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전시 누적 70만명 첫 돌파]

금기숙 기증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공예박물관 전시장 도입부. 사람들이 어두운 공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의 ‘백매 (白梅)’ 드레스 사진을 찍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이 작품이 이른바 ‘포토존’ 으로 입소문이 나며 많은 관람객을 전시장으로 불러 모았다. / 장경식 기자
"이 전시 아직도 안 봤어요?"··· '국민 전시' 시대 열렸다
금기숙展, 국내 최다 관람객 모아
국중박 리먼 · 이순신展 쌍끌이 흥행
"관객들 미술관서 밀도 높은 경험···
힙하게 자기 삶 보여주는 시간 즐겨"
박물관 · 미술관 문턱이 낮아지면서 놀이를 즐기듯 전시를 관람하는 이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패션 아트의 선구자’ 금기숙 기증 특별전이 1일 누적 관람객 70만명을 돌파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열린 단일 전시로 역대 최다 관람객 기록이다. 철사에 투명 비즈를 꿰고 엮어 한땀 한땀 빚은 ‘입는 조각’ 이 한국 전시 흥행 기록을 새로 쓴 것이다. 작년 12월 23일 개막해 70일 만에 달성한 수치로, 지난해 최고 흥행을 기록했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론 뮤익’ 개인전이 총 94일간 53만3035명을 기록한 것과 비교해도 이례적인 속도다. 김수정 서울공예박물관장은 “하루 1만5000명, 주말엔 2만명까지 몰리고 있다” 고 했다.

금기숙 기증 특별전을 보기 위해 오픈런한 관람객들이 박물관 앞마당을 가로질러 줄을 서 있다. / 서울공예박물관

금기숙 기증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공예박물관 전시장에서 1일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 장경식 기자
지난해 ‘관람객 650만’ 시대를 연 국립중앙박물관은 이순신과 인상주의 쌍끌이 흥행으로 또다른 기록을 쓰고 있다. 3일 폐막을 앞둔 ‘우리들의 이순신’ 은 개막 82일 만에 누적 관람객 30만명을 돌파해 국내 문화유산을 소재로 한 박물관 특별전 가운데 최고 기록을 세웠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리먼 컬렉션을 국내 최초로 공개하는 특별전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도 이날까지 20만명이 몰렸다. 신라 금관 6점을 최초로 한자리에 모은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 은 28만5401명을 모으며 지난달 22일 막을 내렸다. ‘금관 오픈런’ 현상까지 일으키며 연일 매진 기록을 세웠다.
◇ "국민 드라마 대신 국민 전시"
전문가들은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방식이 인증과 소통을 중시하는 ‘경험 소비’ 로 바뀌고, 예술이 내 삶을 증명하는 힙한 도구가 됐다” 고 꼽는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코로나를 계기로 몸을 움직여 전시를 관람하고 공유하는 과정이 소중해졌다. 요즘 관객들은 영화 한 편 보는 것보다 미술관에서 2 ~ 3시간 머무는 게 훨씬 밀도 높은 경험이라고 느낀다” 며 “유럽처럼 화제의 전시를 안 보면 사람들과 할 얘기가 없을 정도로 뒤처지는 ‘국민 전시’ 의 시대가 도래한 것” 이라고 했다.

'우리들의 이순신' 관람객 30만명 돌파 이벤트가 열린 19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전시실 밖을 오가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 김지호 기자
미술관 관람을 놀이처럼 즐기는 2030 세대 트렌드가 전 세대로 확장되는 것도 큰 이유다. 금기숙 특별전 전시장에선 젊은 관객뿐 아니라 중장년, 노년층까지 다양한 관객들을 볼 수 있다. 감각적인 공간 연출, 전시 인력의 고급화도 미술관 문턱을 없앤 일등 공신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사진 찍기 좋은 설치 환경, 소셜미디어 (SNS)를 통해 공유되는 전파력이 맞물린 결과” 라고 했다.
◇ 위대한 수공예, K영웅, 희소성에 열광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전시마다 이유는 다르다. 서울공예박물관이 금기숙 특별전 관람객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했더니, 관람객들은 ① 철사 · 구슬 · 스팽글 같은 버려지는 재료를 활용해 만든 독창적인 작품 ② 수작업으로 빚어낸 정성과 노동의 시간 ③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 공간 디자인 ④ 한복의 선과 여백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한국적 미감 등을 관람 이유로 꼽았다. 특히 어두운 공간에 떠있는 형태로 전시된 하얀 드레스 ‘백매 (白梅)’ 가 ‘포토존’ 으로 인기를 끌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작업 과정과 작가 인터뷰, 드로잉 등을 모은 아카이브 섹션도 인기 코너였다. 관객들은 “소재는 평범한데 완성된 결과는 비범하다” “놀라울 만큼 정교하고 섬세한 작품” “한 작가의 일생을 통째로 볼 수 있어 감사하고 존경스러웠다” 는 후기를 남겼다.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 특별전 일반공개가 시작된 첫날, 국립경주박물관 입구가 오픈런한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다. / 국립경주박물관
반면 이순신 특별전은 역사 속 영웅에 대한 자부심이 문화 소비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다른 전시에 비해 어린이 · 청소년 비율 (22%)이 높은 것도 특징이다. 이정근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은 “초중생 자녀들을 데리고 온 학부모들이 많고, 학생들 중에 이순신 덕후가 많아서 부모님을 졸라서 함께 온 경우도 많다” 고 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평소 보긴 힘든 해외 유물까지 대규모로 모았고, 인간 이순신이라는 스토리텔링을 올드하지 않게 동시대 감각으로 소화했다는 점에서 기획력이 돋보였다” 고 했다.
“지금 아니면 못 본다” 는 희소성도 중요한 흥행 포인트다. 신라 금관 특별전이 이 경우다. 천마총 · 황남대총 · 서봉총 등 신라 금관 6점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은 이 전시는 ‘금관 오픈런’ 이란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전국 관람객들을 경주까지 달려가게 했다.

‘시간적 희소성’ 때문에 몰리는 전시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소멸의 시학 : 삭는 미술에 대하여’ 는 작품이 썩고 분해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도발적인 전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시장 환경이 변하고 있다” 는 테마가 20 ~ 30대 사이에 화제가 되면서 개막 한 달 만에 5만명을 넘었다. 한 관람객은 “부정적으로만 여겨지던 노화와 부패 과정을 통해 또다시 삶의 가능성이 발견된다는 게 힘이 되어주더라” 는 후기를 남겼다.
허윤희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6년 3월 2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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