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로 건너오는 시들] 03
경인철도가
한양을 작별하는 기적 소리는
연화봉을 진동하며 작별을 하고
한 바퀴 두 바퀴는 차례로 굴러
종남산의 취색은 동에 멀었네
번화한 좌우시가 다투어 비키고
굉굉한 바퀴 소리는 땅을 가르는데
천지를 울리는 기적 일성은
장려한 용산역을 부수는구나
경원선과 경부선을 서로 나누어
한마디 기적으로 고별을 하고
웅장한 남한강의 철교를 지나
철도 요람 노량진역에 다다랐도다
살 같이 나타나는 장엄한 기차
어언듯 영등포 잠깐 거치어
부산행 급행을 멀리 보내고
오류동 정거장 지내었고나
넓고 넓은 소사벌을 갈라나가면
소사역과 부평역도 차례로 거쳐
산 넘고 물 건너 급히 다다르니
빠르다 주안역도 지내었고나
먼산을 굽으러 가깝게 하고
가까운 산을 뻗치어 멀게 하면서
살 같이 빨리 부는 나는 새 같이
어느듯 제물포에 다다랐도다
인천 (仁川) 121 오석근
115 × 145㎝, 2023
인천 (仁川) 122 ㅡ 125 오석근
20 × 150㎝, 2023
월미도
린아
월미도 밤 깊을 제 밀물만 고요하다
어린님 생각하니 뵙던 날이 그리워라
중추월 밝다 하거든 님 오시마 하니라
석양 비낀 볕에 두대선이 닿는 배야
계신 곳 멀다거늘 날 이미 저물어라
이 밤을 영평서 새고 내일 갈까 하노라
석양에 반돛 달고 바다문 넘는 배야
섬 돌고 물 돌아 님 계신 곳 천리로다
찬돛도 더듸어라커던 반돛 애타 하노라
1929년 7월 26일
(동아일보), 1929. 7. 29.
모호 ㅡ 월미도 시리즈 이창준
120 × 60㎝, 2023
귀범
조백파
황혼은 영종도 곱은 허리를 감돌고
갈매기 고요히 물을 차는데,
제물포라 정든 포구 그리운 저녁
고기잡이 작은 배 석양을 싣고
황금의 바다 위를 미끄러지네.
「시원」, 1935. 4.
기다림 박인우
80ㅡ265㎝, 2023
바다에서
김차영
다만 푸른 수채화만을 바라보며 가련다
바다야
멀리 구름의 총림 (叢林)이 있는 곳
어느 황혼의 실루엣이
채색한 신경에다 안녕을 베풀 거냐
이제 달 밝은 밤이면
숨소리, 가쁜 바다 먼 위도 기슭서
증서 (證書)가 붙었던 마음의 모든 빈터에다
시를 쓰마
안개가 뽀야니 지새는 저녁
멀리 부두를 바라보는 것은
참 즐겁지 않나
노랗게 안경테에 스며드는 프리즘이
오늘도 한 없이 현기 (眩氣)로워 현기로워······
「초광」, 1943. 9.
바다에서 1 허윤희
종이 위에 목탄, 아크릴
77 × 107㎝, 2023
바다에서 2ㅡ3 허윤희
종이 위에 목탄
77 × 107㎝, 2023
무정 (無情) 하다 인천 (仁川) 바다
허위
1.
빠르다 세월이여
따뜻하던 봄철
더웁던 여름 한철
어제 그제 작별하고
새로운 이 가을을 다시 만나
서늘한 바람 쐬이려고
2.
남대문을 떠나서
나의 마음 흡족하게
살 같이 가는 저 기차
벌써 인천 당도하여
한걸음에 발자귀로
바닷가에 이르니
3.
위험한 인천 바다
기선으로 벗을 삼아
이내 몸을 의탁하고
한없이 바다에
이내 몸이 어찌할까
일 초 일 분 나갈수록
4.
지붕 같은 이 물결은
나의 벗을 시험하 듯
이리저리 돌리쳐서
위험하기 그지없네
불쌍하고 가련하다
혼자 몸이 어떠할까
5.
자비하신 하나님
요란히 이 중에서
이내 몸을 살피사
용감함을 주시며
온전한 정신으로
안심하게 하옵소서
6.
동서남북 불어오는
쓸쓸한 이 바람아
이리 몰고 저리 모니
물결은 더 심하여
아 ㅡ 강자는 강자끼리
약자는 못살 데로다
「청년」, 1923. 1.
무제 1ㅡ3 오원배
종이 위에 혼합 재료
109 × 78㎝, 2023
인천항 (仁川港)
박팔양
조선의 서편항구 제물포의 부두,
세관의 기는 바닷바람에 퍼덕거린다.
젖빛 하늘, 푸른 물결, 조수 내음새,
오오, 잊을 수 없는 이 항구의 정경이여.
상해로 가는 배가 떠난다.
저음의 기적, 그 여운을 길게 남기고
유랑과 추방과 망명의
많은 목숨을 싣고 떠나는 배다.
어제는 Hongkong, 오늘은 Chemulpo, 또 내일은 Yokohama로,
세계를 유랑하는 코스모폴리탄
모자 삐딱하게 쓰고, 이 부두에 발을 내릴 제.
축항 카페에로부터는
술취한 불란서 수병의 노래
「오! 마르세이유! 마르쎄이유!」
멀리 두고 와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노래를 부른다.
부두에 산 같이 쌓인 짐을
이리저리 옮기는 노동자들
당신네들 고향이 어데시오?
「우리는 경상도」 「우리는 산동성」
대답은 그것뿐으로 족하다.
월미도와 영종도 그 사이로
물결을 헤치며 나가는 배의
높디높은 마스트 위로 부는 바람.
공동환 (共同丸)의 깃발이 저렇게 퍼덕거린다.
오오 제물포! 제물포!
잊을 수 없는 이 항구의 정경이여.
ㅡ 대정 (大正) 15년 (1926년)
「여수시초」 박문서관, 1940.
(1927년 첫 발표)
그물질 김진열
혼합재료
72 × 83㎝, 2023
박수근 '귀로' 오마쥬 김진열
혼합재료
81 × 36㎝, 2015
코스모스
임봉주
(인천문인협회 추천시)
참, 많이
그리워 했던 시절
바람결에 흔들리는 널 보면
가슴에 가득 찬 그리움이
울렁거려, 울렁거려
발걸음 멈추고
한참 쉬었다 가곤 했다.
코스모스는 지금도 그리움으로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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