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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정상급 화랑 가고시안과 20주기 맞아 서울 용산서 개인전]

드무2 2026. 4. 9.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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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정상급 화랑 가고시안과 20주기 맞아 서울 용산서 개인전]

 

 

 

백남준 조카 하쿠다 켄이 ‘골드 TV 부처’ (2005) 앞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금박 입힌 청동 불상이 모니터 앞에서 명상하는 이 작품은 백남준의 대표 연작 ‘TV 부처’ 의 후기작으로, 국내에서 처음 공개됐다. / 연합뉴스

 

 

 

"내 삼촌 백남준··· 살아있었다면 AI로 '미디어아트' 했을 것"

 

 

 

조카 하쿠다 켄 방한··· 후일담 전해

11점 중 1점 제외하고 국내 첫 공개

25년 만에 대표작 'TV 브라' 선보여

 

 

 

“샬롯이 제게 ‘TV 브라’ 를 입고 벗는 걸 도와달라고 했어요. 흔쾌히 오케이했는데, 나중에 삼촌 (백남준)이 알고 샬롯에게 엄청 화를 냈죠. 어떻게 열여덟 어린애에게 속옷 착용을 도와달라고 할 수 있느냐고요. 엄격한 보호자셨거든요. 전 정말 괜찮았는데. 하하!”

백남준 (1932 ∼ 2006) 작품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 (1969) 앞에서, 조카 하쿠다 켄 (75)이 유쾌하게 후일담을 들려줬다. 투명 비닐 브래지어에 소형 흑백 텔레비전 두 대를 내장한 작품이다.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은 1969년 뉴욕 하워드 와이즈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에서 이 작품을 처음 착용하고 연주했다. 활을 그을 때 발생하는 소리를 통해 TV 화면 이미지를 변화시킴으로써 백남준은 ‘전자기기의 인간화’ 를 구현했다. 국내에선 2001년 호암갤러리 전시 이후 25년 만에 공개됐다.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이 1969년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 를 착용하고 연주하는 모습. / 백남준 에스테이트 · 가고시안

 

 

 

백남준 작품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 (1969)와 함께 샬롯 무어만의 사진이 전시됐다. / 연합뉴스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 백남준 20주기를 맞아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본사 1층 APMA 캐비닛에서 ‘백남준 : 되감기 / 되풀이 (Rewind / Repeat)’ 가 1일 개막했다. 세계 최정상급 화랑 가고시안이 백남준 작품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백남준 에스테이트와 협력해 마련한 전시다. 유족과의 협력 전시가 국내에서 열리는 건 25년 만이다. 출품작 11점 중 ‘TV 브라’ 한 점을 제외하고 모두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전시를 위해 방한한 켄은 “삼촌이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히 기뻐했을 것” 이라며 오랜 기억을 꺼냈다. 백남준의 장조카인 그는 슬하에 자식이 없었던 백남준의 사후 작품 관리를 맡아왔다. “어린 시절 삼촌과 소호에서 차이나타운까지 매일 산책을 했어요. 그는 늘 신문 가판대에 들러 뉴욕타임스를 샀는데, 백남준 이름이 신문에 실렸을 때는 ‘뉴욕타임스에 이름 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 고 자랑했죠 (웃음).”

 

 

 

빈티지 라디오로 구성된 ‘베이클라이트 로봇’ (2003). / 연합뉴스

 

 

 

중고 시장에서 수집한 빈티지 라디오로 구성된 ‘베이클라이트 로봇’ (2003), 금박 입힌 청동 불상이 모니터 앞에서 명상하는 ‘골드 TV 부처’ 등 역사적인 작품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초기작 ‘미디어 샌드위치’ (1961 ~ 64)도 처음 공개됐다. 일본 레코드판, 독일 전자공학 잡지, 19세기 인쇄물을 결합한 이 작품은 백남준의 첫 설치 작업 중 하나. 백남준은 이때부터 음악 작곡에서 벗어나 전자 매체를 작업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켄은 “회화가 더 이상 의미 없다고 판단한 삼촌이 전자 매체로 나아가기로 결심한 순간의 작품” 이라며 “에스테이트에서 딱 한 점만 남겨야 한다면 바로 이것” 이라고 했다.

 

 

 

백남준 조카 하쿠다 켄이 전시장에서 백남준의 초기작 ‘미디어 샌드위치’ (1961 ~ 64)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백남준은 늘 새로운 매체에 도전하고, 몇 수 앞서 미래를 내다본 예술가였다. 가고시안 아시아 매니징 디렉터 닉 시무노비치는 “생전 백남준은 미래엔 뉴욕 전화번호부의 번호만큼 수많은 TV 채널이 생길 거라고 말했다.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며 “오늘날 유튜브나 틱톡, 인스타그램을 통해 모두가 자신만의 TV 채널을 갖고 있지 않나. 그는 미래를 예견한 선지자였다” 고 했다.

켄은 “삼촌은 기술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내다봤고, 기술을 인간화하고 싶어 했다” 며 “오늘날까지 살아 계셨다면, 그는 AI에 인간의 마음을 입히는 데 집중했을 것” 이라고 했다. “기술을 제대로 비판하는 미디어아트를 만드는 게 그의 큰 프로젝트였겠죠.”

 

 

 

백남준이 1990년 마이애치 비치에서 촬영한 사진. / 백남준 에스테이트 · 가고시안

 

 

 

백남준 유산을 관리하는 막중함을 토로한 그는 “가장 좋은 작품을 최고의 미술관과 컬렉션에 보내는 것이 목표” 라며 “그 뒤에는 (백남준 에스테이트가) 사라지는 게 마땅하다” 고 했다. 그러면서 “탄생 100주년 전시가 한국에서 열린다면 가장 좋은 일일 것” 이라는 바람을 전했다. 5월 16일까지. 무료.

 

 

허윤희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6년 4월 2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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