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들/2026년

[2026ㅡ004 너머의 새]

드무2 2026. 3. 1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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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ㅡ004 너머의 새]

 

 

 

 

 

 

강영은 시집

2024, 한국문연

 

 

은계도서관

SN019923

 

 

811.7

강 64 ㄴ

 

 

현대시 기획선 96

 

 

 

 

강영은 姜榮恩

 

제주 서귀포 출생.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년 「미네르바」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녹색비단구렁이」 「최초의 그늘」 「풀등, 바다의 등」 「마고의 항아리」 「상냥한 시론 詩論」 외 2권, 시선집 「눈잣나무에 부치는 詩」, 에세이집 「산수국 통신」이 있다. 시예술상 우수작품상, 한국시문학상, 한국문협 작가상, 문학청춘 작품상, 서귀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메일 : kiriro1956@hanmail.net

 

 

 

 

 

 

 

 

 

 

 

 

 

 

 

 

 

 

 

너머의 새

 

 

새가 날아가는 하늘을

해 뜨는 곳과 해 지는 곳으로 나눕니다.

방향이 틀리면 북쪽과 남쪽을 강조하거나

죽음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나의 흉곽을 새장으로 설득하기도 합니다.

 

사이에 있는 것은 허공

새가슴을 지닌 허공을 손짓하면

새가 돌아올지 모르지만

새의 노동이

노래를 발견하고 나무를 발명합니다.

 

헤아릴 수 없는 크기를 가진 숲에

잠깐 머물러

나무와 나무의 그늘을 이해한다 해도

 

새 발자국에 묻은 피가 없다면

당신이 던진 돌멩이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점 点 하나가

돌에 맞은 공중을 끌고 갑니다.

 

제가 새라는 걸 모르고

새라고 하자

공중이 조각조각 흩어집니다.

 

아무런 목적도 계획도 없이

너머로 넘어가는 새

 

새라고 부르면 새가 될지 모르지만

나라고 발음하는 새는

누구일까요?

 

 

 

지슬*

 

 

나는 드디어

말 상대를 고안해 냈다.

 

거기 누구 없소? 소리칠 때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나밖에 들을 수 없는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내 귀의 바깥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내가 섬일 때

날다가 지친 갈매기들이 섬에 집중할 때

 

갈참나무 잎사귀처럼 침몰하는 귀가

저절로 닿는 심연, 그 아득한 깊이에서 들려오는

존재의 목소리

 

그것이 설령

내 몸의 줄기에서 뻗어 나간 것일지라도

 

놀란 흙 밖으로 튀어나온 그것을

나는 지슬* 이라 불렀다.

 

그럴 때 나는

불타오르는 산이고 쏟아지는 빗줄기이고

숲을 뒤덮는 바람이고 계곡에 넘쳐흐르는 물

 

나는 드디어

나의 고독과 대화하는 나를 가지게 되었다.

 

나의 예언은 어디에서 오는지

나의 방언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마침내

감옥이고 차가운 별이 되고 마는

 

나의 독백을

대화체로 바꾸어주는 시 詩를 가지게 되었다.

흙무덤에서 파낸 그것을

 

나는 지슬이라 불렀다

 

* 지슬 감자를 뜻하는 제주어.

 

 

 

시간의 연대

 

 

돌 위에 돌을 얹고 그 위에 또 돌을 얹어

궁극으로 치닫는 마음

 

마음 위에 마음을 얹고 그 위에 또 마음을 얹어

허공으로 치솟는 몸

 

돌탑은 알고 있었다.

 

한 발 두 발 디딜 때마다 무너질 걸 알고 있었다.

무너질까 두근거리는 나를 알고 있었다.

 

그건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므로

 

조그만 돌멩이를 주워

마음의 맨 꼭대기에 올려놓았다.

 

태어나기 전의 돌탑을

태어난 이후에도 기다렸다.

 

한곳에 머물러 오래 기다렸다.

 

돌멩이가 자랄 때까지

돌탑이 될 때까지

 

 

 

단어 單語의 세계

 

 

늦은 눈 내리는 3월, 눈보라를 지나가는 감정이 있다. 몰려드는 눈갈기 손으로 털며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밟으며 눈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표정이 있다.

 

대숲에 드는 눈설레처럼 흰 여백 채우는 발자국 소리

 

동담 둘러친 동백숲처럼 흰 여백 채우는 발자국 소리

 

돌담 둘러친 동백숲에선 붉게 핀 애기동백 뚝뚝, 모가지를 떨구는데 가야 할 먼 곳 있다는 듯 죽음을 지나가는 형식이 있다.

 

그리움은 죽음보다 더 먼 곳에 놓여 있다고 오늘을 지나가는 저 사람,

 

심장이 녹기 전에 눈 속에 묻은 발목 지나야 한다. 3월에 태어난 눈사람처럼 비유 比喩의 세계를 지나야 한다.

 

사람 닮은 한 덩이 돌덩어리로 굳어질까 봐, 눈사람은 우두커니 서서 울고 있는데 동백꽃 지는 밤을 지나가는 목숨이 있다.

 

말 걸지 말아줘, 나는 지금 햇빛과 사귀는 중야,

 

불안의 울타리에도 꽃은 핀다고 눈물 고인 바닥에 돋아난 새싹! 백지에 찍어놓은 마침표처럼 눈은 그쳤는데 내린 눈만큼 겨울을 지난 네가 '나' 였다

 

눈사람을 지나간 '최소의 자립형식' 이었다.

 

 

 

독자 讀者

 

 

한 문장 속에는 눈, 코, 입 같은 여러 개의 문 門이 달려 있습니다. 열거나 닫힐 뿐인 문 門은 상징일지 모르지만, 문 門이 있다는 건 나를 안내하는 자가 있다는 것

 

더 빨리, 더 간절히, 문 門을 열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 문 門은 계단이 필요합니다. 뛰어내리거나 뛰어오를 계단이 준비되었다면 문패 門牌와 같은 알레고리를 열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열려라 참깨' 와 같은 주문 主文을 지나야 합니다. 아, 저런! 잘못된 문 問이 문 聞을 통하여 수치를 갖는군요, 그럴수록 패 牌를 쥔 손이 밑줄 긋습니다

 

속독 速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번에 담장을 넘습니다. 페이지 뷰를 원하는 사람들은 한 장면에 오래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구요.

 

반복적이거나 인상적인 문장 紋章에 집착하는 건 오래된 습관이지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장미처럼 붉은 심장 心臟에 대한 신앙심 때문입니다.

 

문 門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구름에 대해 고민해 보세요. 구름은 제멋대로 하늘을 흐려놓지만,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아름다운 문장 文章이잖아요?

 

꼬리가 긴 최초의 문장 門帳이 탄생합니다. 사라지는 별똥별에 당신은 여러 개의 문 吻을 매달아 둡니다.

 

그 문 門이 죽음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얼굴을 현실에서 돌려 제2의 현실에 파묻고 있는* 신생아들을 위해 궤도를 수정하기도 합니다.

 

빠르게 문 門이 열릴 때 당신은 차단됩니다. 나는 문 門을 여는 사람, 당신을 읽는 최초의 얼굴입니다.

 

* 릴케의 시 「책 읽는 사람」.

 

 

 

인형들의 도시

 

 

언제부턴가 왼쪽이 아프다.

기침하면 왼쪽 가슴이 쿨럭이고

고개 돌리면 왼쪽 등허리가 땡긴다.

어떤 권력이 점거했는지

어떤 부조리가 관여했는지

미세먼지 같은 대답을 듣는 날에는

목줄까지 뻣뻣하다.

내 몸의 기득권자는 누군가요,

내가 아닌가요?

당귀즙을 앞에 놓고 외쳐 보아도 단단한 근육질에 묶인

도시는 오른쪽으로 돌아서지 못한다.

어쩜 여기는 인형들의 도시일지 몰라,

선반 위에 놓인 목각인형처럼 사지를 내려놓고

빙그르르 돈다.

누가 총을 들이댄 것도 아닌데

네, 네, 그렇군요,

유리 벽에 박힌 나를 보려고 선 채로 돈다.

움직이는 벽에 애걸하듯 산 채로 돈다.

고통의 계단을 높이는 건 누구일까,

계단 위에 놓인 목에 붕대를 감고

계단 아래까지 내려간다.

어느 쪽에도 유리한 증언은 하지 않겠어요.

당신과 나는 경계에 서 있을 뿐이니까요.

구어체의 문 앞에 문어체인 당신은 대답이 없다.

택시를 탄다.

윈도 브러시는 좌우지간 안개 흐르는 길을 지우는데

어느 병원으로 모실까요,

앞만 노려보는 내게 운전기사가 물어본다.

 

글쎄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화 羽化

 

 

제인은 벌레를 눌러 죽였다. 유일한 놀이, 습관이 되어버린 그것을 취미라고 불렀다. 벌레의 총량을 헤아리듯 제인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날개가 돋을 것처럼 겨드랑이가 가려웠다. 겨드랑이를 아무 데나 놓아두고 제인은 죽은 벌레처럼 잠들었다.

 

밥만 축대는 이 벌레야, 아버지가 구부려 지는 제인을 걷어찼다. 등줄기를 찍는 구두가 여러 짝으로 변할 때마다 제인은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가 아이 아버지의 구두를 신고 있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전에도 그 이전에도 아버지는 여러 짝의 구두였으니까,

 

갓난아기를 돌보는 동안 제인은 먹지도 않고 배설조차 하지 않았다. 발자국이 어지럽게 놓인 마룻바닥에서 아이가 애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제인은 재뻘리 아이를 눌러 죽였다. 반으로 준 몸무게 때문에 정신이 깜빡거렸지만 가벼워진 의식은 날아가는데 충분한 무게였다.

 

훨, 훨, 날아갈 거야, 제인은 난간을 딛고 조용히 웃었다. 삐걱거리는 이층 난간을 열고 바깥으로 들어갔다. 눈부신 바깥, 조리개를 여닫는 눈동자가 겹눈이 되어갔다. 제인은 활짝 날개를 펴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아이 아버지의 구두가 아니, 아버지 구두가 뛰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제인은 쉬지 않고 날개를 저었다. 쿵, 허공과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푸른 하늘이, 한 번도 보지 못한 푸른 하늘이 이마에 닿을 듯 펼쳐졌다. 아파트 화단 가에 구두 한 짝이 떨어져 잇었다. 흰 나비 한 마리가 나풀거리며 날아와 앉았다.

 

암전된 화면 속의 우화 寓話를 본 것처럼 사람들은 아무도 나비를 보지 못했다.

 

 

 

 

 

초월적 시간성과 언어적 매개

 

시인은 다채로운 시적물줄기를 하나의 바다로 결집시킨다. 자연물을 대상으로 존재론적 성찰과 초월적 상상력을 전개하기도 하고, 우주와 존재의 근원적 관계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또, 언어적 매개를 시적 모티프로 삼아 세계와 자아 및 시작 詩作의 방법론을 제시하면서도 도시적 현실에 대한 냉소적 풍자를 놓치지 않는다. 이러한 다양한 시적 양식들의 충돌과 운집은 강연은 시만의 독특한 미학성을 보여주는 핵심요소이다.

 

_ 오향엽 (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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