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등(누죽걸산 :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아내와 함께 남산 팔각정에서 중앙아시아거리까지] 01

드무2 2023. 1. 1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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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남산 팔각정에서 중앙아시아거리까지] 01

 

 

 

지하철3호선 동대임구역 출구에 붙어 있는 도심보행길 안내

 

 

 

도심보행길

 

늘청춘길

혜화문 > 대학로 > 동대입구

 

젊은 문화의 대표적인 장소인 동대문패션지구, 대학로 문화지구, 성균관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이 인접한 곳으로 젊음과 열정이 생동하는 예술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길입니다.

 

종로운종길

서대문역 > 종로 > 동대문

 

예부터 운종가(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린다)라 불렸던 광장시장, 피맛골 등의 시장 및 상점들이 밀집되어 있는 종로를 따라 옛 이름을 되새기며 서울의 생활문화를 접하는 길입니다.

 

이음길

서울역 > 광화문 > 안국역 > 동대문 > 명동

 

5개의 노선 중 유일하게 순환하는 노선인 이음길은 서울 구석구석에 뻗어있는 다양한 길이 만나고 이어지는 중심 순환길로 도심의 대표적인 명소를 돌아보는 길입니다.

 

옛풍경길

와룡공원 > 운현궁 > 퇴계로 2가 교차로

 

인사동, 삼청동길로부터 시작해 삼일로, 남산 한옥마을까지 옛 골목이나 기와 등이 이어지는 이 길을 따라 천천히 둘러보며 옛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소요의 길입니다.

 

청계물길

시민광장 > 청계천로 > DDP

 

도로 복개와 물길 복원의 우여곡절을 거쳐 시민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서울 도성안 중심 물길, 청계천 일대는 서울빛 초롱 축제 등 여러 문화행사가 열리고 서울의 음식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길입니다.

 

 

 

 

 

 

 

 

 

남산 위에서 바라본 신라호텔 방향 (미세먼지가 많은 날)

 

 

 

 

 

 

 

 

 

남산N타워

서울의 전경을 가장 높은 곳에서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남산을 포함한 해발 480m의 전망대는 서울의 전경을 보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02)3455ㅡ9288

W neseoultower.com

 

 

 

 

 

 

남산 팔각정

남산팔각정은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 등을 모시는 국사당이 있던 자리이다. 1959년 이승만 전 대통령을 기리기 위한 우남정이 지어졌다가 철거되고 1968년 11월 팔각정이 건립되었다. 남산서울타워와 함께 남산의 랜드마크로 잘 알려져 있다.

 

 

 

초상화 화가들

 

 

 

아내와 남산N타워

 

 

 

 

 

 

HAECHI SEOUL

서울 상징 '해치'는 정의와 안전을 지켜주는 행복을 가져다 주는 상상의 동물입니다.

 

 

 

 

 

 

타임캡슐

 

 

 

사랑의 자물쇠가 쌓여서 트리가 되다

 

 

 

 

 

 

 

 

 

 

 

 

매달려 있는 사랑의 자물쇠

 

 

 

태성

올해는 아프지 말고

자신감있게 살고

서브 최고가 되자

엄청 이쁜 여자 친구 만들기

2023. 1. 1

 

 

 

 

 

 

 

 

 

 

 

 

 

 

 

 

 

 

목멱산(남산) 봉수대

과거에 급한 소식을 봉(횃불)과 수(연기)를 통해 전달아였던 통신수단이다. 전국 5곳을 기점을 하고 목멱산(남산) 봉수대는 종점의 역할을 했다. 현재의 목멱산(남산)봉수대는 남산복원사업에 의해 복원된 것이다.

 

 

 

 

목멱산 봉구대 터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4호 / 시대 : 조선시대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8번지 1호

 

목멱산(木覓山) 봉수대 터는 서울에 있다고 하여 경봉수(京烽燧)라고도 불렸었는데 전국의 봉수가 집결되었던 곳이다. 봉수제도는 신호체계에 따라 연기나 불을 피워서 변방의 긴급한 사정을 중앙까지 전달하여 알리며, 해당 지역의 주민들에게도 알려 빨리 대처하도록 하는 일종의 통신수단이다. 멀리 바라보기 좋은 높은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불을 피워서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오는 봉수는 남산에서 집결하였고, 남산 봉수대는 제1봉수대부터 제5봉수대까지 다섯 곳의 봉수대가 있었다. 제1봉수대는 함경도 ㅡ 강원도 ㅡ 양주 아차산, 제2봉수대는 경상도 ㅡ 충청도 ㅡ 광주 천림산, 제3봉수대는 평안도 강계 ㅡ 황해도 ㅡ 한성 무악 동봉, 제4봉수대는 평안도 의주 ㅡ 황해도 해안 ㅡ 한성 무악 선봉, 제5봉수대는 전라도 ㅡ 충청도 ㅡ 양천 개화산에 이르는 봉수를 받았다. 이곳은 1993년에 김정호의 <청구도> 등의 관련자료를 참고해서 남산의 다섯 개 봉수대 중 하나를 복원한 것이다.

 

 

 

 

 

 

 

 

 

남산 케이블카와 함께 만들어가는

안전한 남산, 행복한 시민

 

 

 

 

 

 

 

 

 

 

 

 

 

 

 

 

 

 

 

 

 

 

 

 

자물쇠 열쇠 보관함

 

 

 

 

 

 

 

 

 

 

 

 

남산 전망대 (팔각 광장)

 

 

 

 

 

 

서울의 중심점

 

 

 

 

 

 

 

 

 

 

 

 

 

 

 

서울의 중심점

서울은 조선 태조 3년 (1394) 한양 천도로 도읍지가 되어, 시대의 흐름에 따라 행정구역 확장이 이루어져 한양 도성 중심에서 한강의 남북을 아우르게 되었다.

이 표지는 우리나라의 지리적 위치 결정을 위한 측량의 출발점인 대한민국 최초의 경위도 원점이었던 곳에 설치된 것으로, 국가기준점 (서울 25 삼각점)과 지리적 삼각점으로서 측지와 지적 측량에 쓰인다.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산 5ㅡ6

좌표 : 위도 37˚ 33' 06.6"  경도 126˚ 59' 19.6"  높이 264M

 

※ 1. 이 표지는 측량의 기준이 되는 중요한 시설입니다.

    2. 관리자 :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장, 서울특별시장

 

 

 

남산의 발자취

남산은 서울의 중심부에 있는 서울의 상징으로 해발 270M이다. 본래 이름은 경사스러운 일들을 끌어들인다는 '인경산(引慶山)이었으나 조선초 태조 이성계가 남산의 산신에게 목멱대왕이란 벼슬을 내리고 제사를 지내면서 '목멱산(木覓山)'이란 이름으로 봉하였다. 그러다 조선시대 한양의 남쪽에 있는 주작에 해당한다는 의미의 '남산(南山)'으로 자연스럽게 불리게 되었다. 1940년 3월에 남산 일대가 공원으로 지정되어 1968년 9월 식물원 개관, 일제강점기와 대 성장기를 거치면서 많은 건물과 시설이 들어서면서 본래의 모습이 훼손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1년부터 10년간 '남산 제 모습가꾸기' 사업을 통해 훼손된 지형을 복원하고 <야외식물원>, <야생화 단지>, <한옥마을> 등을 조성하여 시민의 공원으로 재 탄생하게 되었다.

 

 

 

 

 

 

 

 

 

 

 

 

남산 전망대 (남산 정상 버스정류장)

 

 

 

 

 

 

 

 

 

 

 

 

 

 

 

한양도성의 각자성석

監役判官 崔有遠 一百五十尺 (감역판관 최유원 일백오십척)

 

이 각자 성석은 태조 5년 (1396년) 한양도성을 처음 축성했을 때 감역관 (공사의 실무관료)을 임명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묻기 위해 도성이 완공된 후 성돌에 새겨 넣은 것으로 오늘날의 '공사실명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축성 공사를 담당했던 옛 군부대, 지역, 담당자, 일시 등을 기록한 성돌이 아직도 한양도성 곳곳에 남아 있다. 이러한 축성의 흔적과 기록은 도성의 역사성을 나타내주며 당시 도성 관리의 철저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서울 한양도성 순성길 안내이정표

 

 

 

남산 생태 · 경관보전지역

 

■ 지정현황 (http://ecoinfo.seoul.go.kr/)

● 위치 : 중구 예장동 산 5ㅡ6 일대 (북측사면 신갈나무숲, 남측사면 소나무숲)

● 생태적 특성

서울특별시에서 보기 드문 대규모 신갈나무가 북측사면에 집단으로 군락지 (360,529㎡)를 형성하고 있어 2006년 6월 27일 서울특별시가 생태 경관 보전지역으로 지정하였다. 남산의 신갈나무 군락지는 중부지방에서 숲의 변화단계 중 대표적인 수정인 참나무류로 바뀌는 생태적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애국가에 등장하는 남산의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기상을 상징하는데, 남산의 남측사면에 위치한 자생 (65년생 이상) 소나무 (약 500주)를 포함한 소나무 군락지 (344,572㎡)가 보호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12월 27일 추가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 제한되는 행위

● 야생 동 · 식물의 포획 및 채취, 둥지나 서식지를 훼손하는 행위

● 화약류, 덫, 올무, 그물을 설치하거나 유독물을 버리는 행위

● 수면매립, 불을 놓는 행위, 토지형질 변경 등 생태계를 훼손하는 행위

 

■ 신고 및 문의

서울특별시 자연생태과 (02ㅡ2133ㅡ2150)

서울특별시 중부공원여가센터 (02ㅡ2133ㅡ2150)

 

 

 

 

 

 

 

 

 

 

 

 

 

 

 

국립극장, 반얀트리 호텔, 신라호텔이 보인다.

 

 

 

 

 

 

한양도성

현재 남산공원의 한양도성은 장충체육관 뒷길에서 남산공원까지 이어지는 구간으로 일제에 의해 파괴되었던 성벽을 1970년대 이후 성곽 보존 정비 사업과 1990년대 중반 남산 제 모습 찾기 사업을 통해 대부분 복원되었다.

 

구간 백범광장 → 장충체육관

거리 4.2㎞ (약 3시간 소요)

 

 

 

서울 한양도성

 

지정번호 : 사적 제10호 (서울 한양도성)

시대 : 1396년 (태조 5)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1396년 (태조 5)에 백악 (북악산) · 낙타 (낙산) · 목멱 (남산) · 인왕의 내사산 (內四山) 능선을 따라 쌓은 이후 여러 차례 고쳤다. 평균 높이 약 5 ~ 8m, 전체 길이 약 18.6㎞에 이르며,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래도록 (1396 ~ 1910, 514년) 성의 역할을 다한 건축물이다. 한양도성의 성벽에는 낡거나 부서진 것을 손보아 고친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성벽 돌에 새겨진 글자들과 시기별로 다른 돌의 모양을 통해 축성 시기와 축성 기술의 발달 과정을 알 수 있다. 한양도성에는 사대문 (흥인지문 · 돈의문 · 숭례문 · 숙정문)과 사소문 (혜화문 · 소의문 · 광희문 · 창의문)을 두었는데,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없어졌다. 2014년까지 한양도성 전체 구간의 70%가 옛 모습에 가깝게 정비되고, 숙정문 · 광희문 · 혜화문은 다시 세워졌다.

 

 

 

축성시기에 따른 형태

 

태조 때의 도성 축조 (1396)

1396년 1월과 8월, 두 차례 공사를 통해 축성을 마무리하였다. 산지는 석성, 평지는 토성으로 쌓았다. 성돌은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 사용하였다.

 

세종 때의 도성 축조 (1422)

1422년 1월, 도성을 재정비하였다. 이때에 평지의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쌓았다. 성돌은 옥수수알 모양으로 다듬어 사용하였다.

 

숙종 때의 도성 축조 (1704 ~ )

무너진 구간을 여러 차례에 걸쳐 새로 쌓았다. 성돌 크기를 가로 · 세로 40 ~ 45㎝ 내외의 방형으로 규격화하였다. 이로써 성벽은 이전보다 더 견고해졌다.

 

순조 때의 도성 축조 (1800 ~ )

가로 · 세로 60㎝ 가량의 정방형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쌓아올렸다. 각자성석은 여장에 있다. (현재 학술연구가 진행 중이다.)

 

 

 

 

 

 

 

 

 

 

 

 

 

 

 

 

 

 

한양도성의 각자성석

都廳監官 趙廷元 吳澤 尹商厚 邊首安二土里 己丑八月日 (도청감관 조정원 오택 윤상후 편수안이토리 기축팔월일)

 

해석 : 여기 있는 각자성석은 숙종 35년 (1709) 8월에 도성 개축 임시 책임자인 조정원, 오택, 윤상후가 함께 공사를 감독했으며, 전문석수 안이토리가 공사에 참여했다는 내용이다. 축성과 관련된 기록이 새겨진 성돌을 각자성석이라고 한다. 한양도성에 남아있는 각자성석은 천자문의 글자로 축성구간을 표시한 것 (14C)과 축성을 담당한 지방의 이름을 새긴 것 (15C), 축성 책임 관리와 석수의 이름을 새긴 것 (18C 이후)으로 나눌 수 있다. 한양도성에는 이처럼 다양한 시기와 유형의 각자성석이 280개 이상 전해지고 있다.

 

 

 

 

 

 

 

 

 

 

 

 

 

 

 

 

 

 

 

 

 

 

한양도성 안전진단 및 계측 시행 안내

 

한양도성은 600년 역사를 간직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성벽 일부 구간에서 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한

풍화, 배부름, 균열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시민의 안전과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성벽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안전진단 및 계측을 시행하고 있으니,

부착된 계측기구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특별시 문화체육관광본부 한양도성 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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