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운동가들의 도 넘은 시위]

지난달 31일 스페인 바로셀로나의 명소 사그라다 파밀리아 외부 기둥에 페인트를 뿌린 환경 단체 ‘미래 식물’ 회원들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 ‘미래 식물’ 소셜미디어
"지구 살리자" 며 이번엔 가우디 걸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훼손
스페인 유명 성당에 페인트 뿌리고
로마 트레비 분수선 '먹물 테러'
모나리자 향해 케이크 던지기도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불만" 주장
건축가 가우디의 걸작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속죄의 성가정 대성전)에 “기후 정의” 를 주장하는 환경 운동가들이 페인트를 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에 관심을 촉구한다는 명분으로 문화 유산을 훼손하는 이른바 ‘에코 반달리즘 (eco-vandalism)’ 에 서구권 전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서유럽에서 본격화한 ‘에코 반달리즘’ 은 거장의 미술 작품은 물론 유명 건축물과 유적지, 고문서 등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최근엔 미국 · 호주 등에서도 유사한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AFP에 따르면 ‘미래 식물’ 이라는 단체 소속 활동가 2명은 지난달 31일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외부 기둥 하단에 빨간색과 검은색 페인트를 뿌렸다. 이들은 곧 경찰에 체포됐고, 단체가 영상으로 촬영한 장면이 자체 소셜미디어에 공개됐다. 이들은 “기후 변화가 이번 여름 스페인 전역에서 심각한 산불을 초래했다” 며 “기후 변화에 대한 정부의 조치가 불충분하다” 고 주장했다.

2022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에 한 환경 운동가가 케이크를 투척했다. / 로이터
이 단체는 2022년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이 소장한 고야의 명작 ‘옷 벗은 마하’ 와 ‘옷 입은 마하’ 에 접착제 바른 손을 붙이는 등 수차례 유사한 항의성 시위를 벌였던 곳이다. 이들이 스페인을 대표하는 명소 사그라다 파밀리아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자 서구권에선 ‘에코 반달리즘의 폐해가 도를 넘었다’ 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에코 반달리즘이 본격화한 시기는 2022년 무렵이다. 그해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대표 소장품 ‘모나리자’ 에 한 남성이 케이크를 던졌다. 남성은 “지구를 생각하라. 모든 예술가는 지구를 생각해야 하며, 이것이 내가 테러하는 이유” 라고 했다. 보호 유리 덕분에 작품은 훼손을 면했지만 세계적인 명작이 테러를 당한 장면은 충격을 줬다.

오스트리아 환경 단체 ‘마지막 세대’ 가 2022년 11월 수도 빈 레오폴트 미술관에 소장된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죽음과 삶’ 에 검은색 페인트를 뿌린 뒤 제지되고 있다. / AP 연합뉴스
같은 해 유럽 전역에서 비슷한 범죄가 이어졌다.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있는 고흐의 ‘해바라기’ 엔 토마토 수프가, 독일 포츠담 바르베리니 박물관에 전시된 모네의 명화 ‘건초더미’ 에 으깬 감자가 날아들었다. 극렬 환경 운동가들은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이 소장한 페르메이르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에 접착제 바른 손과 머리카락을 문지르거나 토마토 소스를 투척했다.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 호주 멜버른 미술관에 전시된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도 비슷한 피해를 당했다. 에코 반달리즘이 유럽 밖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범행 수법과 대상도 다양해졌다. 2023년엔 이탈리아 베네치아 대운하에 녹색 염료를 뿌려 물을 ‘녹조 라테’ 로 만들거나, 로마 트레비 분수를 검은빛으로 물들이는 ‘먹물 테러’ 가 발생했다. 지난해엔 영국의 고대 유적 스톤헨지에 오렌지색 페인트를 뿌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 워싱턴 DC 국립문서기록보관소에선 미 헌법 원본이 전시된 유리 케이스에 붉은 가루를 투척하는 일도 있었다.

2023년 이탈리아 로마의 명소 트레비 분수에서 화석 연료 사용 중단을 촉구하며 '먹물 시위' 를 하는 환경운동가들. / AFP 연합뉴스
기후 · 환경 운동가들은 에코 반달리즘이 “기후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는 절박한 행위” 라고 주장한다. 중요한 작품 · 유물은 대부분 방탄 유리 등으로 보호되고, 투척하는 물체 역시 토마토 수프나 감자 등으로 파괴력이 거의 없어 작품은 사실상 안전하다고도 말한다. 작품에 그저 ‘상징적 손상’ 만 줘서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효과적 전략이라는 것이다.
2022년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에코 반달리즘을 “순전한 파괴 행위” 로 규정하고 강력 비난하자 ‘울티마 제네라치오네 (마지막 세대)’ 라는 이름의 환경 단체는 “우리는 시민들의 절망적 경고를 외치는 것일 뿐” 이라고 했다. 미 NBC뉴스는 “10 ~ 20대 젊은 활동가들은 기후 변화가 초래할 미래 위기를 극심하게 걱정한다” 며 “기성세대와 정부의 대처가 미흡하다고 느낄수록 더욱 공격적인 전술을 택한다” 고 했다.

영국의 기후 환경 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 이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된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에 토마토 수프를 뿌린 뒤 "화석 연료 퇴출" 을 외치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하지만 목적이 정당하다 해도 폭력적 수단을 옹호하며 관심 끌기에만 치중한다면, 에코 반달리즘의 행태가 무장 단체들의 테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기후 · 환경 단체들은 “우리에게 ‘테러’ ‘파괴’ ‘극단’ 의 낙인을 찍어 평화적 시위를 폭력으로 매도한다” 고 반발하고 있다.

2024년 6월 19일, 영국의 환경 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 회원들이 스톤 헨지에 ‘화석 연료 퇴출’ 을 촉구하며 주황색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다. 기원전 3000 ~ 2000년경 조성된 스톤헨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 로이터 연합뉴스
원선우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5년 9월 2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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