모를 시해한 미우라가 아닐까? 경성에서 일어난 분란 때문에 도망하여 당분간 숨으려는 것은 아닌가? 만일 미우라가 아니더라도 미우라의 공범일 것 같다. 칼을 차고 숨어다니는 왜인이 우리 국가와 민족의 독버섯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내가 저놈 한 명을 죽여서라도 국가의 치욕을 씻어 보리라.

 

■ 아랫방에 먼저 도착하여 제일착으로 밥상을 받은 사람이 숟가락질을 시작했다. ······ 나중에 밥상을 받은 나는 네댓 숟갈로 한 그릇 밥을 다 먹어치웠다. 일어서서 주인을 부르니 "다름 아니라 내가 오늘 700여 리나 되는 산길을 걸어서 넘어가야 하는데, 아침을 더 먹고 가야겠으니 밥 일곱 상(7인분)만 더 차려다 주시오."

 

 

 

 

 

 

■ 왜놈은 별로 주의하는 빛도 없이 식사를 마치고 중문 밖에 서서 문기둥을 의지하고 방안을 들여다보며 총각아이가 밥값 계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크게 호령하며 그 왜놈을 발길로 차서 거의 한 길이나 되는 계단 밑으로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바로 쫓아 내려가서 놈의 목을 힘껏 밟았다.

 

■ 내 발에 채이고 밟혔던 왜놈이 새벽 달빛에 칼빛을 번쩍이며 달려들었다. ······ 발길로 왜놈의 옆구리를 차서 거꾸러뜨리고 칼 잡은 손목을 힘껏 밟으니 칼이 저절로 땅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그 왜놈을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점점이 난도질했다. 아직 2월 날씨라 마당은 빙판이었는데, 피가 샘솟듯 넘쳐서 마당으로 흘러내렸다.

 

■ 나는 손으로 왜놈의 피를 움켜 마시고, 그 피를 얼굴에 바르고, 피가 떨어지는 칼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가 호통을 쳤다. ······ 이러는 가운데 주인 이화보가 왔다. 그는 감히 방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방 바깥에 엎드려서 빌었다. "소인이 눈은 있지만 눈동자가 없어 장군님을 멸시하였으니, 그 죄 죽어도 여한은 없습니다."

 

 

 

■ 이화보 밥 일곱 그릇을 한 상에 놓고 ······ 큰 양푼 한 개를 청하여 밥과 반찬을 한 군데에다 붓고 ······ 숟가락 두 개를 포개 들고서 밥 한 덩이가 사발통만큼씩 되게 밥을 떠먹었다. ······ 두어 그릇 분량을 먹다가 숟갈을 던지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늘은 먹고 싶었던 원수의 피를 많이 먹었더니 밥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 뱃사람들에게 명하여 왜놈의 소지품 전부를 가지고 오도록 했다. ······ 그 왜인은 쓰치다(土田讓亮)라는 자였고 직위는 육군 중위였다. 가진 돈이 엽전 800냥 남짓 되었다. 그 돈으로 뱃삯을 지불하고, 이화보를 시켜 동네의 동장을 불러오라 했다. ······ "소인, 명색이 동장이올시다." ······ 동네의 극빈한 집에 그 나머지 돈을 모두 나눠주라고 명령했다.

 

■ (이화보) "왜놈의 시체는 어찌하오리까?" 하고 물으므로 ······ "왜놈들은 우리 조선의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생물들의 원수니, 바다 속에 던져서 물고기와 자라들까지 즐겁게 뜯어먹도록 하라." 그런 다음 ······ 왜놈 죽인 이유를 "국모보수(國母報讐)의 목적으로 이 왜인을 죽이노라"고 밝히고 ······ 길거리 벽에 붙였다. ······ "안악 군수에게 사건의 전말을 보고하라. 나는 내 집으로 돌아가서 연락을 기다리겠다." (전체 215 / 24쪽 분량!)

 

 

 

5. 살륙의 실상

 

 

 

『仁川荻原事務代理發信原外務次官宛公信要旨日本外務省』 1896. 4. 6

(日本 外務省, 『外務省 警察史 : 韓國丿部』, 『韓國警察史』 2. 고려서림)

 

 

 

『報告 第2號 : 海州府 觀察使署理 海州府 參書官 金孝益이 外部大臣께 1896. 4. 19

(奎章閣 no. 17986, 外部 編, 『黃海遺去來案』 제1책)

 

 

 

건양 원년 6월 27일 해주 백운면 김창수 21세 供案

 

본인 (김창수)은 지난 계사년 (1893년) 동학에 입도해 八峯 접주라 칭하고 도당 천여 명을 모아서 도처에서 노략질을 한 바 있습니다. 갑오년 (1894년) 12월 문화 동산평에서 일본인의 積置한 미곡 150석을 탈취해서 40석은 일행들이 유용했고, 나머지 110석은 문화접주 李東燁에게 탈취당한 적이 잇습니다. 그 밖에도 해주검단방도락지 朴泓錫이 積置한 正租 200석을 탈취하여 송화접주 朴元仲과 分食하였다. 또한 石潭 李참판집에서 250 냥을 討索한 일이 있습니다.

 

지명수배자 + 치하포 강도살인

 

 

 

6. 체포, 심문, 처결

 

 

 

용의자 김창수의 심문조서

(8월 31일, 9월 5일, 9월 10일)

 

 

 

 

 

 

 

피의자 供招

구분 제1招 제2招 제3招
김창수 이화보 김창수 이화보 김창수
동행자
사건 참여
용강-안악-평양
동행 3명
재물 운반 등
본인 외 4명
행인 13명
평양, 조우
동행 3명 도주
사후 처리
김구 외 3명
동행자 협조
김구 주도
동행 3명
현장 마무리
살해 동기
의병관계
先給食 / 일본인
不共戴天之讐!
  범행 후
좌통령 자칭
범행 후
좌통령 명함
國母報讐!
살해방법
사용 흉기
발 / 손 타살
投之江水
김구
난타 / 타살
初以石打
更以木擊
도주 / 추격
以木連打
흉기 어두워
판별 불가능
발 / 손
칼 / 저항
打石
재물 강탈
처리 방법
800金 任置
어음 수취
동행 3명 路資
환도탈취
75냥 나귀 구입
  殺後貧財
엽전 약 100량
동행자 노자
75냥 나귀 구입
800냥 無任置
  800냥 任置
어음 수취
동행 3명 노자
기타사항
특기사항
병행 후
단기 재령
5월 귀가
쓰치다 외
통역 1명
뱃사람 1명
    7대 독자
심문자 인천항 경무관
金順根
인천항 경무관
김순근
기초 서기
박영래
인천항 재판소
판사 이재정
일본영사관
경부神谷淸

 

 

 

 

7. 사건의 재구성

 

 

 

土田讓亮은 일본군 육군 중위?

월일 직책 관료 호칭
4/6 해주부 참사관 김효익 일본인
5/1 외부대신 이완용 일본인
5/1 내부대신 박정양 일본인
6/18 해주부 참사관 김효익 長崎縣 土田讓亮
7/12 내부대신 박정양 일본인
8/31 - 김창수 단발 / 帶劍 / 일본인
8/31 - 이화보 1招, 일본인 土田讓亮
9/22 <독립신문> - 일본 장사꾼 土田讓亮
9/12 인천감리서 감리 이재정 일본상인 土田讓亮
10/22 법부대신 한규설 일본상인 土田讓亮
11/16 <독립신문> - 일본상인 土田讓亮

 

 

 

國母報讐였다?

월일 직책 관료 호칭
4/19 해주부 참사관 김효익 소위 팔봉접주
5/1 외부대신 이완용 비도 / 匪徒
5/1 내부대신 박정양 소위 팔봉접주
6/18 해주부 참사관 김효익 비도
6/27 해주부 참사관 김효익 해범 / 該犯
6/30 해주부 참사관 김효익 자칭 팔봉접주
7/9 외부대신 이완용 해범
8/31 치하포 주막 이화보 비도
10/22 법부대신 한규설 강도죄인
11/16 <독립신문> - 강도

 

 

 

 

사건의 진상

 

1. 살해 동기 : 재물 탐심

 

2. 살해 방법 : 구타 / 도주 / 추격 / 타살

 

3. 사체 처리 : 投江遺棄

 

4. 재물 규모 : 약 1,000냥, 환도

 

5. 재물 처리 : 나귀 구입 75냥, 동행자와 분배 125냥, 이화보 任置 800냥

 

 

 

팩션(faction)

 

● 미우라의 공범일 것이다.

● 왜인이 우리 국가와 민족의 독버섯

● 왜놈이 칼을 빼들고 달려들었다.

● 왜놈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점점이 난도질했다.

● 왜놈의 피를 움켜 마시고, 얼굴에 발랐다.

● 쓰치다 (土田讓亮)는 육군 중위였다.

● 가진 돈이 엽전 800냥 남짓 되었다.

● 극빈한 집에 나머지 돈을 모두 나눠주라.

● 국모보수(國母報讐)의 목적으로 왜놈을 죽였다.

● 안악군수에게 사건의 전말을 보고하라.

● 내 집으로 돌아가서 연락을 기다리겠다.

 

등등!

 

 

 

배상 및 규모

 

● 1896년 5월 小村공사 외무대신 보고 문건

● 1895년 10월~1896년 2월, 피살자 43명, 부상 및 피학대자 19명, 합계 62명

● 어민(조난자) 19명 電信工 9명, 상인 7명, 군속 3명, 측량수 2명, 역부 1명, 촉탁 1명, 의사 1명

● 배상대상, 피살자 29명 (상인 / 여행자), 부상자 14명

● 배상액, 피살자 1인당 5,000원, 합계 14만 엔, 부상장 합계 6,000원

● 조선정부 배상 총액, 14만 6,000원

 

■ 일본인 임금, 일당 2원, 1원 10만 원, 현재 가치 146억 원, 쓰치다 유족 보상금 약 5억 원 상당.

■ 1905년 청구액 25% 삭감, 18만 3,750원 배상, 내탕금

■ 쓰치다 유가족 보상액은 3,779원

 

 

 

8. 코드네임 kill-9

 

 

 

(1)

(2)

(3)

(4)

(5)

(6)

(7)

(8)

(9)

(10)

(11) kill-9

 

 

 

1. 치하포 살인강도 사건!

 

2. 수호지 / 무협지의 정신세계!

 

3. 영웅호걸 / 상놈의 살인본색!

 

4. 임시정부 주석, 테러와 폭력!

 

5. 《백범일지》, 청소년 위해도서

 

 

 

 

 

 

 

https://www.youtube.com/watch?v=i75N2_Z9q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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