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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이야기]

달 이야기
오래된 마을의 달 이야기는 믿을 수 있지
절반은 적막
절반은 맑음
혹은 절반은 인간, 절반은 비밀
얼굴이고 짐승인 것들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ㅡ 송재학 (1955 ~)
이 시가 돌처럼 앉은 내 곁에 왜 오래 머물까. 마치 내 밤의 내면에 달처럼 떠서. 이 시를 읽으면 그 언젠가 찾아갔던 춘천 근처의 어느 산골이 떠오른다. 인적과 길이 끊어진 곳이었고, 작은 터에 서서 달을 올려다보았다. 달의 표면에 살얼음이 언 것 같았다. 고요했고 쓸쓸했다. 인가 (人家)의 불빛으로부터 외따로 떨어져 있어서 으슥했지만, 맑고 깨끗한 곳이었다. 어떤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별똥처럼 떨어질 것만 같았다. 골짜기에 웅크려 있는 산짐승들이 몰려올 것 같았다. 적막이 절반이었고, 산짐승의 이야기가 절반이었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자물쇠로 잠겨 있는 비밀이 절반이었던 곳이었다. 신비하고 은밀한 서사를 지닌 달이 그러한 것처럼 모든 것에는 뒤편이 있고, 바깥이 있고, 나 아닌 다른 존재가 있다.
송재학 시인은 산문에서 “서쪽 노을이 나의 외부이기도 하지만 그게 생활의 불온이며 내부라는 짐작을 한다. 내부는 애면글면 또 누군가의 외부” 라고 썼다. 이 가을에 생각건대 내부도 외부도 넓디넓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5년 11월 3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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