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김구 신화

김구 신화 3 . 불세출의 혁명가, 김립의 암살

드무2 2021. 7. 26.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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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신화 3 . 불세출의 혁명가, 김립의 암살

 

 

 

정안기 前 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2020. 11. 02 방송

 

 

 

 

 

 

김구의 신화 (3)

 

불세출의 혁명가, 김립의 암살

 

- 그는 공금을 횡령한 파렴치범인가 -

 

2020. 11. 11 (수)

 

정안기

 

 

 

 

 

 

 

 

 

1. 김립은 누구인가

 

 

 

개요

 

● 1922년 2월 8일 (수) 오후 1시, 상하이 북쪽 중국인 거주지역 閘北 寶通路 철로변, 총살 사건 발생

 

● 철로변 30~40대 중년 남성 4명 (김립, 김철수, 유진희, 김하구), 정체불명 청년 4명 출현, 40대 신사 1명 포위, 12~13발 총격

 

● 피살자는 귀화 한인 양춘산(42세, 楊春山), 본명 김립(金立), 상해임시정부 거물 (국무원 비서장)

 

 

 

연구

 

1. 반병률 (2005), 「김립과 항일민족운동」, 『한국근현대사연구』 제32집.

 

2. 반병률 (2006), 「잊혀진 비극적 민족 혁명가, 김립」 『내일을 여는 역사』 제26호.

 

3. 김영진 (2007), 「윤해저격사건으로 본 상해지역 민족운동 내부의 갈등」, 『사림』 제29호.

 

4. 임경석 (2008),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 역사비평사.

 

5. 임경석 (2012. 11. 19), 「독립운동가 '김립' vs 그를 비난한 '김구'」, 『서울신문』.

 

6. 이성구 (2019), 「백범은 탁월한 독립운동가 김립을 왜 죽였을까?」, 『현장과 광장』 제1호.

 

7. 박종효 (2019), 「레닌이 임시정부에 준 자금의 행방」, 『월간조선』 2019년 5월호.

 

8. 허성환 (2019. 3. 19), 「한일독립지사에게 죽임 당한 항일독립지사」, 『오마이뉴스』.

 

 

 

이력

 

● 1880년 함북 명천 출생, 본명 김익용 (金翼瑢)

● 1910년 2월 보성전문 졸업 / 서북학회 참여

● 1910년 4월 북간도 '간민교육회' / 연해주 '성명회' 결성

● 1911년 6월 연길현 '길동기독학당' / 연해주 권업회 결성

● 1912년 이동휘와 독립군 양성의 '광성학교' 설립

● 1913년 북간도 간민회 / 왕청현 나자구 '동림군관학교' 창설

● 1916년 4월 독일 스파이 혐의 / 러시아 당국 체포 / 구금

● 1917년 5월 러시아 혁명 발발 석방 / 하바롭스크 문덕중학 설립

● 1918년 4월 '한인사회당' 창당, 한인적위대 400명 결성 / 참전

● 1919년 6월 '한인사회당' 상해임정 승인, 11월 국무원 비서장

● 1920년 9월 국무원 비서장 사퇴, 11월 12만 루블 상해 운반

● 1921년 5월 '한인사회당 + 사회혁명당' 등 '고려공산당' 창립

● 1921년 11월 임정특사 한형권 20만 루블 상해 운반

● 1922년 1월 상해임정, 이동휘 등 포격문 발표, 2월 김립 암살

 

 

 

김립 (1908), <今日 吾人의 國家에 대한 義務 及 權利> 《西北學會月報》 제1권 제1호.

 

 

 

 

1920년경 상해, 김립과 그의 동료들, 앞줄 오른쪽 끝이 김립, 그 왼쪽부터 모스크바 외교의 주역 박진순, 임시정부 국무총리이자 한인사회당 당수 이동휘ㅡ 신원미상, 뒷줄 왼쪽부터 모스크바 자금 결산책임자 김철수, 역사가 계봉우, 신원미상

 

 

 

평가

 

● 1919년 일본 기밀문서, "한문과 법률에 능하고 排日鮮人 가운데 재주와 학식이 제일류의 인물" / 조선공산당 수령, 김규면 수기, "한인사회당 창립자의 한 사람 / 한인 적위군 조직자!" 한인사회당 동지 / 역사가 계봉우 증언, "(정치적 수완) 상해 정계에서 그를 능가할 인물이 없었다!" 춘원 이광수 회고, "책사요··· 소련 정부와 처음으로 연락을 지은 인물!"

 

● 정치노선 (1), 미국과 연대 중시 이승만 / 안창호 세력과 대립, 외교독립론 = 독립 기약 곤란 = 신생 '소비에트 러시아와 연대한 부장 독립 투쟁 노선 = 임시정부가 나아갈 길!

 

● 정치노선 (2), 이시파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과도 갈등, 한국 혁명은 식민지 상태 극복 = 민족 혁명 우선! 그래서 부르주아 혁명 세력과의 연대 가능, 이시파 = 러시아 / 프롤레타리아 혁명 우선, 부르주아 혁명 세력과 연대 불가능!

 

 

 

 

 

 

2. 흉폭한 경무국장

 

 

 

경무국장 취임

 

● 나는 내무총장인 도산 안창호 선생을 보고 정부의 문지기를 시켜 달라고 청하였다··· "나는 일찍이 본국에서 교육사업을 할 때 어느 곳에서 순사 시험과목을 보고 집에 가서 혼자 시험을 쳐서 합격하지 못한 사실이 있다" ··· "백범 같은 이가 우리 정부청사를 수호하는 것이 적당하니 내일 국무회의에 제출하겠다" 하여, 나는 마음 속으로 매우 기뻐하였다.

 

● 다음 날 아침, 도산은 뜻밖에도 나에게 경무국장 임명장을 주며 취임하여 근무할 것을 권하였다. "순사의 자격에도 못 미치는 내가 경무국장의 직책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하며 굳이 사양하였다··· "이미 임명된 것이니 사양하지 말고 공무를 집행하라"고 강권하였다. 결국 나는 경무국장에 취임하였다.

 

●나는 5년 동안 경무국장으로서 신문관, 검사, 판사뿐만 아니라 형집행까지도 담당하였다. 범죄자 처결하는 것을 요약하면, 말로 타이르는 것 아니면 사형이었다. 임무는 왜적의 정탐 활동을 방지하고, 독립운동자의 투항 여부를 정찰하여, 왜의  마수가 어느 방면으로 침입하는가를 살피는 것이었다. 정복과 사복 경호원 20여 명을 임명하여 일을 수행하였다.

 

 

 

중요 배일파 선인의 경력

 

이승만, 이동휘, 안창호, 여운형, 손정도, 현순, 박용만, 신규식, 김규식, 이광수, 신채호, 최근우, 김립, 김구, 장건상, 정인과, 김철, 유정근, 김성근, 박은식, 조동호, 신상완, 유동열, 김덕, 도인권, 문창범, 김진무, 이계홍, 고일창, 노백린

 

합계 30명!

 

 

 

번역

 

황해도 출신으로 閔妃사건에 분개해서 소위 國母報讐의 소요가 발생했을 때 일본 장교(소위라고 함)를 살해한 관계자로 형벌을 받은 일이 있다. 또한, 테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사건 관련자 120여 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처분을 받았다. 그밖에도 황해도 金洪亮 강도사건에도 관련되어 전후 3회의 걸쳐 십 수년의 감옥생활을 했다.

성질이 兇惡하며 露領 방면을 방랑 / 배회하다가 1919년 여름 상해에 도착해서 임시정부 경무국장에 취임했다. 상해 거주 조선인 가운데 기밀 누설의 의심이 가는 사람에 대해서는 兇暴한 수단으로 威脅한다. 일본경시청이 밀파한 경부보 선우갑에 대해서도 危害를 가했으며, 기타 한 두 명에 대해서도 거의 같은 수법으로 脅迫했다. 기밀누설의 방지를 꾀한다는 이유를 내걸었기 때문에 일부 조선인들은 金龜의 경력과 실제 행위를 보고 恐怖에 떨고 있다.

 

 

 

3. 《백범일지》 내용

 

 

 

《안창호 일기》

(1920년 7월 8일자)

 

김구(金九) 군(君)이 래방(來訪) 왈(曰) 철혈단(鐵血團)이 금일(今日)부터 시(始)하여 정부직원(政府職員)을 노상(路上)에서 봉변(逢變)을 준다하니 주의(主意)하라고, 차배(此輩)를 일제히 체포(逮捕)하여 엄치(嚴治) 함이 여하(如何)하냐 하므로, 여(余) 왈(曰) 여차(如此) 전설(傳說)을 신지역난(信之亦難)이오, 설혹 사실(事實)이라 하여도 무마책(撫摩策)을 용(用)할지니 엄혹수단(嚴酷手段)을 행(行)한다면 더욱이 (害)로울 뿐이라 하다.

 

 

 

● 이씨(이동휘)가 밀파한 한형권은 단신으로 시베리아에 도착하여 러시아 관리에게 러시아에 온 사명을 전달하니··· 러시아 정부에서 한인 동포를 동원하니, 한형권이 도착하는 정거장마다 한인 남녀들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임시정부 대표를 열렬히 환영하였다.

 

● 한(한형권)이 모스크바에 도착하니 러시아 최고 지도자인 레닌 씨가 친히 맞이하며, 독립자금은 얼마나 필요로 하느냐고 물었다. 한은··· 200만 루블을 요구하였다. 레닌은··· 반문하였다. "일본을 대항하는데 200만으로 될 수 있는가?" 한은··· 동포들이 자금을 조달한다고 답변하였다.

 

● 그러자 레닌은 "자기 민족이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고, 즉시 러시아 외교부에 명령하여 현금으로 200만 루블을 한형권에게 주었다. 외교부는··· 시험적으로 제1차 40만 루블만을 한형권에게 주었다."

 

● 한(한형권)이 시베리아에 도착할 시기에 이동휘는 비서장 김립(金立)을 밀파해, 금괴를 임시정부에 바치지 않고 중간에서 빼돌렸다. 김립은 금괴로 북간도 식구들을 위해 토지를 매입했고, 한인, 중국인, 인도인 공산주의자들에게 얼마씩 지급하였다. 그는 상해에 비밀리에 잠복하여 광동 여자를 첩으로 삼아 향락하는 것이었다.

 

● 임시정부에서 이동휘에게 죄를 물으니, 이씨는 총리직을 사직하고 러시아로 도주하였다. 힌형권은··· 다시 20만 루블을 가지고 상해에 잠입하여 공산당들에게 금력을 풀어 이른바 국민대표대회를 소집하였다.

 

● 공금횡령범 김립은 "오면직, 노종균 등 청년들에게 총살 당하니 사람들이 통쾌하고 생각하였다." 임시정부는 한형권을 파면하고 안공근을 러시아 대표로 파송하였다. 그러나 별효과 없이 러시아와의 외교관계를 끝내 단절되었다.

 

 

 

죄목

 

1. 이동휘, 김립, 한형권 등은 러시아가 상해 임정을 지원하는 공금을 횡령했다.

 

2. 김립은 자신의 식구들은 위해 북간도에 토지를 매입했다.

 

3. 김립은 한인 및 중국인도 공산주의자들에게 자금을 지원했다.

 

4. 김립은 광동 여자를 첩으로 삼아 향락을 일삼았다.

 

 

 

포고 제1호 (1922 / 1 / 26)

 

1.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는 러시아가 우리 정부에 증여한 거금을 김립으로 하여금 중도에 횡령케 하고··· 정부의 파멸을 도모한 죄가 있다.

 

2. 군무차장을 지낸 김의선은 변심해 적에게 투항하는 죄를 범했다. 조선총독부와 비밍히 연락해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조선 내지로 도주해 버렸던 것이다.

 

3. 내각 비서장을 지낸 김립은 이동휘 국무총리와 결탁해 국가의 공금을 횡령하고, 자기 개인 주머니를 불리며, 같은 부류를 모아 간교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

 

 

 

《The North-China Herald》 1922 / 2 / 11

 

외국인 복장 (중국 국적자)의 한인이 철도를 향해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러 명(2~3명)이 그 사람의 앞을 가로막고 그의 머리와 몸 여러 군데에 여러 발을 발사했다. 암살범들은 흩어져 급히 부근 여러 골목길로 도망쳤다. 그의 시체는··· 오후 늦게야 중국 경찰 당국이 치웠다. 피살자는 양춘산(수년 전 귀화)이라는 한인이다. 그는 상업인쇄공장과 가까운 파오산壇 가옥에 홀로 살았다. 그의 가족은 갈림에 살고 있다. 그는 혁명적 성향의 인물이며, 한국 독립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조계지로 향하던 와중에 치명적인 총탄 7발(?)을 머리와 몸에 맞았다.

 

 

 

《독립신문》 1922 / 2 /20

 

상해 중국조계 보통로 이백사로 어떤 중국인가에 우거하던 양춘산(楊春山)이라 칭하는 년기 사십여세된 우리 사람 하나가 지난 팔일 어떤 청년 4명에게 피살되었는데, 일설에는 그 피살된 이가 곧 김립이라고도 하더라. 향락을 일삼았다.

 

 

 

《The North-China Herald》 1922 / 4 / 1

 

Kim Rip and Its Gold!

 

러시아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러시아와 깊은 관계를 갖고서 수많은 가명을 쓰는 김립은 치타그룹(Chita Group)을 대표한다. 지난해 초여름 40만 달러의 러시아 금괴를 소지하고 북경에 도착했다. 그는 웨스턴 힐에 머물면서 금괴의 은화 교환에 노력하였다. 이 풍부한 자금은 당파를 초월해서 한인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볼세비키를 반대하는 한국혁명당(임시정부)은 김립에게 과오를 인정하고 소유 자금을 혁명자금으로 내놓을 것을 요구하였다. 이르추크파 요원들은 여행비와 생활비 100 멕시코달러를 벌고자 포도밭 노동을 감수하는 와중에서 행운아 김립에 합류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김립은 모든 당파를 피하면서 상해까지 따라온 이르쿠츠파와의 분배마저 거부했다. 그래서 김립은 자금 유용의 비난을 받고서 지난 2월 11일(?) 피살되었다.

 

 

 

4. 모스크바 자금

 

 

 

규모

 

● 코민테른 / 소비에트 정부, 명목 = 공산당 선전비, 200만 루블 = 분할지급, 1차 지급분 = 1920년 9월 40만 루블 금괴, 한형권 회상, 20푸드 (1푸드 = 16.38kg) 금괴 = 순금 약 327.6kg, 궤짝 7개 = 궤짝 당 약 47kg

 

● 금화 40만 루블의 구매력? 1920년 런던 현물시장 금 1온스(28.349kg) 당 가격 = 20.68달러, 금 1g당 약 0.729달러, 순금 327.6kg = 23만 8,820달러, 1924년 1월 당시 1달러 = 약 2원 16전

 

● 금화 40만 루불 = 미화 23만 8,820달러 / 엔화 51만 5,852엔, 오늘날 구매력 환산 = 약 510억 원, 200만 루블 = 약 2,550억 원, 1차분 = 전체 총액의 20% = 약 510억 원, 200만 루블 = 경제 봉쇄 / 내전 / 흉작 / 기근, 사회주의 혁명의 세계화 = 레닌의 야심!

 

 

 

성격 (1)

 

● 모스크바 외교의 주체? 한국인 최초 모스크바 외교 = 한인사회당 대표단 박진순 · 박애 · 이한영, 1919년 7월 블라디보스토크 출발 = 1919년 11월 모스크바 도착, 약 4개월 소요

 

● 대표단장 박진순의 맹렬한 외교전,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참석 = 한인사회의 혁명운동 소개 / 한인사회당 코민테른 가입 요청, 박진순 연설 = 국제공산당 기관지 <코민테른> 1919년 12월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 게재

 

● 대표단 = 러시아 정부 활발한 외교전, 1919년 12월 9일 박진순 = 러시아 최고 의결기관 제7차 全러시아 소비에트 대회 참석, 한인 최초의 대표 연설, 러시아 정부의 열열한 환영 / 융숭한 대접!

 

 

 

한인사회당의 모스크바 대표단 (왼쪽부터 박진순, 박애, 이한영)

 

 

 

코민테른 제2차 대회 민족 · 식민지 분과에서 토의 중인 박진순과 레닌

 

 

 

블라디미르 레닌 (1870~1924)

 

 

 

성격 (2)

 

● 자금 공급자 = 코민테른 / 소비에트정부 입장? 1920년 4월 박애 / 이한영 귀환, 박진순 = 외교활동 계속, 코민테른 제2차 대회 정식대표 자격 참석, 분과위 분과 소속위원 활동, 코민테른 집행위원 선임

 

● 1920년 5월 임시정부 전권대사 한형권 모스크바 도착, 당초 전권대사 3명 = 한형권, 여운형, 안공근 = 정치세력 (이동휘 / 안창호 / 이승만) 반영, 국무총리 이동휘 결단 = 한인사회당 한형권 신임

 

● 1920년 9월 소비에트 정부 = 200만 루블 무상공여 결정, 1차 박진순 40만 루블 지급, 1921년 9월 한형권 2차 20만 루블 지급, 명목은 공산당 선전비!

 

 

 

연표 (1)

 

● 1919. 05 한인사회당 창립

● 1919. 06 한인사회당 임정 참가 결정, 모스크바 대표 파견

● 1919. 11 이동휘 임정 국무총리 / 김립 국무원 비서장 취임

● 1920. 01 이동휘 / 안창호 모스크바 특사 파견 논의, 3명 선임

● 1920. 02 국무회이, 이승만의 구미위원회 / 미주 재정권 결정

● 1920. 04 임정특사 한형권 모스크바 도착

● 1920. 05 국무회의, 한형권 소환결정, 이시형 / 이동녕 사의

● 1920. 06 이동휘 등 이승만 불신임 운동 / 사직서 제출

● 1920. 08 보이턴스키 만류, 이동휘 총리직 복귀

● 1920. 10 베르흐네 우진스키, 김립, 계봉우, 박진순, 한형권 회합 2차 자금 40만 루블 상해 고려공산당 주관 사용 결의, 한형권 활동비 6만 루블 지급, 박진순 22만 루블 운반, 김립 12만 루블 (4만 루블 이태준 운송 위임 /피살) 운반, 박애 / 계봉우 3만 루블 지급, 기타 경지, 상해도착 금액 31만 루블 (25만 4,300달러)

 

 

 

연표 (2)

 

● 1920. 11 김립, 임정 국무원 비서장 사임

● 1920. 12 이승만, 임정 대통령 취임

● 1921. 03 이동휘, 임정 국무총리 사임

● 1921. 05 이르쿠츠크, 제1차 고려공산당 대표회의 개최

● 1921. 05 상해 고려공산당 대표회의 개최

● 1921. 06 자유시 참변

● 1921. 10 이동휘 / 박진순, 혁명지원금 회계보고서 제출

● 1921. 11 한형권 / 고창일 모스크바 자금 20만 루블 상해 운반, 고려공산당 및 임정 등 어느 세력에도 인도 불응

● 1922. 01 임정, 이동휘 / 김립 성토 포고문 공포, 모스크바 극동 민족대회 개최, 한인대표 56명 참가, 임정 불참

● 1922. 02 김립 피살

● 1922. 05 안공근, 임정 상황, 외무인민위원회 / 코민테른 보고

● 1922. 09 임정, 한형권 협박 / 김상옥 사주 / 윤해 저격

 

 

 

얀손 보고서

 

● 모스크바 자금의 관할권? 1920년 2월 김립 암살 = 자금관할권 분쟁, 코민테른 개입, 1922년 5월 특별감사관 파견 결정

 

● 얀손 = 내전기 극동공화국 외무부장관, 막강한 권한 위임 = 한인 사회주의 단체 감찰 / 잔여금 처분권 부여, 수령자 / 집행자 결산보고서 제출 / 대면조사, 한인사회당 재정 담당 김철수도 조사

 

● 청문회 기록 = 코민테른 문서보관소, 1922년 8월 18일 '얀손보고서' 완성, 200만 루블 수령자 = 한인사회당 대표 코민테른 중앙집행위원 박진순, 자금관할권 = 한인사회당 / 고려공산당 상해파! 횡령은 전무!

 

 

 

5. 암살과 증언

 

 

 

암살자

 

● 오면직(吳冕稙) : 1894년 황해도 안악군 출생, 양산학교 / 대성학교 중퇴, 조선 / 동아일보 지국장 / 기자, 21년 11월 상해 망명, "도착과 동시에 종전 스승으로 민족운동의 거두인 김구와 해후··· 마침내 조선독립 실천운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18년 황해도 은율군수 살해, 22년 2월 김립 사살, 33년 4월 남익 교살, 33년 1월 상해 옥관빈 암살 등, 1938년 4월 해주형무소 사형 (45세),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 노종균(盧鍾均) : 1894년 황해도 안악군 출생, 1921년 동아일보 안악지국 판매부장, 1921년 11월 오면직과 상해 망명, 1922년 1월 김립 암살, 1935년 상해 일본총영사 암살 기도, 1938년 1월 상해 조선인민회 회장 이갑녕 (친일파) 저격 살해, 1939년 6월 황해도 해주형무소 뇌출혈 옥사,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오면직, 독립운동 가담죄, 1938년 평양형무소 사형

 

 

 

오면직 공판 기록

(해주지방법원 1937 / 4 / 16)

 

"大正 11년 (1921년) 1월 초순경 당시 대한 임시정부 경무국장이었던 김구로부터 동 정부 비서장 김립은 러시아로부터 입수한 임시정부 운동자금 40만 원을 자기 용도에 소비한 부도덕한 자이므로 임시정부 강화를 위하여 김립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임시정부는 조선으로 하여금 일본의 기반을 이탈시켜서 일본 국체변혁을 목적으로 한 결사인 것을 알면서도 동 결사의 목적 수행을 위하여 김동우(노종균 별칭)와 함께 이를 수락하고 동인과 공모한 다음 각자 김구로부터 권총을 교부받았다.

 

그로부터 수일간 김립의 소재를 수사한 다음 같은 달 13일 오후 2시경 상해 갑복 빈통로 부근 가옥으로부터 나오는 동인을 발견하고 곧 미행하여 부근 노상에서 약 2간쯤 되는 뒤쪽에서 권총을 발사하여 즉사케 하였다.

 

 

 

증언

 

● 김철수, 1922년 2월 8일 사건 당일, 사후처리 다른 동료들(유진희, 김하구), 모스크바 자금 예치한 '상하이상업저축은행' 직행, 예금인출 저지 / 인출권 명의 변경, 일본 유학생 출신 은행장 천광푸의 신뢰 / 지지.

 

"모스크바 자금은 임시정부 공금이 아니다" 동료의 격분, 같은 독립운동 계열의 동지가 다른 동지에게 총을 겨눈다! 정부 공금횡령은 터무니 없는 거짓말! 고려공산당 열혈 청년의 보복 움직임!

 

● 암살교사 = 임정 경무국장 김구! 청년 당원들의 보복 주장 = 최동욱 / 최계립 / 이호반 / 한광우, 임시정부 안팎의 피바람, 김철수 등 고위층 간부들 만류, 투쟁 대상은 일본제국주의, 결코 동족이 아니다!

 

 

 

연쇄살인

 

1. 최초 처형자 17세 소년 김도순, 일본 영사관 밀정, 임시정부 특파원 체포, 여비 10원 수취, 미수범

 

2. 1922년 9월 28일 김상옥 사주, 《독립신문》 주필 겸 대한국민회의 거물 윤해 저격 사건, 2차 모스크바 자금 20만 원 = 한형권 인도 불응 / 협박, 암살 미수

 

3. 정필화, 대동단 총재 김가진 = 이강 망명 추진, 설득 / 귀국 종용, 상해 잠입, 밀정 = 체포 / 교수형 처형, 사건 미수

 

4. 철혈단 단원 황학선 밀정, 철혈단(鐵血團) = 임정 부정 폭로 / 실력행사, 황학선 = 일제 수배자, 안창호 일기 참고

 

5. 62세 박은식 구타 / 욕설, 박시창(45세) 난타 / 골절 = 입원 대통령제 반대 / 내각제 찬성, 이승만 / 이동녕 후원!

 

 

 

6. 마무리

 

 

1. 제1차 세계대전, 국제정세 변화, 러시아와 연계한 무장독립투쟁 노선, 탁월한 혁명가 / 정략가

 

2. 모스크바 자금은 임시정부 공금이 아닌 한인사회당 / 고려공산당 상해파 관할권

 

3. 걸출한 항일독립 지사, 김립의 암살 진범 = 흉폭한 경무국장, 독립운동 파괴자 / 연쇄살인범

 

4. 사후 약 100년에 걸쳐 김구의 낙인 = 공금횡령범 / 파렴치범 불명예! 보훈처 서훈 상신도 기각!

 

5. 김립 암살 및 민족지사 연쇄살인, 진상조사와 특별입법 불가피한 것은 아닌가!

 

 

 

https://www.youtube.com/watch?v=mONAfxhWJ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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