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세상]

일러스트 = 이철원
이슬 세상
이슬들 모여 앉아 쪽방촌을 이루었다
아침 물고 날아온 새, 살짝 떨군 물똥처럼
물방울 은빛 사리가 가지런히 눈부신 곳
오늘의 특별 손님, 실잠자리, 무당벌레
터줏대감 소금쟁이, 청개구리, 까마중
조금은 옹색하지만 불평 없이 동거하는
주인도 세를 사는 하늘이 맑은 동네
온몸을 톡, 던져서 풀잎 발등 적시는
작아서 더 좋은 것, 저 깨끗한 전신공양
ㅡ 유재영 (1948 ~)
풀잎 위에 떨어진, 영롱한 이슬을 이 시조에 간곡하게 모셨다. 하늘 아래 첫 동네처럼 깨끗한 자연이 있는 곳인데, 그곳의 생명 살림을 쪽방촌에 빗대었다. 작고 좁은 방이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모인 이 쪽방촌에는 거주하는 생명이 많다. 사람, 날고 기는 것, 물에 사는 것, 한해살이풀까지 함께 산다.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아도 못마땅해하지 않으니 더없이 맑고, 화평하고, 서로에게 헌신하고 보살피는 세상이다. 시어 가운데 “살짝” 과 “톡” 은 “작아서 더 좋은 것” 을 실감케 하기에 매우 적절하게 선택된 듯하다.
유재영 시인은 시조를 쓴 지 52년을 맞았다. 최근에 시조집을 내면서 “나는 율격주의자이다. 시조의 형식을 파괴하며 시조를 쓰지 않는다” 고 밝혔다. ‘달항아리 어머니’ 라는 시조의 셋째 수는 이렇다. “모진 세월 무명옷이 몇 벌이나 해졌을까 / 울 어머니, 그렁그렁 눈물로 받든 하늘 / 달이 된 항아리 하나 저리 둥실 떠있다” 엄격하게 율격을 지킨, 시조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시조라고 하겠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5년 4월 14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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