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守衛都城 - 도성을 지키는 성, 탕춘대성] 01

드무2 2022. 5. 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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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衛都城 - 도성을 지키는 성, 탕춘대성] 01

 

 

 

 

 

리플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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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한성도성박물관 상반기 기획전

守衛都城 - 도성을 지키는 성, 탕춘대성

 

전시기간 : 2022-04-26~2022-09-18

전시장소 : 한양도성박물관 기획전시실

 

 

 

전시를 열며

About the Exhibition

 

창의문彰義門밖, 한양도성의 서북쪽에는 탕춘대성蕩春臺城이라 불리는 성곽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 한양도성의 외곽 북쪽에 북한산성北漢山城을 축조한 후 북한산성과 한양도성 사이에 쌓은 성으로, 과거 연융대성鍊戎臺城 혹은 서성西城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탕춘대성의 건설은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견고한 수비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도성 방어를 강화하는 수도방위체계를 완성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제대로 된 관리 없이 유지되어 오다가 1920년대 초의 홍수로 성곽 일부가 소실 · 훼손되었고,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채 방치되었습니다. 1970년대 보수 · 복원 공사가 추진되었으나, 성문과 수문을 중심으로 복원사업이 진행되어 상대적으로 성벽은 훼손된 채 남아 있는 구간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탕춘대성은 지형의 능선을 따라 쌓은 축성 당시의 원형이 대체로 잘 남아 있어 지형과 지세를 활용한 우리나라 성곽 축성의 전통을 잘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입니다. 과거 선조들의 노력과 지혜가 담긴 탕춘대성의 기능과 가치, 그리고 시대에 따른 변화상을 통해 조선의 수도방위체계에 대해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기회가 되시길 기대합니다.

 

 

 

 

 

 

 

 

 

 

 

 

 

 

 

 

 

 

 

 

 

 

 

 

I

도성의

서북쪽 방어성

 

A Defensive Fortress

to the Northwest of the Capital

 

 

 

 

 

 

 

 

 

 

 

 

탕춘대성을 쌓다

Construction of Tangchundaeseong

 

탕춘대성蕩春臺城은 1715년(숙종 41)에 건립하기 시작하여 1754년(영조 30) 축성이 대부분 마무리되었다. 탕춘대성이라는 이름은 1506년(연산군 12) 창의문 밖 조지서造紙署 터에 조성한 탕춘대蕩春臺로부터 연유한 것으로, 도성의 서쪽에 위치하였다 하여 서성西城이라고도 불렸다.

축성공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1715년 성문과 수문水門 등을 쌓은 후, 1718년(숙종 44)에 수문 북쪽 성곽에서 향로봉香爐峰까지 구간을 축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조정 대신들의 계속된 반대와 기근飢饉, 전염병 등으로 이듬해 축성이 중지되었다. 1753년(영조 29) 이전 공사 부분을 이어서 쌓고 암문暗門 1곳을 설치하였으며 1754년(영조 30)에는 체성體城 위에 여장女墻을 쌓고 성문 좌우 성벽에 대한 보강공사를 진행하였다. 탕춘대성의 완성 이후에도 크고 작은 성곽 공사가 1866년(고종 3)까지 지속되었다.

 

 

 

 

 

 

 

 

 

<조선성시도朝鮮城市圖>

Map of Seoul

 

도성 안 모습과 함께 도성 밖으로 남쪽 한강까지를 포괄하여 그린 지도. 창의문 밖에 건설된 탕춘대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홍지문을 '한북문漢北門'으로 표기하였다.

 

1849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

Map of the Five District of Seoul

 

김정호金正浩(1804~1866추정)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에 수록된 지도. 수도 한양을 둘러싼 산줄기와 개천, 도로망이 자세히 그려져 잇으며, 남쪽으로는 한강, 북쪽으로는 삼각산(북한산)까지 표현되어 있다.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탕춘대성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1861년                                                                                                                               복제 Replica

 

 

 

 

 

 

숙종어필肅宗御筆

Handwriting of King Sukjong

 

숙종肅宗이 친필親筆로 써서 여러 사람에게 준 시문時文 모은 첩帖. 1715년(숙종 41) 홍지문 조성시 숙종은 직접 '홍지문弘智門'이라 쓴 편액扁額을 하사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어필을 통해 숙종의 필체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현재의 홍지문 현판은 1977년 고 박정희 대통령이 쓴 것이다.

 

1816년

 

 

 

총융청과 연융대성

The General Defense Unit and Yeonyungdaeseong

 

총융청摠戎廳은 1624년(인조 2)에 설치된 오군영五軍營 一 훈련도감訓鍊都監, 어영청御營廳, 금위영禁衛營, 총융청, 수어청守禦廳 중 하나로 조선 후기 도성 외곽과 경기 지역의 방어를 담당하였으며, 이때 전문 석수石手와 인근의 백성들이 성곽 건설에 참여하였다. 1747년(영조 23) 총융청에 북한산성北漢山城을 관리하던 경리청經理廳이 병합되었고, 북한산성과 탕춘대성의 방어를 맡게 하였다. 이후 총융청의 영사營舍를 탕춘대로 옮기게 되면서 이 일대의 군사적 기능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에 영조는 1754년(영조 30) 탕춘대의 명칭을 군사적 의미를 갖는 연융대鍊戎臺로 바꾸었으며, 탕춘대성 역시 연융대성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연융鍊戎'은 군사력을 단련한다는 뜻이다. 총융청의 군사들은 연융대에 거주하며 성곽과 성문, 창고 등을 관리하였다.

 

 

 

 

 

 

 

 

 

총융청 첩문摠戎廳帖文

Official Document of the General Defense Unit

 

총융청에서 발급한 공명소첩空名小帖. 공명첩空名帖이 국가에서 발급한 정식 문서임을 확인해 주고, 공명첩이 가진 문서로서의 한계를 보완해주는 기능을 하였다. 도성의 보토補土 및 북한산성 행궁行宮을 수리하는 데 공로가 있어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봉하는 공명첩空名帖을 발급해준다는 내용이다.

 

1816년

 

 

 

 

 

 

총융청 첩문摠戎廳帖文

Official Document of the General Defense Unit

 

총융청에서 발급한 공명소첩空名小帖. 북한산성 행궁을 수리하고 홍지문(한북문)을 수축修築하는데 공로가 있어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봉하는 공명첩空名帖을 발급해준다는 내용이다.

 

1834년

 

 

 

 

 

 

총융청 첩문摠戎廳帖文

Official Document of the General Defense Unit

 

총융청에서 발급한 공명소첩空名小帖. 북한산성 행궁을 수리하고 홍지문(한북문)을 수축修築하는데 공로가 있어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봉하는 공명첩空名帖을 발급해준다는 내용이다. 정확한 발행일자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1820~1850년

 

 

 

 

 

 

 

총융청摠戎廳

Photograph of General Defense Unit

 

총융청 영사營舍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 총융청의 영사는 처음 도성 내 사직동社稷洞의 북이영北二營에 개설하였다가 1669년(현종 10)에 삼청동三淸洞으로 이전되었고, 1748년(영조 24) 탕춘대로 옮겼다.

 

일제강점기 Japanese Colonial Period

 

 

 

상평통보常平通寶

Coins

 

총융청에서 제작한 화폐. 앞면에 '常平通寶' 네 글자가 상하좌우 방향으로 양각되어 있으며, 뒷면 상단에 화폐를 발행한 군영인 총융청의 '摠' 글자가 양각되어 있다.

 

조선시대 Joseon Dynasty

 

 

 

 

 

 

상평통보常平通寶

Coins

 

1678년(숙종 4)부터 조선시대의 유일한 법화法貨로 사용된 화폐. 중앙의 각 관청이나 군영에서 주조, 유통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 지방 관청에서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주조, 유통되었다. 뒷면 상단에 양각된 글자를 통해 훈련도감訓鍊都監과 금위영禁衛營에서 주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Joseon Dynasty

 

 

 

 

 

 

 

 

 

『준천계첩濬川稧帖』 <연융대사연鍊戎臺賜宴>

Bestowal Banquests in Yeonyungdae

 

1760년(영조 36) 연융대에서 시행한 세초연洗草宴을 그린 그림. 『준천계첩』에 실린 기록화 중 마지막 장면이다. 존천 사업이 끝난 후 준천소濬川所 소속 관원을 대상으로 잔치를 베푸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건물 바깥으로 북한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760년

 

 

 

 

 

 

탕춘대성의 규모와 시설

Scale of Tangchundaeseong and Attached Facilities

 

탕춘대성은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성城이다. 인왕산의 기차바위 능선을 따라 홍지문弘智門까지 이어지고 다시 북한산 능선을 따라 향로봉香爐峰, 비봉碑峰, 승가봉僧伽峰, 문수봉文殊峰을 거쳐 북한산성과 연결된다. 총 길이 약 5.1km로 이중 약 4.3km가 토성土城과 석성石城 구간이며, 나머지는 암반과 자연 지형의 능선이다. 성벽의 축조에는 한양도성, 북한산성과 같이 능선을 따라 지형의 경사면을 활용한 편축식片築式 공법이 주로 사용되었다.

홍지문은 탕춘대성의 성문으로 숙종肅宗이 친필로 쓴 편액扁額을 하사하여 정해진 이름이다. 도성의 북쪽에 있어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 하였다. 성문 이외에도 5칸間 수구水口의 오간수문五間水門, 그리고 암문暗門과 치성稚城 등이 설치되었다.

 

 

 

 

 

 

<홍지문도弘智門圖>

Hongjimun

 

탕춘대성의 홍지문과 오간수문 및 그 일대를 그린 그림.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의 <수문천석水門川石>과 유사한 구도로 그려졌으나, 표현의 범위가 창의문 및 연융대 일대까지 확장되어 있다.

 

조선후기 Late Joseon | 작자미상 Unknown

 

 

 

 

 

 

조선 후기 수도방위체계의 구축

Establishment of the Capital Defense System in the Late Joseon Period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은 국방 및 수도방어를 강화하고자 노력했다. 1704년(숙종 30)부터 한양도성을 대대적으로 개축改築하였고,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을 축성하였다. 이후 탕춘대성의 건설로 도성과 북한산성이 물리적으로 연결되면서 한양도성~탕춘대성~북한산성으로 이어지는 견고한 수도방위체계가 완성되었다. 탕춘대성의 축성은 북한산성을 보완하기 위함이었다. 즉 위급시 한양도성에서 대피성인 북한산성으로 이동하는 통로를 확보하는 한편, 산성 수비에 필요한 물자를 보관하는 창고를 보호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탕춘대성의 동쪽에는 보현봉普賢峰, 형제봉兄第峰, 구준봉狗蹲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위치하는 데, 탕춘대성의 축성 당시 성곽 건설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실제 흙은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탕춘대성과 동쪽의 험준한 산악지역의 능선으로 둘러싸인 지역(현재의 신영동과 평창동 일대)에는 선혜청宣惠廳 창고와 군량 창고인 상 · 하 평창平倉 등이 설치되었다.

 

 

 

 

 

 

 

 

 

 

 

 

《동국여도東國輿圖》 <도성도都城圖>

Map of the Walled Capital

 

회화적 기법으로 도성 내부를 그린 지도, 도성을 둘러싼 성곽과 상징적인 궁궐 이외에 다른 요소는 과감히 생략되어 있다. 지면의 상당 부분을 도성 밖 상황을 묘사하는 데 활용하였으며 남쪽으로 한강까지, 북쪽으로는 탕춘대성이 끝나는 북한산 능선까지 표현하였다.

 

19C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복제

 

 

 

 

 

 

 

 

 

《동국여도東國輿圖》 <북한성도北漢城圖>

Map of Bukhansanseong

 

한양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북한산성北漢山城의 내부를 그린 지도. 북한산성은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여 쌓은 산성으로 도성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출입시설인 성문과 암문 이외에도 장대將臺, 성랑城廊 등을 설치하였고, 성 내부에는 유사 시 왕이 거처할 행궁行宮을 건립하였다.

 

19C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복제

 

 

 

 

 

 

 

 

 

《동국여도東國輿圖》 <도성연융북한합도都城鍊戎北漢合圖>

Map of Seoul, Yeonyungdae and Bukhansanseong

 

한양도성, 연융대성鍊戎臺城, 북한산성北漢山城을 한눈에 볼 수 있게 그린 지도.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기 보다는 주요 도로 및 지형을 중심으로 도성과 두 산성 간의 관계를 묘사하였다. 한양도성을 중심으로 구축된 조선 후기 수도방위체계를 확인할 수 있다.

 

19C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복제

 

 

 

 

 

 

 

 

 

《동국여도東國輿圖》 <연융대도鍊戎臺圖>

Map of Seoul, Yeonyungdae

 

창의문 밖 탕춘대성蕩春臺城의 모습을 그린 지도. 연산군이 연희를 즐기기 위해 조성한 탕춘대에서 이름을 따왔다. 영조 연간에 이 지역의 군사적 기능이 강조되면서 1754년(영조 30) 탕춘대를 연융대로 개칭하고, 성의 이름도 바꾸어 불렀다.

 

19C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복제

 

 

 

 

 

 

 

 

 

경기도 관찰사 감결甘結

Order by Gyeonggi Province Observer

 

경기도 관찰사가 관할읍에 내리는 지시 혹은 명령서. 북한산성의 11개 사찰을 보수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공명첩空名帖을 판매하고 그 대금을 총융청에 보내라는 내용이다.

 

1841년

 

 

 

 

 

 

북한산성 북문 및 수문北漢山城北門及水門

Photograph of North Gate and Floodgate of Bukhansanseong

 

제일은행 직원들의 북한산성 방문 기념사진. 북한산성 북문北門 및 수문水門에서 촬영한 것으로 일제강점기 북한산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Japanese Colonial Period

 

 

 

 

 

 

『한국건축조사보고韓國建築調査報告』

Report of Korean Traditional Architecture

 

일본의 동양건축가이자 미술사학자 세키노 다다시關野貞(1867~1935)가 1902년 동경제국대학 조교수 신분으로 서울, 개성, 부산, 경주, 해인사 등지의 고건축과 유물들을 살펴보고 약 1년 반의 정리작업을 거쳐 출간한 조사보고서, 북한산성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19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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